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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2 04:46:04, 조회 : 997,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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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제4분, 아름다운 행위는 머물지 않는다(妙行無住分)
살아 있는 생명은 몸이든 마음이든 어떤 행위를 하기 마련입니다.
삶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행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왕이면 시원하고 멋스럽고 아름답게 엮어가는 삶이 좋지 않겠습니까?
묘행은 무주(無住)입니다. 아름다운 행위는 어디에 안주하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무주 다음에 집착할 착(着)자는 한 자 더 쓰면 무주착(無住着)입니다. 아름다운 행은 머물고 집착함이 없습니다. 떠날 때도 가볍게 떠날 줄 하는 것이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삶의 온갖 문제들, 어떤 행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착이 없을 때, 살아가는 일도 홀가분하고 가볍습니다.
금강경에서는 "네가 한 행위에 안주하지 말라. 머물고 집착하지 말라. 미련과 아쉬움을 보이면서 끈적끈적 늘어붙지 말라. 하찮은 일에 생색을 내지 말라.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떨쳐버리고 더 나아가 탁 트이고 시원한 삶을 살라,"고 하였습니다.
보살은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보살이 색성향미촉법에 안주하거나 집착한다면 이미 보살의 삶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행위가 아닙니다. 안주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온 우주를 다 채우고도 남습니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이며, 세계적 삶, 우주적 삶, 반야적인 삶입니다.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의 복덕
副次須菩提[부차수보리]야 菩薩[보살]이 於法[어법]에 應無所住[응무소주]하야 行於布施[행어보시]니 所謂復住色布施[소위부주색보시]며 不住聲香味囑法布施[부주성향미촉법보시]니라
須菩提[수보리]야 보살[보살]이 應如是布施[응여시보시]하야
復住於相[부주어상]이니 何以故[하이고]오 若菩薩[약보살]이 不住相布施[부주상보시]하면 其福德[기복덕]은 不可思量[불가사량]이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어떤 것에도 머물지말고 보시를 해야 하나니, 이를테면 사물에 머물지 말고 보시할 것이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그 외의 온갖 것에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 하느리라.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하여 형상에 머물지 말라.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형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느니라.
보살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6바라밀 수행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보시, 베푸는 삶이 제일가는 덕목입니다. 물질[財布施], 법[法布施], 두려움을 없애주는 위로[無畏施]를 베푸는 것이 보시입니다. 그런데 법은 모든 사물과 사건, 세상의 모든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囑. 법法입니다. 색은 물질, 육신이고 성은 소리, 향은 향기, 미는 맛, 촉은 감촉, 법은 그 나머지 의식의 대상입니다. 예를 들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세월이 바뀌고,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바람이 부는 이 사실은 색. 성. 향. 미.촉에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런 경계가 있습니다. 우리 의식이 감지하는 것을 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살이 어법於法이라고 할 때의 법은 그 육경六境을 다 아우러는 말입니다. 어쨌든 보살은 물질이나 소리. 향기.맛. 감촉. 의식 그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얼마나 베풀었든, 시간이 길든 짧든, 무엇을 베풀었든 그 어던 것에도 머물지 않고 베풀어야만 주는 사람도 자유롭고 받는 사람도 자유롭습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과 대화하는 수보리는 부처님 제자 중에 무상無相과 공空을 제일 잘 안다 하여 해공제일海空第一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관념이나 어떤 상相도마음에 남겨두지 않는 수보리에게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를 하면 보살로서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보살은 자나 깨나 보시를 실천합니다. 그러나 삶에서 베푼다고 하는 의식이나 관념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큰 병이 됩니다. 어떤 행위든지 아무 생각이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보시를 할 때도 바람처럼 스치면서 지나가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도 다 생각이 스쳐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스치는 생각을 붙잡아서 곱씹고 거기에 조건을 달고 대가를 바라면 생각은 점점 굳어져서 하나의 상相이 됩니다. 관념은 굳어지면 큰 병이 됩니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 상병相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금강경에서는 집중적으로 상을 없애는 가르침을 펴고 있습니다. 상병이 풀리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을 내면 관계가 틀어집니다.예를 들어 남편이 가장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아내에게 "나는 뼈 빠지게 돈 벌어오는데 집구석에 앉아서 이게 뭐냐."라고 한다면 가장이라는 상을 내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렇게 나오면 아내는 속으로 '돈 몇 푼 벌어왔다고 치사하게 생색이냐' 하면서 남편에게 가졌던 고마운 마음이 싹 달아나고 미운 마음이 샘솟는 것입니다. 상병으로 말미암아 가정불화가 싹트는 순간입니다.
앞에서 수보리가 부처님께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겠습니까? (云何降伏其心)" 하고 여쭈었는데, 사실 상병을 제대로 다스릴 줄 알면 마음을 항복받는 문제도 풀리고 그 밖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린다고 하는 것이 금강경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하면 그 복이 한량없다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단돈 10원을 보시하고도 상을 내지 않으면 그 10원의 가치가 영원합니다. 금강경에서는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생색을 내지 않으면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이 된다.
수보리야 어의운하오. 동방허공을 가사량부아. 불야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을 가사량부아.
불야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의 무주상보시하는 복덕도 역부여시하야 불가사량이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단응여소교주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쪽허공을 모두 상상할 수 있는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쪽 서쪽 북쪽과 네 간방과 위쪽과 아래쪽의 허공을 모두 상상할 수 있는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형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목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상상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다만 이와 같이 가르쳐 준 대로 머물러야 하느니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이 끝이 없는 허공처럼 가히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보시와 끝없는 허공의 비유가 아주 근사합니다.
금강경 첫머리인 법회인유분에 급고독장자와 걸식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께 밥 두 숟가락을 떠주는 마음으로 보시를 하라는 것입니다. 밥 두 숟가락을 베풀고 무슨 상(相)이 나겠습니까? 급고독장자에서부터 부처님의 걸식, 보살의 보시에 이르기까지 무주상보시에 대한 일관된 가르침을 꿰뚫어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수행을 하고 내가 이치를 알고, 깨닫고자 하는 목적이 혼자 갖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원어치 수행을 했으면 1원어치를 그대로 남에게 베풀고 10원어치를 했으면 10원어치 그대로 진리의 가르침을 그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애착없이 베풀라는 것입니다.
새가 양쪽 날개가 있어야 날듯이 지와 행을 구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출가해서 맨 처음에 공부하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도 "행지구비(行智具備)는 여거이륜(如車二輪)이라.",
행동과 지혜를 갖추는 것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좌우보처가 문수.보현인 것도 바로 그러한 이치입니다. 부처가 부처로서 제대로 행세를 하려면 지혜의 문수보살과 행원의 보현보살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혜를 갖추면 매사에 상을 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머무는 데 없이 보시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 모두 상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하다못해 길 가의 돌 하나 치워놓고도 자랑을 합니다.
어느 절을 짓는데 목수 뒷바라지만 해놓고도, "이 절을 내가 지었다."고 하고, 기와 몇 장 시주하고는 "이 절 내가 시주해서 다 지었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사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해 생색을 내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느 절에 대시주를 한 분이 주지스님께 대접받고자 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줄서서 공양하고, 후원에서 설거지 등 궂은 일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저 분은 이 절의 대시주로 알고 있는데 저렇게 상내지 않고 솔선수범한다."며 칭송을 합니다. 그게 바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상을 내지 않고 보시하면 동방.서방.남방.북방.사유간방의 허공과 같이 상상할 수 없는 복덕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사유(四維)는 불교용어인데 사유, 서북간 동남간 등 간방을 합해서 팔방이고, 상하(上下)를 더해 시방(十方)이 됩니다. 그 어느 쪽을 달린다 하더라도 그 끝이 없어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복덕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보살은 이와 같은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앞서 수보리는 부처님께 "보살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하는 질문을 하였는데 '보살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여기서 일단 정리됩니다.
아무리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많이 하였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나타내려 하거나 거기에 끈적끈적 달라붙어 있으면 그것이 그만 추해보이고 역겨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복덕을 짓기보다는 복덕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혜가 없어서 머무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미련하고 답답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눈을 뜨신 부처님께서는 제발 머물지 말고 허공처럼 툭 트인 마음으로 시원하게 대자유인으로 살라 하십니다.
떠날 때 떠날 줄 알고, 잊을 때 잊을 줄 알고, 체념할 때 체념할 줄 알고, 손 뗄 때 손 뗄 줄 알아야 합니다. 보시를 할 때도 심지어 사랑할 때도 머무는 바 없이할 때 최고로 미묘하고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찬불가 : 공덕을 쌓는 즐거움(음악을 공양하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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