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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07
普德華 2021-04-25 16:13:38, 조회 : 942, 추천 : 0
금강경 제5분, 그러한 이치를 사실대로 보다(如理實見分)

여리실견如理實見은 마치 이치와 같이 실답게 본다, 진리를 곡해하지 않고 사실대로 본다는 뜻입니다. 제5분은 “진리 그 자체로서의 여래를 육신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겠는가? 모든 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진리인 여래를 볼 수 있으리라”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도 보고 상대방도 보고 부처님도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타난 형상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숨은 뜻, 숨은 이치를 꿰뚫어 보는 것이 보살의 삶, 불자의 삶이요,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살려고 하는 사람의 삶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말꼬투리부터 잡고 그 말에 놀아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실수도 많고 문제도 많이 일으킵니다. 여리실견의 마음자세로 이치에 비추어서 확인해 보면 거짓에 속지 않습니다. 어떤 사물, 어떤 존재를 보든지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역서 실實의 반대는 허虛도 되고 가假도 됩니다. 이치대로 실답게 보라는 말은 거짓으로 헛되게 보지 말고 존재의 실상을 사실대로 보라는 뜻입니다.

실답게 보면 모든 문제가 잘 풀리기 마련입니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올바른 여덟 가지 길(八正道)의 첫 번째가 정견正見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치입니다. 무엇이든 본래의 모습대로 바르게 바라볼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번뇌 망상도 제대로 보면 사라집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시각이며, 또한 가장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실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다 형상뿐인데, 부처의 모습, 실상의 모습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형상을 떠나서 달리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자리를 펴고 앉아볼 일입니다. 철저히 앉아볼 일입니다.

즉비의 철학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가이신상可以身相으로 견여래부見如來不아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불가이신상不可以身相으로 득견여래得見如來니 하이고何以故오 여래소설신상女來所說身相은 즉비신상卽非身相이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육신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육신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육신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이치에 따라 실답게 봐야 합니다. 한편 불자가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부처님은 어떤 존재인가를 실답게 이해하는 일입니다. 부처님은 여래, 즉 진리에서 오신 분입니다. 다시 말해 ‘우주와 삼라만상의 진리 생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묻습니다. 마치 오랜 세월 함께한 부부가 어느 날“당신 내 얼굴 보고 결혼했어?”라고 묻는 말처럼 “자네 내 얼굴 보고 부처라고 하는가?”하고 묻자 수보리가 아니라며 펄쩍 뜁니다. 그런데 사실 거룩한 32상80종호를 지니신 부처님을 보고 부처로 여기지 말라고 하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보리는 부처님의 뜻을 얼른 알아차리고 몸의 모양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에게 몸을 받아서 차츰차츰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의 이 모습 역시 끊임없이 변하다가 결국 죽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상식적으로도 그렇게 허망한 몸을 부처님이라고 할 수 없지요. 이 육신은 무상無常한지라 시시각각 명멸해갑니다.

육신을 부처라고 여기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경전에 수도
없이 나옵니다. 아함부의 바카리 비구경에도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죽음을 앞둔 바카리라는 비구가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로해 주기 위해 찾아가셨습니다. 부처님을 뵙자, 바카리 비구가 안간힘을 써서 몸을 일으켜 예배를 드리려고 하자, 부처님께서 호되게 나무라십니다.

“너의 병들어 썩어가는 몸뚱이를 일으켜 세워서 너와 별다를 바 없이 늙어 무너져 내리는 나의 이 몸뚱이에 예배를 드린다고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여래를 그동안 육신이라고 여겼더냐. 그러고도 나의 제자라고 하겠느냐.“라고 하시면서 바카리 비구를 경책하신 부처님은 이어서“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는 그 유명한 법구를 남기셨습니다.

이처럼 여래를 보는 참된 지혜가 있어야 법을 봅니다. 만물의 실상, 생명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됩니다. 이 말은 결국 겉으로 보이는 우리 몸뚱이에 집착하지 말고, 순금덩어리 같은 우리 본래의 진실생명, 본래 면목에 눈뜨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한계를 지어 중생 놀음만 하지 말고 부처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수보리가 ‘즉비신상卽非身相, 여래의 몸은 여래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즉비라는 말에 유념하십시오. 이 말은 금강경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입니다.“몸의 모습은 곧 몸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몸의 모습이라 불린다.“라는 것이 즉비의 논리입니다. 처음의 몸의 모습과 나중에 나오는 몸의 모습은 다른 차원입니

. 우리가 잘 아는 선어禪語인“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역시 즉비의 차원입니다. 첫 문장은 상식적인 차원이고, 두 번째 문장은 절대 부정의 차원이며, 세 번째는 절대긍정의 차원입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은 같으나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에 대해서도 그러한 안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영가永嘉 선사의 증도가證道歌에도“무명실성無明實性이 즉불성卽佛性이요 환화공신幻化空身이 즉법신卽法身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 번뇌 무명의 이 성품이 그대로 불성佛性이고, 환영 같은 이 육신肉身이 그대로 법신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육신을 떠나서 따로 법신을 구하는 것은 종로에서 서울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격이지요. 대승경전이나 조사스님들은 한결같이 이 몸을 떠나 진리를 구하는 것은 잘못된 소견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청곡 : 연등(능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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