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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4 18:18:36, 조회 : 1,05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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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제9분, 하나의 상도 상이 없다(一相無相分)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하나의 상도 상이 없다’는 것은 ‘하나의 상도 상이라고 내세우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등 수행의 4단계를 언급하면서 무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모든 수행의 결과는 실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문 사과聲聞四果뿐만 아니라 보살과 부처에 이르기까지 본래 모양없는 실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하나의 성과가 실상반야의 현현이라면 결과의 모양도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얻었다는 마음의 흔적이 털끝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진정한 성과가 아닙니다. 일상무상분을 우리 삶의 지침으로 삼는다면, ‘마음속 깊이 상을 내지 않는 마음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이 본래 있는 것 같으면 상을 좀 낸다 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 실체를 꿰뚫어보면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생색내고 자랑할 거리가 없는데도 공연히 환상에 사로잡혀서 상을 내세우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본래 그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상 내지 마라.”,
“상 없는 것이 가장 중한 가르침이다.”라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작은 선행을 하고, 조그마한 공을 세우고 자신을 선전해서 알아
주기를 바라고,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 하고, 급기야 작은 공덕마저 날려버린다면 그 꼴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밝은 삶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어리석은 삶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라도 상에 집착할 일이 아닙니다.
상병相病만 없으면 부처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수다원須陀洹이 능작시념能作是念하대 아득수다원과부我得須陀洹果不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사대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수다원須陀洹은 명위입류名爲入流로대 이무소입而無所入이니 불입색성향미촉법不入色聲香味觸法일새 시명수다원是名須陀洹이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다원이 생각하기를 ‘나는 수다원의 과위果位를 얻었노라’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은 ‘성인의 유流에 들다’라고 이름하지만 실은 어디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이나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감촉이나 그 외의 무엇에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이 수다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나도 혹시 상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수보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는 부처님의 마음을 짐작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의 첫머리에서부터 “만약 모든상이 상이 아님을 볼 때 여래를 본다.”고 하면서 상이 없어져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상을 하나도 건드리지 아니한 상태에서 내 마음에서 상相이 사라질 때 여래如來를 본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법상法相, 진리에도 상을 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일상무상분에서는 수행사과의 무상에 대해 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고 하는 성문 사과를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수행의 점차는 수행에 대해 막연하게 이야기하면 허황한 생각이 들고 싫증을 내기가 쉬우므로 단계를 설정해 놓은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수행에 있어서 단계는 존재하지 않습니
다. 수행의 점차를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십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 등 52단계까지 세분화해서 나누는 경전도 있는데, 하나의 방편일 뿐입니다.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사람입니다.
성문 사과의 첫 번째 단계인 수다원은 입류入流, 성류聖流, 예류預流라고도 합니다. 성자의 무리, 수행자의무리에 들었다는 것인데, 쉽게 얘기해서 공부를 좀 한 분들입니다. 안眼·이耳·비鼻·설舌· 신身·의意 육근을 통해 인식하는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객관에 들어간 흔적이 없는 단계에 오른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수다원에 들어갔다 하는 마음의 때가 있으면 수다원과를 얻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수다원은 아직 상이 남아 있는 단계인지라 금강경 입장에서 비춰보면 궁극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성문 사과는 바라문교에서 원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라문교에서는 사람의 일생을 네 가지 단계로 나눕니다. 7,8세가 되면 출가하여 공부하는 범행학습기梵行學習期, 20세쯤 다시 집으로 돌아와 결혼도 하고 자녀를 기르며 가업을 이어가는 가주기家住期, 40세쯤 다시 숲속으로 재출가하는 것을 임서기林棲期, 임주기林住期라고 하는데 이때쯤 되면 철도 들고 세상 경험도 많아서 제대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수행이 길어지면 교화를 하러 다니는데, 이를 유행기遊行期라고 합니다. 헤르만 헤세가 쓴 ·『싯다르타』에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구절이 잇습니다. 싯다르타가 어릴 때 출가해서 공부를 한 뒤 청년이 되자, 가게에 취직을 하려고 합니다. 그 가게 주인이 싯다르타에게 “뭘 할 줄 아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싯다르타는 엉뚱하게도 “나는 단식도 할 줄 알고, 참기도 잘합니다.”라고 대답하여 면접시험에 합격합니다.
싯다르타가 장사를 잘하여 가게가 번창하였지요. 그러다가 40세 전후에 재출가하여 갠지스 강에서 뱃사공 노릇을 합니다. 그때 바라문 승려였던 옛 친구를 만납니다. 그 친구를 건네주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싯다르타의 경지가 상당합니다. 어쨌든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도 바라문4기(범행기-가주기-임서기-유행기)가 다 들어 있습니다. 성문 사과라고도 하고 소승 사과라고도 하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수행점차와 꼭 들어맞습니다.
가끔 불자들도 이렇게 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절순이’‘열반당 도깨비’라는 말이 있는데, 오랫동안 절에 드나들면서 의식이며 풍속 등 절집 돌아가는 사정은 잘 알면서도 정작 불법에 있어서는 캄캄한 신도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불교에 입문한 지 40년, 50년이 되었다 해도 그 이름만 불자입니다. 관념에 사로잡히고, 상을 내고있다면 진정한 불자가 아닙니다. 지혜와 자비, 복덕과 신통 묘용을 구족하고 계시기 때문에 부처가 아닙니다. 모든 상을 떠난 것이 부처라고 하였습니다. 금강경에서 “상병만 없으면 부처다.”라고 표현한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신청곡 : 부처님 오신날(조계사 합창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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