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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23
법광(法光) 2021-05-27 00:35:06, 조회 : 981, 추천 : 0



- 스즈키, 앨런 와트, 비트, 그리고 젠붐 -
1960년대 젠붐은 미국불교사에서 분수령으로 간주된다. 1950년대까지 보헤미안들의 구역에 제한되고 매우 적은 구도자들의 관심 대상이던 불교가 1960년대에 이르러 대중 종교운동과 유사하게 변화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스즈키와 와트의 저술과 강연이 기폭제가 되었다.

1897년 폴 캐루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온 스즈키는 캐루스가 운영하는 오픈코트 출판사의 불교 자료 번역자로 일했다. 처음에는 캐루스의 『도덕경』 번역을 도왔으며, 1900년에는 『대승기신론』을 번역하고, 1907년 『대승불교 개론』을 출판했다. 1909년 일본으로 돌아간 뒤 서양인 아내와 함께 대승불교에 관한 영어 잡지 『동양불교도』를 발간했으며, 잡지에 실린 글들을 모아 1927년 『선불교 에세이』를 영국에서 출판했다.

그의 초기 영어 저서들은 서양에서 선불교와 일본 문화를 선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1920년 대 근대화된 아시아 국가로서의 일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자, 스즈키의 독자는 정신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부터 문화적, 미적 관점에서 일본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그는 새로운 독자에게 “일본 문화를 알려면 선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즈키의 성공 뒤에는 냉전 시대 미국과 일본의 정치경제학이 자리 잡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미국의 주적에서 성공적인 민주주의이자 자본주의의 아시아적 모델을 제공하는 미국의 우방으로 바뀌었다. 이 시점에서 양국의 친선을 위해 일본의 부드럽고 미적이며 정신적인 측면을 소개할 문화 사절이 필요했다. 스즈키는 이 요구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영어로 쓴 그의 책은 선불교를 서양에 알리는 탁월한 수단이었다. 이미 절판되거나 일본에서만 출판되었던 책이 서양 출판업자에 의해 다시 출판되었다 1959년에는 프린스턴대학에서, 1938년에 출판한 『선과 일본문화』를 다시 간행했다. 스즈키의 영향은 서양 전체에 퍼졌지만 특히 미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51년 스즈키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캐루스 밑에서 일할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스즈키는 미국불교의 독보적인 존재였으며 1950년대 컬럼비아대학에서 6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뉴욕에 사는 수많은 문학가, 예술가, 학자, 명사들이 그의 강의를 들었으며 비트 운동의 핵심이었 던 젊은 뉴욕 시인들과 보헤미안들의 관심을 끌었다. 심지어 『보그Vogue』, 『타임Time』과 같은 잡지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20세기의 창조적인 많은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존 케이지, 에릭 프롬, 카렌 호니, 아놀드 헉슬리, C. G. 융, 토마스 머튼, 아놀드 토인비, 앨런 긴스버그, 잭 케루악, 앨런 와트, 게리 스나이더가 그들이다.

스즈키는 또한 서양 독자를 위해 서양인에게 익숙한 심리학적 개념으로 선을 소개함으로써 불교와 서양 심리학 사이에 대화의 문을 열었다. 그는 모든 선입견을 비우고 자유롭게 삶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선 수행의 기초라고 역설하면서, 추론적인 마음을 비우고 주관성과 객관성의 개념이 사라지며 시간과 공간을 통한 단일성의 무한한 상태가 곧 천진한 공성이라고 설명했다. 천진은 그렇게 비었으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따라서 선의 마음을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마음'이라고 함으로써 '공emptiness'이 영어 단어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선을 철학적 니힐리즘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앨런 와트는 젠붐을 더 광범위하게 퍼뜨렸다. 1958년 『타임』은 와트에 대한 기사에서 젠붐을 보도했다. 영국인인 와트는 처음에는 영국에서, 다음에는 뉴욕에서 여러 해 불교를 공부했다. 공식적으로 스즈키의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영향을 크게 받았다. 와트는 직접 선불교 소개서를 쓰기로 결심하고 1935년 『선의 정신』을 저술했는데, 엄청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어 지금까지 출판되고 있다. 그는 1936년 영국을 방문한 스즈키를 만났으며 뉴욕에서 잠깐 소케이 안의 제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와트는 돌연 신학교에 돌아가 감리교파 목사 안수를 받고 노스웨스트대학에서 사목으로 일했다.

그 후 와트는 목사직을 그만두고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다음 서부로 이주했다. 1959년 출판한 『비트 선, 고지식한 선, 그리고 선』은 1960년대 젊은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에서 그는 “너무나 자기 의식적이고 너무나 주관적이며 너무나 귀에 거슬리는 비트의 불교, “거드름을 피우는 동양으로 회귀하는 고지식한 선", 그리고 “형식에서 자유로우며 진정한 깨달음을 구성하는 자유롭고 자동적인 경험”으로 선을 나누고, 자기 자신을 세 번째 유형에 두었다. 와트는 진정한 선의 정신을 자유로운 형식, 창조적 잠재성을 가진 인간적 정신성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개인주의적이고 경쾌하며 인간주의적인 특징은 1960년대 초기의 이상주의와 잘 어울렸으므로 불교는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와트는 비트 선의 마리화나 과용을 비판했지만 빡빡한 강의 일정을 구실로 줄담배와 과음을 했다. 또한 마약 사용을 옹호했으며 자신도 마약을 사용했다. 1960년대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며 저항문화의 스타였다. 그러한 위상에도 와트는 시민의 권리나 베트남전쟁과 같은 정치적 이슈를 회 피했다. 그는 선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존재했던 방식, 즉 깨달음에로의 고요한 접근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보지 못했고 따라서 그의 혁신적 역할은 선을 서양에 소개하는 것에 그쳤다.





당신은 나의 부처님 - 비뮤티(홍범석)

眞虛性宗 [2021-05-27]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 5월 28일(금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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