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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28
법광(法光) 2021-06-11 11:48:49, 조회 : 986, 추천 : 0



스즈키는 “수행하면 깨칠 수 있다."는 간단한 메시지로 미국인들과 비트 세대를 열광시켰다. 좌선은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이전의 일본 선사들은 좌선 자세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며 의자 사용을 허용했다. 그러나 스즈키는 일본식 좌복 위에 가부좌하고 앉도록 가르쳤으며 자세가 곧 올바른 마음 상태라고 지도 했다. 『선의 마음, 초심자의 마음』에서 그는 누구나 초심初心을 유지하기만 하면 선의 정신을 체현할 수 있다고 하여 동양의 신비하고 복잡한 전통에 미국인들이 압도당하지 않고 쉽게 수 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처음에 스즈키는 전통 선원의 의례나 수행에 관심이 없었으나 몇 년 후 학생들의 요청으로 주말 집중수련을 시도했으며 1962년부터는 일주일 집중 수련도 시작했다. 선원청규는 미국식 개인주의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는 미국 선이 일본 선보다 더 많은 규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미국 문화는 신이 아닌 인간 붓다에 대한 존경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절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수행을 위한 예의와 규칙을 정하고 새벽 참선 참가자는 반드시 5시 30분까지 좌복에 앉도록 했다. 이렇게 그는 미국불교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했고,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는 미국의 지도적 불교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스즈키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을 하도록 지도하는 일이 점차 힘들어지자 산속에 전통 선원을 세우고, 수행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1966년 7월 서양에서 처음으로 엄격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산중 선원인 타사하라 선 센터가 문을 열었고 최초로 석 달 결제를 실행했다. 전통 선원과 달리 남녀가 함께 수행하며 결혼한 부부와 독신 남녀를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 선농일치의 원칙에 따라 육체노동도 수행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엄격한 수행 일정표와 규율을 준수해야 했다. 발우 공양을 했으며 채식 위주지만 영양을 고려하여 계란과 치즈도 제공되었다. 방문객을 위한 채식 식당도 문을 열었다. 결제 수행 마지막은 7일간의 정진으로 이루어졌고 마지막으로 스즈키와의 공식적인 법문답이 있었다. 일본에서 스승과 제자의 문답은 형식적으로 화석화되었지만 타사하라에서는 자신의 선에 대한 이해와 스승의 이해력을 살피는 실제적인 질문이 장려되었다.

1969년에는 건물을 구입하여 미국인을 위한 독립적인 센터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스즈키는 미국인 제자에게 계를 주기 시작했으며 재가자를 위한 수계 형식도 마련했다. 이는 승려도 일반인도 아닌 미국인 수행자의 모호한 신분 상태를 바꾸어 준 혁신적 사건이다. 스즈키는 1966년 리처드 베이커를 후계자로 정한 뒤 1971년 입적했다. 미국에 체류했던 12년간 그는 미국적인 형식의 선 센터를 개발하고 미국 최초의 불교 공동체의 기초를 닦았다.

1971년 스즈키의 이른 죽음으로 후계자와 지도체계 문제가 바로 눈앞에 등장했다. 이런 도전을 거쳐 미국불교는 더욱 새로워졌다.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는 신임 주지 리처드 베이커의 지도 아래 전통적인 선농일치를 친환경농법과 결합시켜 새롭게 시도했다. 1972년 그린갈치농장을 구입하여 선 센터 구성원의 가족들을 위한 집이자 주말 안거와 대중 강연을 위한 장소로 사용했다. 제빵소와 레스토랑이 세워졌고 채소를 판매하는 등 선적 깨달음과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 사이의 조화로운 결합도 이루어졌다. 주변의 다른 농장과 협력하여 유기농법을 실험하고 공동체 간의 대화를 조직했으며 '환경과 명상'에 관한 강의와 수행, 실습, 친환경 농법과 환경 보전에 대한 교육도 실시했다. 또한 지역의 자연사를 주제로 유역의 목소리'라는 산책 학습과 초빙강연을 여는 등, 그린갈치센터는 토지 관리, 공동체 관 계, 생태적 문화, 그리고 교육이라는 네 분야에서 생태 윤리의 체계화를 선도하고 있다.

베이커는 그 밖에 종교 간의 대화를 주도했고 일상적 삶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으며 주지사의 조언자로서 유명 인사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갑작스런 파국이 들이닥쳤다. 1983년 공동 창립자의 아내와 섹스 스캔들이 터지자 숨겨진 권력 남용과 부패가 폭로되었다. 1983년 베이커는 주지직에서 사임하고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를 떠났다. 스즈키의 다른 상속자인 텐신 렙 앤더슨이 주지직을 맡아 1995년까지 재직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는 도덕적 타락과 전횡을 막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를 만들고 주지직을 4년 임기의 선출직으로 바꾸었다. 1990년대 초 이사회는 불교 계율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불만과 화해를 위한 윤리 원칙과 절차'를 채택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제도, 즉 연합 리더십을 확립했다. 1995년 주지로 임명된 노만 피셔는 1년 뒤 젠카이 블랑쉬 하르트만과 공동 주지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의 집단지도체제와 여성 지도자의 탄생, 불교 윤리에 대한 새로운 강조는 선의 미국 화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로스앤젤레스 선 센터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개조인 타이잔 마에즈미는 처음에 로스앤젤레스 젠스지의 조동종 승려로서 왔으나 곧 백인들에게 좌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67년에 로스앤젤레스 선 센터는 독립하여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으며 1980년 회원이 235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중 90명은 센터 소유의 집과 아파트에서 생활했으며 공동체는 로스앤젤레스 서부의 한 구역 전체를 차지할 정도였다. 1976년 마에즈미는 불교학을 위한 비영리 교육 조직인 '불교학과 인간가치를 위한 쿠로다연구소'를 개원했다. 불교학 컨퍼런스와 워크숍을 지원하고 하와이 대학 출판사와 결연을 맺어 동아시아 불교에 관한 학문적 연구와 고전 문헌 번역서 출판을 지원했다.





찬란한 미소 - 도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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