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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1 17:20:28, 조회 : 1,01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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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라는 상相에도 떨어지지 말라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하사대 如是如是[여시여시]하다
若復有人[약부유인]이 得聞是經[득문시경]하고 不驚不怖不畏[불경불포불외]하면 當知是人[당지시인]은 甚爲希有[심위희유]니라
何以故[하이고]오 須菩提[수보리]야 如來[여래]가 設第一波羅蜜[설제일바라밀]이 卽非第一波羅蜜[즉비제일바라밀]일새 是名第一波羅蜜[시명제일바라밀]이니라
참으로 옳은 말이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반드시 알라. 이 사람도 대단히 희유한 사람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말한 제일바라밀이란 곧 제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일 뿐이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상 떠난 사람은 모두가 부처라고 자신 있게 말하자, 부처님께서 "여시여시如是如是, 그렇다, 그렇다."라고 똑바로 인가해 주십니다. 수보리가 단한마디 말로써 부처님을 정의하는 것도, 부처님이 그것을 인가하시는 것도 정말 놀랄만한 일입니다. 조사어록에도 조사스님들과 제자들이 법거량을 하다가 소견이 맞아떨어졌을 때 '여시여시'라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 그래, 맞는 말이야'라는 말이 최고의 인가입니다. 이 대목은 금강경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가는데 있어서도 '상 떠난 사람이 부처란다.'하는 말은 큰 교훈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보통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매우 희유한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불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부처님이 대단한 성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불현듯 나타나서 "사람이 부처님이지, 법당에 있는 불상이 부처님이냐? 석가모니만 부처가 아니다. 상相만 떨어지면 바로 부처님이다."라고 말한다면 깜짝 놀라면서 부처님께 벌 받으려고 그런 소리 하느냐며 힐책할 것입니다. 다른 종교 같으면 더 큰일 날 일입니다.
200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본의 어느 해안지방에 천주교가 들어와서 암암리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중앙의 어떤 장군이 지방에 시찰을 왔습니다. 으레 그 지방 기생이 수청을 들게 되어 있었는데, 수청 들러 들어오는 족족 자결을 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알아보니 전부 천주교를 믿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장군이 그 얘기를 듣고, 그 지방 천주교인들을 전부 색출해 낼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나무판에 마리아상을 그려놓고 동네 사람들을 전부 나오라고 해서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못 밟을 거라는 것을 예상했던 것이지요. 동네 사람 전부 줄을 세워 마리아상이 새겨진 나무판을 밟고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밟고 지나가고,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죽었지 밟지 않아서 전부 몰살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종교가 무서운 것입니다. 종교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느냐? 종교를 위해 사람이 존재해야 하느냐?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맹목적으로 종교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리는 것은 무의미한 희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또한 종교라는 상相에 떨어진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상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는지 역사가 증명합니다. 중세 암흑시대,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세계 곳곳의 국지전의 원인을 살펴보면 종교, 특히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줄기차게 무상無相을 강조하는 금강경을 세계인의 교과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육바라밀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그것마저도 그 이름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행, 지혜)은 불자들이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겨야 할 수행 덕목입니다. 그 중에 여래가 말한 제일바라밀은 보시바라밀입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상 없이 베풀라'고 했습니다. 상 없이 베푸는 삶이 보살의 삶입니다. 금강경에서 권유하는 삶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상을 떠난 사람이고, 상 없이 진리의 가르침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없이 베푸는 보시바라밀마저도 그 이름이 보시바라밀이라고 하였습니다. 베푸는 것에 대해서도 '상없이 베풀어라' '부처님께 밥 두 숫가락을 올리듯이 무심히 베풀어라' 등등의 온갖 좋은 표현을 많이 했지만 그 역시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므로 거기에도 떨어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금강경에서는 제일바라밀을 지혜바라밀로 보기도 합니다. 금강과 같이 빛나는 지혜, 제일바라밀이라는 상을 낼까 봐 제일바라밀이 제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일바라밀이 무엇이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보살이 열반을 얻을 수 있는 수행덕목인 바라밀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상相이 없으니 분노와 원한도 없다.
수보리須菩提야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을 여래如來가 설비인욕바라밀說非忍辱波羅蜜일새 시명인욕바라밀是名忍辱波羅蜜이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야 여아석위가리왕如我昔爲歌利王에 할절신체割截身體하야 아어이시我於爾時에 무아상無我相하며 무인상無人相하며 무중생상無衆生相하며 무수자상無壽者相이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아어왕석절절지해시我於往昔節節支解時에 약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응생진한應生嗔恨일러니라
수보리야, 인욕바라밀도 여래는 말하기를 ‘인욕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다’라고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찢길 적에, 내가 그때에 나라는 상이 없었으며, 남이라는 상도 없었으며,중생이라는 상도 없었으며, 수명에 대한 상도 없었노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가 옛날 팔과 다리가 마다마디 찢겨지고 무너질 때에 그때에 만약 나에게 나라는 상이나 남이라는 상이나 중생이라는 상이나 수명에 대한 상이 있었더라면, 반드시 분노의 불을 뿜고 원한을 품었으리라.
제일바라밀이 그렇다면 나머지 다섯 가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역시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 방편상 육바라밀이라고 하는 명제를 걸어놓고 ‘이렇게 수행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금강경 이전의 가르침이 ‘상을 내도 좋으니 우선 철저히 육바라밀을 실천하라’는 입장이었다면, 금강경에서는 ‘무슨 수행이든 상이 없는 수행일 때 진정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욕바라밀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 특히 할머니들에게 “나같이 팔자가 기구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젊어서는 매서운 시어머니 시집살이에 눈물짓고, 늙어서는 세상이 변해서 며느리 시집살이를 하고 있으니 나같이 불쌍한 인생이 없다며 신세 한탄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 아픔을 주춧돌 삼아 수행을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사실 팔자 기구하기로 따지면 부처님,예수님보다 더한 사람이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성인은 그만두고 부처님만 살펴보면, 부처님께서 비록 왕자의 귀한 신분으로 태어났다 해도 태어나자마자 일주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리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와 궁녀들이 잘 돌봐주었다 해도 어머니만 하겠습니까?
어머니 없이 자란 부처님은 온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한창 왕성하게 법을 전할 때 코살라 국의 유리왕이 부처님의 고국인 카필라 국을 침범해서 석가족을 멸망시켰습니다. 부처님은 이웃나라 군대가 당신의 고국을 침범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하는 광경을 모두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맨 처음 유리왕이 카필라 국을 치려고 할 때 길목에서 부처님이 기다렸습니다. 바싹 마른 나무 밑에 서서 인도의 작열하는 탸양빛을 그대로 받고 계신 부처님을 보고 유리왕이 말에서 내려와 인사를 하면서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 무성한 숲의 그늘 아래 계시지 왜 이렇게 바싹 마른 나뭇가지 밑에 서 계십니까?”
“대왕이시여, 대왕께서 나의 고국 카필라 성을 쳐들어가서 석가족을 멸망시키러 가는 이 순간 나의 심정은 이 타 들어가는 나무와 같습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유리왕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하여 군사를 돌려 코살라 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까지 그렇게 하였는데, 세 번째로 유리왕이 쳐들어 왔을 때는 도저히 부처님도 어떻게 할 길이 없는 악연임을 알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고국이 멸망하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할절신체, 온몸을 낱낱이 잘리는 것과 같은 마음이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역사적인 인물인 유리왕 대신 부처님께서 과거 전생에 인욕 선인일 적에 핍박했던 가리왕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런데 신체를 마디마디 칼로 오리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겪으면서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기 때문에 원망하고 분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내 마음은 텅 빈 상태에서 당신을 감화시키고 인과의 매듭을 풀어보려고 거기에 섰을 뿐이다󰡑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탐욕의 불길에 휩싸여 있는 유리왕과 군대를 측은한 마음,연민의 마음으로 안타깝게 지켜볼 뿐입니다. 동족인 석가족을 짓밟고 멸망시켜도 분노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자기 부모를 죽인 사람에게도 원수를 갚지 말라는 게 불교사상입니다.
구름 같은 존재(Being Like A Cloud)-우성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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