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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38
普德華 2021-07-01 09:32:42, 조회 : 991, 추천 : 0
탐.진.치 삼독이 그대로 불법이다.

若有人(약유인)이 言如來得(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면 수보리야 實無有法得(실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수보리야 如來所得(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於是中(어시중)에 無實無虛(무실무허)니라. 是故(시고)로 여래가 說一切法(설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이라 하니라.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하더라도 수보리야 실로 고정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최상의 깨달음은 여기에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일체법이 모두 다 佛法(블법)이다'라고 하느니라.

편의상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實無有法(실무유법)이라, 실은 그런 법이 없습니다. 어떤 고정된 것을 가리켜 이것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것이라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래가 깨달음을 얻었다'라는 표현을 안 할 수도 없습니다. 실제로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6년 고행을 하고, 보리수 아래에서 납월(음력12월) 8일 큰 깨달음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 이 날 생사의 근원적인 의문을 풀고, 모든 집착을 끊고, 광대무변하고 영원한 진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이날 성도재일 법회를 봉행하면서 부처님의 성도를 기립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깨달음도 어떤 고정된 법, 실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절에 있으면 여러 신도님들이 다녀갑니다. 대부분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 놓고 갑니다. 신도님들의 고민을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위안이 될 만한 말씀을 해드리면 어두운 얼굴이 화사하게 밝아집니다. 절에 올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으로 절문을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도님들에게 그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번뇌덩어리가 사라진 듯한 마음의 변화가 오고,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드러나 환히 비치는 느낌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게 어떤 고정된 법,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無實無虛(무실무허),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는 말입니다. 있다고 하자니 실체가 없지만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신 것도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실상이 무실무허입니다. 모든 존재는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닌 중도의 원리로 존재합니다. 깨달음 역시 중도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소리를 '악'하고 질렀습니다. 소리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미 소리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금방 있다 금방 없어지니 있다 없다의 구분이 애매합니다. 또한 있고 또한 없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亦亦無 非有非法) 소리의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상위에 컵을 예로 든다면, 언제부터 이 곳에 있었는가?

누가 만들어서 갖다 놓은 것인가? 원래 있었다고 할 수도 없고 현재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컵을 창 밖에 던져버리면
책상 위의 컵은 방금 전까지 있었다가 현재는 없지만, 완전히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존재합니다. 이러한 존재의 실상을 알면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그야말로 유쾌.상쾌.통쾌하게 살 수 있습니다. 중생들의 병은 대부분 치우치는 것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있는 것에 치우치고 없는 것에 치우칩니다. 허망하다해서 버릴 수는 없습니다.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어서 썩을 허망한 육신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반드시 입히고 먹이고 씻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중도의 원칙은 명예, 돈, 육신, 사물 등 모든 것에 적용됩니다. 모든 것이 중도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도 중도적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일체법이 개시불법, '모든 것이 그대로 불법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탐.진.치 삼독을 끊어야 되고, 망상을 없애야 되고, 번뇌의 업장을 소멸해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비단 소승불교만이 아닙니다.

대승불교권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금강경에서는 탐.진.치 삼독 그대로 불법이요, 팔만사천  번뇌 그대로 불법임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불법이라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합니다. 탐진치 삼독을 끊으려고 하지 마세요.

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진흙 없이 연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진흙 그대로가 연꽃입니다. 一切法(일체법)皆是佛法(개시불법)은 최상의 안심법문입니다. 이 한 구절만 마음에 새겨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신청곡 : 나무 관세음보살(능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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