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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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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2 14:35:47, 조회 : 88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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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감정 자리에 불법佛法이 들어가는 이치
須菩提야 소언일체법자所言一切法者는즉비일체법 卽非一切法일새 시고是故로 명일체법名一切法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비여인
신장대譬如人身長大하니라
수보리언須菩提言하사대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가 설인신장대說人身長大가 즉의비대신卽爲非大身일새 是名大身이니다
수보리야, 이른바 일체 법이라는것은 곧 일체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일체 법이니라.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이 아주 큰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아주 크다는 것도 곧 큰 몸이 아니고 그 이름이 큰 몸일 뿐입니다.”
바로 앞에서 실한 것도 아니고 헛된 것은 더더욱 아닌 진공묘유한 상태를 말로 표현자자니 일체 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또 일체 법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따로 있는 줄 알고 일체 법일라는 상에 매이는 병에 걸릴까봐, 얼른 그 이름이 일체 법이라고 하면서 치료를 해 주는 대목입니다. 금강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즉비의 논리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남자가 아니라 그 이름이 남자고, 여자가 여자가 아니라 그 이름이 여자다’ ‘부처가 부처가 아니라 그 이름이 부처다’라는 모든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법이 곧 일체 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일체 법임을 부연설명해 주는 내용으로 앞에서는 사람의 몸을 수미산만큼 장대하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아주 크다고 펴현하였습니다. 수미산만한 몸이든 아주 큰 몸이든 없는 것을 만들어서 말한 것뿐입니다.
경에서는 수미산이라고 했지만, 이해하기 쉽게 서울 남산만한 몸이 있다고 해도 되고, 그 또한 이름이 큰 몸입니다. 아무리 장대한 몸이 있다 하여도 결국 사대와 오온이 잠시 인연으로 결합되어 있을 뿐입니다. 인연이 다하면 그 장대했던 몸도 다 흩어지고 본질 자리는 텅비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것도 실로 큰 몸이 아니고 이름을 큰 몸이라 붙였을 뿐입니다.
일체 법, 장대한 몸, 중생, 부처,남자, 여자등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갖다 붙여도 모두 다 그 이름이 그러할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존재뿐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했을 때 그 미워하는 감정이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이름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원수 같은 자식 미워 죽겠다’는 감정도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습니다. 금강경 공부를 통해 감정도 이름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미운 감정 자리에 불법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일체 법이 다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즉비의 논리만 꿰뚫어도 금강경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경은 고질적인 상병相病의 특효약
수보리須菩提야 보살菩薩도 역여시亦如是하야 약작시언若作是言하대 아당멸도무량중생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즉불명보살卽不名菩薩이니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야 실무유법명위보살實無有法名爲菩薩이니라 시고是故로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이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노라
수보리須菩提야 약보살若菩薩이 작시언作是言호대 아당장엄불토我當莊嚴佛土라하면 시불명보살是不名菩薩이니 하이고何以故오 여래如來가 설장엄불토자說莊嚴佛土者는 즉비장엄卽非莊嚴일새 시명장엄是名莊嚴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약보살若菩薩이 통달무아법자通達無我法子는 여래如來가 설명진시보살說名眞是菩薩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도 이와 같아야 하나니, 만약 ‘나는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노라’고 말한다면 이는 곧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이를 보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일체 법이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다’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세상을 장엄하노라’라고 한다면 이는 보살이라고 이름 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말하는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수보이랴, 만약 보살이 무아無我의 이치를 통달하였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진정한 보살’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보살은 나니 너니 하는 상대적인 생각이 끊어져 지극히 평등한
원리를 깨친 사람입니다. 아니 사실 모든 사람이 본래 보살이요, 부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해도 제도하는 바가 없습니다. 제도한다는 것을 굳이 말하자면, 각자가 갖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생명의복을 캐내어 쓸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도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을 쏟아놓으신 것이 아니라 중생들이 모두 그대로 진리임을 밝혀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보살이 중생을 제도했다고 해도 제도했다는
관념, 상相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보살이 아닙니다. 또한 ‘그 사람은 육바라밀을 잘 닦는다’ 그 사람은 봉사활동을 잘 한다‘ 등등 어떤 고정된 명제를 붙여놓고 보살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모두가 공을 근본으로 하여 잠시 인연을 갖고 있을 뿐인데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보살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머물러서 보면 일체 법의 진실을 볼
수 없습니다. 일체 법은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랑, 미움, 기쁨, 슬픔, 돈, 명예 등등 모든 것이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체가 없는 허깨비에 속아서 우왕좌왕하고 괴로워합니다. 한평생을 헛되이 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나온 인생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허망한 환상에 집착하지 말라고 그토록 곡진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10분 장엄정토분에서도 설명 드렸습니다만, 장엄불토는 세상
을 장엄하는 것입니다. 어떤 장소, 어떤 모임이든 사람으로 장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느 법회에 명사가 여럿이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참석한다고 하면 모두들 환희심을 냅니다. 사람 장엄이 그 어떤 장엄보다도 빛나는 장엄이라는 것은 평소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공자께서 해동(우리나라)에 가고 싶다고 하자, 제자들이 길도 험한데, 그 누추한 동쪽 오랑캐 나라에 왜 가려고 하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아니다, 그 나라는 군자가 사는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군자가 사는 곳이기 때문에 훌륭하고 대단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거기에 고정 불변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와서 법회가 빛났다, 사찰이 빛났다.”고 하면 보살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무리 공로가 많고 그 사람이 와서 그 행사가 빛나고, 대한민국 국민이 그 사람 덕분에 산다 하더라도 생색내는 그 순간 이미 그 공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로자가 어느 순간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장엄 또
한 즉비의 논리로 그 이름이 장엄일 분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무아는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 여기에서 무아법無我法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아법이란 아我가 없는 법입니다. 통달무아법자는 나와 너라는 분별심을 떠나보내고, 중생을 제도한다거나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상相을 비워 철저하게 아我가 없는 무아법의 이치를 깨친 사람입니다. 무아無我가 되어야 진정한 보살이라는 겁니다. 제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해도 무아가 되지 않으면 보살이라 할 수 없습니다.
봉사활동 잘하고 보시 잘하고 세상에 공헌이 많아도 생색을 내면 보살은 고사하고 중생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생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병은 상병相病입니다. 이 병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아주 독하고 고질적인 병이기 때문에 이토록
자주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이 상병 하나를 고치기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장황하게 설법한 것이다.”라는 결론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신청곡 : 관세음의 노래(김무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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