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방송게시판
|
|
|
|
![]()
|
|
2021-07-06 10:58:26, 조회 : 964, 추천 : 0 |
|
|
|
금강경 제18분. 한 몸으로 동일하게 보다(一體同觀分)
끝없는 우주 한량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별의별 종류의 많고 중생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마음, 한 가지 망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의 세계 또한 실존實存하는 것이 아님을 설하시면서 그 공적空寂한 세계를 환히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망념이 사라지면 중생들의 한량없는 갖가지 마음들이 텅 비게 됩니다. 오직 맑고 깨끗한 마음뿐입니다.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요, 부처의 마음이 곧 중생의 마음입니다. 중생과 부처는 같은 몸, 한몸입니다. 중생과 부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한 몸입니다.
“천지天地는 여아동근與我同根이요 만물萬物은 여야일체與我一體라 하늘과 땅은 나와 그 뿌리가 같고, 온갖 만물은 나와 한 몸”입니다. 한 몸인 그 마음에서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나눌 수 없습니다. 공간도 시간도 혼연히 하나이거늘 무슨 과거 현재 미래를 분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은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한몸으로 동일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 등 다섯 가지 특별한 눈[眼]을 갖추신 부처님께서 오안五眼을 총동원해서 보신 것이 일체동관입니다. 부처님께서 일체동관하심으로써 중생은 모두 다 부처님으로 승격된 것입니다. 중생과 부처는 본래 한몸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로 보는 이는 부처요, 그렇지 못한 이는 아직까지 스스로 부
님임을 깨닫지 못한 중생입니다.
부처님의 오안도 눈썹 밑을 떠나지 않았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아於意云何오 여래유육안부如來有肉眼不아 여시如是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가 유육안有肉眼이니다
수보리須菩提아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유천안부如來有天眼不아 여시如是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가 유천안有天眼이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유혜안부如來有慧眼不아 여시如是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가 유혜안有惠眼이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유법안부如來有法眼不아 여시如是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유법안如來有法眼이니다
수보리須菩提아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유불안부如來有佛眼不아 여시如是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유불안如來有佛眼이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육안(肉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깨서 육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천안(天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천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혜안(慧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혜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법안(法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법안이 있으십니다."
"수보이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불안(佛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불안이 있으십니다.
육안(肉眼)은 사물을 볼 수 있는 실제적인 눈입니다. 육안은 사물의 형태나 색깔, 원근은 구별할 줄 압니다만, 두루 보지 못하는 제한적인 눈입니다. 앞을 보면 뒤를 보지 못하고, 안을 보면 밖을 볼 수 없으며, 밝은 곳에서는 볼 수 잇으나 어두운 곳에서 전혀 볼 수 없는 매우 부자유스러운 눈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셨기에 당연히 육안이 있지요. 천안(天眼)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먼 곳이나 미세한 사물까지도 뚫어볼 수 있는 신통한 눈을 말합니다. 천안을 갖추면 보고 싶은 것을 다 볼 수가 있습니다. '산하석벽무장애(山河石壁無障碍)'입니다.
가려져 있든지 거리가 멀든지 아무런 장애 없이 가만히 앉아서 산하석벽을 꿰뚫고 다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 현재 미래생은 물론이고 지옥이나 극락세계까지 다 볼 수 있습니다. 육신통(肉神通)을 갖추신 부처님께서는 천안(天眼)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마치 손안의 거울처럼 들여다보셨습니다.
신통하기 그지 없는 천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혜안입니다.
산 너머, 벽 뒤를 보는 것이 삶에 무슨 이익을 주겠습니까? 남의 전생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에서는 혜안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혜안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니 혜안이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무슨 문제든 즉시 해결되니 문제라고 문제라고 하는게 사라집니다.
혜안은 만법의 현상 너머에 내재되어 있는 공적한 자리를 깨닫는 눈입니다. 공(空)과 무상(無相)의 도리를 증득하여 현상에 끄달라지 않고 집착을 떠나보내는 눈입니다. 예를 들어, 육신이 공9空)한 줄 알면서도 육신은 육신대로 인정할 줄 아는 것이 혜안입니다. 봄에는 온갖 꽃들이 피고 가을이면 낙엽이 곱게 물들어 떨어지는 자연의 현상처럼 모든 것이 인연(因緣)으로 이루어졌다가 인연의 힘이 다하면 뿔뿔이 흩어진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 혜안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연기, 인연의 도리를 깨닫는 것이 혜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손꼽히는 열 분 제자 중에서 신통제일 목건련과 지혜제일 사리불은 부처님께 귀의하기 전부터 대중들에게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제자들이 무려 250명이나 되었지요. 절친한 도반이었던 이 두 분은 늘 의지하며 수행하다가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서로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사리불은 마승 비구의 고매한 모습을 보고 감동합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어던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기에 저허게 훌륭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승 비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보통 사람들과 행색이 매우 다릅니다. 도대체 어떤 스승을 모시고 어떤 가르침을 배우고 있기에, 인품이 그렇게 높아 보입니가?"
"세존(世尊)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그분의 제자들의 모습을 닮아서 그렇습니다."라는 마승 비구에게 사리불이 "그 분은 어떤 가르침을 전해주느냐, 아는 대로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초보자라서 잘 모릅니다.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일러줄 게 없습니다."라는 마승 비구에게 단 한마디라도 들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리불의 청에 마승 비구가 "아불대사문(我佛大沙門) 상작여시설(常作如是說), 우리 부처님 깨달으신 분께서 늘 이와 같은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그래서 한 마디는 제가 기억하고 있는데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모든 법(法)은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인연에 의해서 소멸(消滅)된다'고 하셨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생성(生成) 변화가 다 인연의 도리로 있는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하나도 없다는 이치를 주로 설하여 주신 다는 마승 비구의 말을 듣고 사리불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리불은 곧바로 친구인 목건련에게 달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목건련 역시 스 자리에서 깨닫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사리불과 목건련처럼 가장 요긴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 인연의 도리를 꿰뜷어 볼 수 있는 혜안입니다. 그것만 잘 알면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법안(法眼)은 진리의 눈, 진리를 구별해 낼 수 있는 안목입니다. 혜안과 법안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지만 세밀하게 살피면 조금 다릅니다. 법안은 일체 법을 분명히 비추어 볼 줄 하는 눈으로서 현상 너머의 만법이 평등해진 가운데 또 뚜렷이 자리 잡고 잇는 차별까지도 구별해 내는 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저것은 이것이 아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중생들을 교화하는 진리의 눈, 법안을 갖고 계십니다.
부처님의오안(五眼) 중에서 다섯번째가 불안(佛眼)입니다. 불안은 부처님만이 갖추고 계신 눈으로 앞의 네 가지 눈을 하나로 합한 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안에 대해 이렇듯 하나하나 거론하신 것은 완벽한 안목을 갖추신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중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다 살펴서 볼 줄 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뒷전에 콕 쳐박혀 잇으면서 '부처님도 내 마음은 못 살필 거야'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부처님은 오안으로 보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의 많고 많은 생각들을 그냥 다 아시는 겁니다.
조사스님들이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들의 육안이나 부처님의 오안이나 다 눈썹 밑에 있는 그 눈을 떠나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썹 밑에 있는 육안, 부처님과 똑같이 우리들도 가지고 있는 그 두 눈을 떠나 있지 않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혜안, 천안, 법안, 불안이 파생된 것입니다. 또한 육안으로 보나 오안으로 보나 장미는 붉고 백합은 흽니다. 이 도리를 알아치리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신청곡 : 마음(강주현) |
|
|
|
|
|
|
|
|
|
|
|
|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