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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7 09:36:28, 조회 : 88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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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민 사회의 테라바다불교
이민 불교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학자인 폴 눔리치에 따르면, 1990년 미국 내 테라바다 이민 불자는 약 250만에서 750만 명이다. 2011년 미국에서 와트나 비하라라고 불리는 테라바다 사찰은 약 350개이며 천 명 이상의 테라바다 승려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단기 종교비자로 아시아에서 온 승려들이다. 테라바다 사찰은 주로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일리노이에 분포하며 대부분 아시아 테라바다 교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아파트나 가정집을 빌려 운영되는 비공식적인 사찰도 상당수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언어, 경제, 문화적 차이 때문에 겪는 많은 어려움과 차별,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자신들의 종교생활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사찰은 테라바다불교의 전통적 세계관과 미국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민자들은 많은 비하라와 왓을 세운 다음 승려들을 초청하기 위해 아시아에 있는 종단과 협력했다.
이민 사회뿐 아니라 사찰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법적, 사회적, 종교적 문제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나타나는 불교 전통의 차이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승려와 재가신도 중 누가 사찰을 대표해야 하는가, 사찰은 엄격하게 종교적이어야 하느냐, 아니면 사회 · 문화 · 종교적 기능을 담당해야 하느냐' 등 광범위한 문제가 토론되었으며, 그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일부 사찰은 재정적 지원이 증가하자 후원자들의 미적 취미와 요구에 맞추어 대도시 교외에 전통 양식의 새 건물을 신축하거나 구입했다.
그러나 테라바다 불자의 약 40퍼센트를 구성하는, 혁명과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온 라오스와 캄보디아 망명자들은 훨씬 많은 정서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교 사찰은 이들에게 사회적, 종교적 연속성을 제공해 주지만 경제적 형편 때문에 대도시에서도 방세가 싼 지역에 사찰을 짓거나 임대하고 있다. 이처럼 사찰이 특정 후원자의 요구에 맞추어 설립됨에 따라 테라바다불교의 분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이민 2세가 자라남에 따라 방과 후 프로그램, 불교 여름캠프, 일요 다르마학교 등을 개설하며 테라바다 전통을 미국 양식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신대륙에서 테라바다불교 승려들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만났다.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은 승가 지원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음식을 비롯하여 돈, 의복 등 생활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에서 불편을 겪었다. 돈도 없고 탁발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승려들은 손수 음식을 만들었고,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신도를 만나려면 운전도 해야 했다. 하지만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승려들이 신발, 양말, 스웨터를 입거나 미국에서 예절과 우정의 표현으로 간주되는 관습, 예를 들어 여성과 악수를 나누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전통 승가의 규범을 지키기 위해 악수를 거절하는 것은, 사찰을 방문하거나 조언이나 가르침을 구하는 미국 여성들에게 대단히 무례한 일로 간주되는데, 이런 문화적 차이는 테라 바다불교가 미국에 정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날씨도 새로운 형식을 강요했다. 남아시아에서 입었던 가사는 미국 중서부 지역의 혹한을 견디기에는 너무 얇았다. 승복 때문에 승려들이 모욕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내복이나 외투를 입거나 승복을 입지 않는 방안이 검토되었지만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승복을 입지 않으면 다른 종교인으로부터 당하는 모욕을 피할 수는 있지만, 재가신도의 존경을 잃게 되며 심지어 승려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거나 승려답지 못한 행동을 할 수 있다. 또한 승복은 불교에 관심 있는 미국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결국 이 문제는 태국에 있는 최고 지도자의 허락을 얻어 승려들에게 겨울 내복을 제공함으로써 해결되었다.
또한 승려 수의 부족은 정기적인 포살을 불가능하게 했다. 승려들은 결계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모이기 어려웠다. 이는 승려로서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협을 주었으며 계율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승가의 연대를 느슨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2천 년 전에 제정된 계율이 현대사회에서 지키기 어려워지면서 계율의 변경은 미국 테라바다불교의 중대 문제가 되었다. 1987년 미시간에서 열린 북미세계불교대회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졌다. 하반폴라 라타나사라(1920~2000)는 환경에 맞추어 계율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작은 계율을 고치면 결과적으로 중요한 계율마저 지키지 않게 되므로 계율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인 승려들조차 계율이 승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이유로 변경에 반대했다. 그들은 대부분의 문제가 파계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재가신도의 보시 없이 승가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계율의 변경은 승려들뿐 아니라 재가신도들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실천하기 가장 불가능한 규칙의 가장 작은 변형조차 일어나기 어려웠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강한 수계 정신 때문에 미국에서 테라바다불교는 비승가적 지도 체제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중대한 도전은 이민 2세로부터 왔다. 전통 테라바다불교의 핵심이 비구 승가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테라바다 비구 승가의 번영은 테라바다불교의 번영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2세들은 승려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이민 1세들은 자녀들이 재가신도로서의 역할을 할지조차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불교는 재가 운동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미국인 개종자 중 선불교나 티베트불교에 출가한 사람보다 테라바다불교에 출가한 승려가 훨씬 적다. 테라바다불교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은 대체로 위빠사나, 통찰 명상에 제한되며 테라바다불교의 비구 중심주의는 지나치게 권위적이며 성차별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테라바다에 관심을 갖는 많은 미국인 중 승려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곧 가족, 부, 명예, 현실적 쾌락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승려의 삶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미국 사회에서 승려가 되는 것은 일상적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기이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문화적 저항 때문에 미국인 테라바다 승려들은 승복을 벗거나 아시아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미국 테라바다불교의 장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출가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처럼 아시아로부터의 이민이 계속된다면 승려들의 유입도 계속될 것이다. 승려 수의 증가는 포살의 시행을 쉽게 만들 뿐 아니라 공동체의 소속감도 강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새로 미국에 온 승려들의 빈약한 영어실력과 문화적 부적응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이민 2세 중 비구승이 나올 확률이 거의 없는 현재, 미국 테라바다불교는 끊임없이 아시아로부터 비구승을 수혈 받거나 또는 재가자 불교로 전환될 전망이다.
이 세상 한번 - 변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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