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42
普德華 2021-07-09 15:22:29, 조회 : 980, 추천 : 0
금강경 제19분, 법계를 모두 교화하다(法界通化分)

불교에서는 온 세상을 법계라고 합니다.이 무상無相 무주無住의 반야를 온 법계에 널리 펴서 법계의 중생들을 다 제도한다.
법계를 한꺼번에 교화한다는 뜻에서 통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로는 교화할것도 없이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안목에 따라서 부처의 세계, 중생의 세계, 보살의 세계 등 차이가 나보이는데 실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대로 진리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법계를 한꺼번에 교화한다고 하는 것도 아귀를 보살로 만들고, 중생을 부처로 만드는 식이 아닙니다. 안목이 없어서 그렇지 안목이 열리면 현재 모습 그대로 완벽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보살이 수행하는 육도만행의 요체는 상相에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이 우주에 가득 찬 칠보롤 사람들을 위하여 베풀었을지라도 그 마음에 베풀었다는 의식이 있으면 모두가 새어나가는 유루복이 됩니다.

그러나 베풀었다는 의식이 없으면 모두가 청정한 무루복이 되어 이 우주를 덮고도 남게 됩니다. 자성自性의 반야복은 본래로 상이 아닙니다. 한정된 모습의 상이 아니므로 비로소 그 복덕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모두 이 금강 반야의 복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분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법계에 있는 중생을 다 한꺼번에 제도하는 도리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는 연습을 하면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약유인若有人이 만삼천대천세계칠보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이용보시以用布施하면 시인是人이 이시인연以是因緣으로 득복다부得福多不아
여시如是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차인此人이 이시인연以是因緣으로 득복得福이 심다甚多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금은보화를 가지고 널리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인연을 얻은 복이 많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이 인연으로 얻은 복이 매우 많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좌석을 양보하거나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주는 작은 친절도 자꾸 쌓이면 큰 복이 될 터인데, 우주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금은보화로 남을 위해 아낌없이 썼다면 그 복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값진 재물로 보시를 했다 해도 한계가 있는 유루복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새어나갈 복이라도 자꾸 지어야 합니다. 사실 단돈 얼마라도 남을 위해 흔쾌히 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는 연습을 자꾸 해야 합니다. 주고 싶어도 쑥쓰러워 못 주는 사람도 있고, 줄 줄 몰라서 못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다 보면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압니다. 주는 그 순간의 기쁨, 그것만으로도 큰 복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자꾸 주는 연습을 하다 보면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고 싶어도 수중에 가진 것이 없어 못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무재칠시無財七施라 하여 재물이 없어도 줄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지극정성을 다하여 마음을 베푸는 심시心施, 자신의 육신을 가지고 남을 도와주는 신시身施, 따뜻한 눈길로 남을 편안하게 돌보아 주는 안시眼施, 다정한 말씨로 남을 격려해 주는 언사시言辭施, 온화하고 밝은 얼굴빛으로 베푸는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자리를 양보하는 좌상시座床施, 포근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방사시房舍施입니다.

이렇듯 생활 속에서 작은 정성으로도 베풀 수 있는 길이 많습니다. 배려, 양보, 친절이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알게 모르게 음덕이 되어 나에게 돌아옵니다. 모든 상황,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놓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정말 값진 것입니다. 특히 무상無相, 남을 돕고도 도왔다는 상 없이 도울 때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법계는 온통 복덕, 행복뿐이다.

수보리須菩提야 약복덕유실若福德有實인댄 여래如來가 불설득복덕다不說得福德多이니와 이복덕무고以福德無故로 여래如來가 설득복덕다說得福德多니라

“수보리야, 만약 복덕이 그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을 얻는 것이 많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복덕이 본래 없으므로 여래가 ’복덕을 얻는 것이 많다‘고 말하느니라.”

위에서 수보리는 우주에 가득 찬 금은보화로 보시를 하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큰 복덕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서는 뜻밖에도 복덕이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복덕이 본래 없기 때문에 ’복덕을 얻는 것이 많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특히 복덕 구족에 매여 있는 이들은 더더욱 헤맬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늘 복덕을 바라고 구하지만 그 복덕의 실상을 살펴보면

복덕이라고 할 게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옛날 한 나라를 호령하던 왕들이 복덕이 있다 한들 오늘날 우리나라 중산층의 복덕이 오히려 낫습니다.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미래인들이 보면 허잡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덕의 실상을 살펴보면, 복덕이 라고 할 게 없는 겁니다. 복덕은 실체가 없습니다. 복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덕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하는데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복덕의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전부 느끼는 데 있습니다. 병도 들고 찢어지게 가난하여 다른 사람들은 다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데, 정작 본인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고, 지위도 높고 재물도 넉넉하여 남들은 우러러 보며 부러워하는데, 본인은 불행하다고 탄식하며 늘 우울해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복덕, 행복은 아파트 평수나 통장의 잔고 등 눈에 보이는 것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복덕 역시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덕이 복덕이 아니라 그 이름이 복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복덕에 매여 있던 사람들, 복덕에 대한 집착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어찌 보면, 부처님은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과는 거꾸로 가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생들은 내일이면 없어질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손에 쥐려고 안달복달하며 집착하는데, 부처님께서는 그런 유루복에 연연해 하지 말고, 그 자체로 완전한 것에 눈뜨라고 하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눈뜨고 바라보면 이 세상은 법계, 진리의 세계입니다. 법계에는 행복이 충만합니다. 온통 행복뿐입니다.


신청곡 : 나누는 기쁨(해성스님)


  이전글 대보적경 제44권-12. 보살장회 ⑩/7) 시라... 법성화 2021-07-09
  다음글 대보적경 제44권-12. 보살장회 ⑩/7) 시라... 법성화 2021-07-08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