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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56(마지막회)
普德華 2021-08-05 10:24:24, 조회 : 983, 추천 : 0
상을 없애면 우리 안의 신통묘용이 드러난다

하이고何以故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하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하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왜냐하면 모든 작위作爲가 있는 것은 마치 꿈같고, 환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반드시 이와 같이 관찰하도록 하라.”

금강경의 마지막 제4사구게입니다. 일체 유위법은 모든 조작이 있는 법을 말합니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 너머, 실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현상에 속아서 살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지요. 말 한 마디만 해도 그렇습니다. 뜻을 새기지도 않고 소리에 반응하다 보면 백발백중 오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을 듣고 어떤 심정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잘 새겨보고, 그 사람의 기분에 대한 배려까지 해 주면 오해의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을 볼 때도 일차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해하기 쉽고 편견에 빠져 잘못 볼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 마지막 사구게에 나오는 몽夢 · 환幻 · 포泡 · 영影 · 로露 · 전電을 금강경의 육유六喩(여섯 가지 비유)라고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생각으로 그려지고 마음에 잡히는 모든 함이 있는 유위법有爲法은 모든 것이 다 꿈과 같고 환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은 것입니다. 잠시 형태를 취할 뿐이지 찰나 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금강경은 이 사구게로 결론을 맺습니다. 꿈을 꾸다가 꿈에서 깨보세요. 꿈속의 일이 순식간에 없어집니다. 환상도 그렇고,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순간이고, 무상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상相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반야의 등불을 밝혀서 보면 순식간에 스러지는 것인데, 상에 매달려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또 다른 업을 짓는 게 중생사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불쑥불쑥 상相 내고 싶은 마음을 자재하는 것입니다. 나이 들었다고 상 낼 일도 아니고, 돈 많다고 상 낼 일
도 아닙니다. 스님이라고 속인이라고 상 낼 일도 아닙니다. 못났다 잘났다, 배웠다 배운 게 없다는 것도 가당찮은 상입니다.

상이 올라올 때마다 “금강반야바라밀 금강반야바라밀 금강반야바라밀”을 외우면서 상이 스르르 가라앉는 경험을 해 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금강경은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제일 큰 병, 제일 큰 문제인 상병을 고쳐주는 가르침입니다. 금강경 공부로 반야지혜가 빛을 발하게 되면 내 삶도 환해지고 세

상도 환해집니다. 그것은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 안에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통묘용입니다. 하지만 상에 걸려버리면 활발한 신통묘용이 기를 못 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금강경에서 그토록 간곡하게 상을 없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을 거둬냈을 때 본래 갖추고 있던 자비와 지혜가 제대로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금강경 전법, 인류 평화의 지름길

불설시경이佛說是經已하시니 장로수보리長老須菩提와 급제비구비구니及諸比丘比丘尼와 우바새우바이優婆塞優婆夷와 일체세간천인아수라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문불소설聞佛所說하고 개대환희皆大歡喜하야 신수봉행信受奉行하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말씀하여 마치시니 덕이 높으신 수보리 존자와 여러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천신들과 아수라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모두 다 크게 기뻐하여 믿고 받아들이며 받들어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경전은 여시아문으로 시작해서 환희봉행이나 신수봉행으로 끝납니다.
금강경을 빨리 읽는 요령이 있습니다. “여시아문하여 신수봉행하니라.” 하면 금강경 한편 다 읽은 겁니다.

지금까지 부처님께서는 제자 수보리와 대화를 통해 상을 떠났을 때 나타나는 우리의 값진 인생에 대해 활짝 열어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대중이 크게 기뻐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할 것을 맹세하는 것으로 경전을 마칩니다.

금강경은 오천여 자에 지나지 않는 짧다면 짧은 경전이지만, 그 안에 삼라만상의 실상과 참된지혜가 완벽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몇가지 되짚어보면서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금강경의 원제목은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금강 반야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지혜, 바라밀은 도피안,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으로 다이아몬드와 같은 날카롭고 빛나고 견고한 지혜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제목만 보더라도 우리 인간의 숱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사 수많은 문제 중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아상我相(나에 대한 고집), 인상人相(남이라고 하는 데에서 오는 온갖 고집과 차별심), 중생상衆生相(궁극적인 입장에서는 부처님과 다를 바 없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죄 많는 중생, 부족한 인간이라고만 치부한다면 그 또한 큰 병이라는 것), 수자상壽者相(나이에 대한 한계 의식)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상병을 문제로 보고 응병여약, 병에 따라 약을 준다는 입장에서 치료하고 있습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 네 가지 상 가운데 가장 고치기 쉬운 것이 수자상인지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린 사람은 어린 대로 ‘나는 어리니까’ 하는 의식을 갖게 되고, 나이 든 사람은 ‘이 나이에 내가 뭘 할 수가 있겠어’ 하는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합니다. 하지만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서 볼 때는 이러한 것이 큰 병입니다. 불교에서는 결코 나이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나이 많은 행세를 하는 것도 병이고, 자포자기해서 더 이상 희망을 품지 않는 것도 병입니다. 안간은 유한한 존재가 아닙니다. 한계의식을 가질 존재는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 자리, 궁극적 삶의 자리에는 나이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이에 대한 의식을 극복하고 늘 꿈을 꾸고, 꿈꾸는 것을 바로 실천에 옮길 때 불교를 만난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금강경의 대지大旨는 파이집현삼공, 두 가지 집착을 깨뜨리고 세 가지 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집(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과 법집(나 이외의 모든 것을 법이라 하는데, 법에 대한 집착)을 깨뜨려 버리고 아공我空 · 법공法空 · 구공俱空의 이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름이 사라지면 저절로 푸른 하늘과 빛나는 태양이 드러납니다. 상병을 치유하는 데 더 이상의 특효약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금강경을 통해 상병을 깨고 나면 굳이 빛나는 태양과 푸른 하늘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자유의 삶이 펼쳐지고 날마다 좋고 행복한 삶이 펼쳐집니다.

특히 금강경은 돌아가신 분을 위한 최상, 최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49재를 지낼 때 금강경 독송을 많이 하고, 금강경 법공양을 많이 올립니다.

금강경을 통해 생명의 실상을 깨치게 해 주고, 저승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참으로 밝고 밝은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금강경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즉비卽非의 논리입니다. “금강경은 곧 금강경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이 금강경이다.”라는 것입니다. 금강경을 제대로 알면 굳이 금강경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이 새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불교든 부처님의 일이든 중생의 일이든 즉비의 논리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처님도 곧 부처님이 아니라 이 이름이 부처님이다. 마찬가지로 중생도 곧 중생이 아니라 이 이름이 중생이다. 보살도 보살이 아니라 이 이름이 보살이다.

부처님의 깨달음도 곧 깨달음이 아니라 이 이름이 깨달음이다. 병으로 제일 중요하게 다뤘던 사상(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도 곧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이 아니라 이 이름이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으로 말미암아 잠깐 일어난 한 조각 구름 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이 생겼던 것이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일단 그것을 부정하는 겁니다. 실재하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부정하지 않으셨겠지요. 아무리 혜안이 뛰어나고 중생들
을 위한 방편이라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부정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연연해하지 말라는 겁니다. 금강경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상四相도 부정하고, 그것과 한 꾸러미로 탐 · 진 · 치 삼독과 내지 팔만 사천 번뇌 망상도 다 부정합니다. 어둠은
본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존재한다면 교실에 불을 켰을 때 어둠이 문을 통해 나가는 시간이 있을 것 아닙니까? 문을 잠그면 어둠이 나가지 못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갈 틈이 없습니다. 불을 켜면 환하게 밝아집니다. 어둠이라는 게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어둠이 있다고 하는 것이 착각이고
환영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가 우리 존재의 실상입니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존재합니다. 우리는 혜안 · 법안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눈을 뜨고 보면 틀림없이 그렇게 비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 특히 부처님은 과감하게 상병은 본래 없는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우리의 상병을 치료하는 겁니다. 그것이 금강경에서여러 번 만날 수 있었던 즉비의 뜻입니다.

참으로 “반야바라밀이 즉비반야바라밀이요, 시명반야바라밀이다.”라는 구절은 유쾌,통쾌,상쾌한 말입니다. 속이 뻥 뚫리는 말입니다. “나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 아니요, 이 이름이 나의 고통이다. 나의 병은 곧 나의 병이 아니요 이 이름이 나의 병이다. 나의 공로와 공덕은 곧 나의 공로와 공덕이 아니고 이 이름이 나의 공로와 공덕이다.”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빛나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졌을 때 나의 짐, 나의 아픔, 온갖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됩니다. 문제점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의 좋은 점마져도 즉비의 논리를 적용시켜서 쓸어버린다면 내 인격은 어느새 훌쩍 성장해 있을 겁니다.

이와 같이 금강경의 가르침은 단순하면서도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데 정곡을 찌르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자고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선사들이 금강경을 매우 좋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선종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육조 혜능 스님이 나무 한 짐 팔러 다니다가 금강경을 통해 다이아몬드 한 짐을 짊어지고 간 역사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더 나아가 지금 우리의 삶에 되살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금강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자꾸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전법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금강경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서 스스로 본래 지니고 있는 자기 안의 신통 묘용을 드러내 당당하고 값진 삶, 행복한 삶을 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에서 나아가 온 인류가 진정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가르침, 근원적인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경전이 금강경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금강경 전법에 힘쓰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신청곡 : 회향(범능스님)
법성화 [2021-08-07] : 보덕화 법우님 감사합니다 금강경 공부를 좀더 깊이 할수있는 계기가 되 었습니다. 이 공덕으로 부처님 되시고 건강하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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