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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37
普德華 2021-10-08 14:41:56, 조회 : 887, 추천 : 0
6. 가전연과 논의(論議)
        
佛告摩訶迦旃延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迦旃延이 白佛言하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昔者에 佛爲諸比丘하야 略說法要어늘 我卽於後에 敷演其義하되 謂無常義며 苦義며 空義며 無我義며 寂滅義라하니

부처님께서 마하가전연에게 말씀하였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여라.” 가전연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억해보니 저가 옛적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법의 요점을 간략하게 설명하셨는데 저가 곧 그 뒤에 그 뜻을 부연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무상의 뜻이며, 괴로움의 뜻이며, 공의 뜻이며, 무아의 뜻이며, 적멸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강설 ; 다음에 유마거사에게 문병가기를 권유받은 제자는 부처님의 법문을 좀 더 친절하게 해석하여 들려주는 일에 마음을 쏟았던 마하가전연이다. 경전이나 어록이 설해진 때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시대와 상황에 알맞게 재해석하는 일이 중요하다.

부처님 당시에도 법문을 듣고 나서 그것을 좀 더 부연하여 설명하는 제자가 있었다. 그중에서 마하가전연이라는 제자가 그 부분에는 가장 뛰어났다. 뒷날에 성행한 론(論)이나 소(疏)나 초(抄)나 강설, 해설, 강의 등이 그것에 해당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좀 더 친절하게 풀어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자칫 오류를 범하여 부처님의 뜻을 왜곡되게 전한다면 그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소승불교에서 주로 어떤 교의를 설파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곧 무상(無常)과 고(苦)와 공(空)과 무아(無我)와 적멸(寂滅)의 이치였다.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아 부정하고 무가치하게 보는 내용들이다. 인생은 “무상하다. 괴롭다. 텅 비었다. 무아다. 고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설명하였다. 이와 같은 설명에 대하여 유마거사는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가?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唯迦旃延이여 無以生滅心行으로 說實相法이어다

그때에 유마힐이 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여보시오. 가전연이여, 생멸하는 마음으로 실상의 법을 설하지 마십시오.

강설 ; 무이생멸심행 설실상법(無以生滅心行 說實相法)이라는 말은 유마경의 명구다. 수많은 조사들이 인용하였다. 모든 문제도 그렇듯이 존재의 실상은 그 실상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정확하게 안다. 생멸하는 마음으로 존재의 실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마치 빠르게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빌딩이나 다른 건물이나 심지어 산을 봐도 모두가 움직인다. 그리고 빠르게 지나간다. 빌딩도 움직이고 산도 움직인다. 실은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것은 기차를 타고 있는 내가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 아니하면 생멸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 모두가 자기의 안목만큼만 알고 본다. 그러므로 불교는 불교로 설명해야 하고 기독교는 기독교로 설명해야 하고 유교와 도교는 유교와 도교로 설명해야 한다.

만약 불교적으로 기독교를 설명한다든지 유교나 도교적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생멸의 문제이겠는가.

迦旃延이여 諸法이 畢竟에 不生不滅이 是無常義오 五受陰이 洞達하야 空無所起가 是苦義오 諸法이 究竟無所有가 是空義오 於我無我에 而不二가 是無我義오 法本不然거늘 今則無滅이 是寂滅義라한대 說是法時에 彼諸比丘가 心得解脫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이니다

가전연이여, 모든 법은 필경에 불생불멸하는 것이 이것이 무상의 뜻입니다. 5음을 통달하여 텅 비어 고통이 일어나는 바가 없는 것이 이것이 괴로움의 뜻입니다.

모든 법이 구경에 있는 바가 없는 것이 이것이 공의 뜻입니다. 아와 무아가 둘이 아닌 것이 이것이 무아의 뜻입니다. 법은 본래 그렇지 아니하지만 지금은 소멸하지 않음이 이것이 적멸의 뜻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법을 설할 때에 저 여러 비구들이 마음에 해탈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강설 ; 유마거사의 해석법을 들어보자.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그 실상이 불생불멸이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도 이와 같은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무상과는 전혀 다르다. 고통이라는 것도 5음으로 된 이 육신이 텅 비어 고통이 생길 곳이 없다는 사실이 고통이라는 뜻이다.

아와 무아가 둘이 아닌 것이 무아의 뜻이다. 이와 같은 등으로 법을 풀이하는 말을 듣고 법문을 듣던 비구들은 해탈을 얻었다. 가전연은 이와 같은 경험이 있으므로 도저히 유마거사에게 문병을 갈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신청곡 : 이뭐꼬(도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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