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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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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0 10:09:24, 조회 : 88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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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덕과 법보시
佛告長者子善德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善德이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自於父舍에 設大施會하여 供養一切沙門婆羅門과 及諸外道와 貧窮下賤과 孤獨乞人하되 期滿七日이러니다
부처님이 장자의 아들 선덕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여라. 선덕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도 또한 감히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억하여 생각해보니 저도 옛날에 스스로 아버지의 집에서 큰 보시의 모임을 열어서 모든 사문과 바라문과 여러 외도들과 빈궁한 사람들과 하천한 사람들과 고독한 사람들과 걸인들에게 7일이 차도록 공양을 베풀었습니다.
강설 ; 이번에는 장자의 아들 선덕이라는 사람에게 문병 가기를 부촉하였다. 그도 역시 사양한다. 그 이유는 장자의 아들이므로 큰 보시의 모임을 열었다가 유마거사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보시란 어떤 것인가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드릴 수 없음을 밝힌 내용이다.
선덕은 부자이므로 재산을 풀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7일간 공양을 대접하는 보시의 모임을 열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 고려 때도 반승(飯僧)이라 하여 수 백 명, 또는 천명, 심지어 3천명까지 서울로 전국의 스님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대접한 역사의 기록이 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유마경에서 일찍이 거사의 질책이 이렇게 있었건만 교통도 불편한 시기에 왜 꼭 그렇게 했었는지 궁금하다. 고려불교가 사양길에 접어들어 조선에 와서 배불정책의 수난을 당하는 한 현상이리라.
時에 維摩詰이 來入會中하야 謂我言하되 長者子여 夫大施會는 不當如汝所設이니 當爲法施之會어늘 何用是財施會爲오 我言居士여 何謂法施之會닛고 答曰 法施會者는 無前無後로 一時供養一切衆生이 是名法施之會니라
그때에 유마힐이 보시의 모임을 하는 중에 들어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장자의 아들이여, 대저 큰 보시의 모임이란 그대가 하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법을 보시하는 모임을 해야 합니다. 어찌하여 이런 재물을 보시하는 모임을 하였오?”하였습니다.
저는 거사에게 말하였습니다. “무엇이 법을 보시하는 모임입니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법을 보시하는 모임이란 앞도 없고 뒤도 없으며 일시에 일체중생에게 공양하는 것이 이것이 이름이 법을 보시하는 모임입니다.”
강설 ; 보시하고 공양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 장자의 아들이 하는 것처럼 음식을 보시하고 재물을 보시하고 약을 보시하고 의복을 보시하는 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는 보시에도 차원이 다르다. 항상 권장하는 말이 법공양, 법보시다. 많은 불자가 독송하는 보현행원품에 이렇게 설하였다.
“이른바 꽃과 꽃다발과 천상의 음악과 천상의 일산과 천상의 옷과 천상의 여러 가지 향과 바르는 향과 사르는 향과 가루 향들이니라. 이와 같은 무더기 하나하나가 수미산과 같이 크니라. 또 여러 가지 등불을 켜는데 우유[酥]등과 기름 등과 온갖 향유 등인데 낱낱 등의 심지는 수미산과 같고, 낱낱 등의 기름은 큰 바닷물과 같은 이러한 공양거리로 항상 공양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공양 가운데는 법공양이 으뜸이니라.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과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과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공양과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하는 공양과 선근을 닦는 공양과 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 공양과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들이 그것이니라.
선남자여, 먼저 말한 여러 가지로 공양한 한량없는 공덕을 한 순간 잠간 법으로 공양한 공덕에 비교하면 그것은 백분의 일이 못 되고, 천분의 일도 못 되며, 백 천구지 나유타 분의 일도 못되며, 가라분의 일도 못되며, 산분, 수분의 일, 우파니 사타 분의 일도 못되느니라.”
불자라면 당연히 법을 공양하고 법을 보시하는 일에 정진을 해야 하리라. 그것이 진정으로 복이 되는 일이며 공덕이 되는 일이며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다.
曰何謂也오 謂以菩提로 起於慈心하며 以救衆生으로 起大悲心하며 以持正法으로 起於喜心하며 以攝智慧로 行於捨心하며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이를테면 보리로써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중생을 구제하는 것으로서 크게 연민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바른 법을 가짐으로서 기쁜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지혜를 굳건히 유지함으로서 차별심을 버리고 평등한 마음을 행하는 것입니다.”
강설 ; 법을 보시하는 일의 첫째는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을 베푸는 것이 법을 보시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대승보살불교의 중요한 실천덕목은 이와 같은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이다.
평소에 이러한 마음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베풀며 사는 일이 곧 법을 보시하는 일이며, 법을 공양올리는 일이다.
以攝慳貪으로 起檀波羅蜜하며 以化犯戒로 起尸羅波羅蜜하며 以無我法으로 起羼提波羅蜜하며 以離身心相으로 起毘離耶波羅蜜하며 以菩提相으로 起禪波羅蜜하며 以一切智로 起般若波羅蜜하며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거두어 드림으로서 보시바라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계율을 범하는 것을 교화함으로서 지계바라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무아법으로서 인욕바라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상을 떠남으로서 정진바라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보리의 상으로서 선정바라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일체의 지혜로서 반야바라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강설 ; 법을 보시하는 일의 다음의 문제는 6바라밀을 잘 실천하는 것이다. 4무량심이나 6바라밀은 모두 이 몸으로 직접 법을 보시하는 것을 밝히고 있다. 보시를 잘하면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아끼고 탐하는 마음 없이 보시를 잘 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법을 보시하는 일이다. 나머지 바라밀도 역시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직접 덕행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법을 보시하는 것을 밝히고 있다.
신청곡 : 가을 산사(석지연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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