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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57
普德華 2021-11-07 18:51:07, 조회 : 890, 추천 : 0
6. 병자를 위문하는 법

爾時에 文殊師利가 問維摩詰言하사대 菩薩이 應云何慰喩有疾菩薩이니까 維摩詰이 言하사대 說身無常하되 不說厭離於身하며

그때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병든 보살을 위문합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몸의 무상함을 말하되 몸을 싫어하여 버릴 것을 말하지 아니합니다.”

강설 ; 당시 천하의 대보살로 명성이 높았던 유마거사에게 위문을 왔으므로 특별히 병과 연관된 것을 빠짐없이 묻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다. 병자를 위문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이 몸은 무상하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다 잘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 육신을 버리려고 하여 방법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 못된 생각이다.

부처님 당시에도 몸의 무상함을 알고 몸을 싫어하여 자살을 한 제자들이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는 자살 율 세계 1위라는 통계가 있다. 필자도 2003년 병고를 심하게 앓을 때는 진정으로 죽고 싶었다. 그 때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였다. 이 몸은 결국 무상하여 한 줌의 재로 돌아가고 말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이 몸을 버려서는 천리에도 맞지 아니하며 불교의 계율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說身有苦하되 不說樂於涅槃하며 說身無我하되 而說敎導衆生하며 說身空寂하되 不說畢竟寂滅하며

“몸에는 고통이 있음을 말하되 열반을 즐기기를 말하지 아니합니다. 몸은 무아(無我)임을 말하되 중생을 가르쳐 인도함을 말해야 합니다. 몸이 공적함을 말하되 필경에 적멸함은 말하지 아니합니다.”

강설 ;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병이 없고 괴로움이 없고 고통이 없고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이 세상은 반은 고통, 반은 낙이라고 하였다. 또 참고 견디면서 사는 곳이라고 하였다. 고해요 화택이다. 어떤 경우의 사람이라도 평등하다.

그렇다고 그 고통을 피하여 편안함만 추구해서도 안 된다. 안락한 생활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존재가 궁극에 무아임에는 틀림없지만 사는 동안까지 자신도 가르치고 다른 이도 열심히 가르쳐 늘 향상하고 발전하면서 살기를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의 몸은 공적한 데서 와서 끝내 공적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한편 맞는 말이지만 그것은 반쪽만을 알고 반쪽은 모르는 소리다. 공적한 가운데 묘하게도 이렇게 버젓이 있지 않은가. 위문을 할 때 치우치지 않고 중도적 관점에서 해야 하리라.

說悔先罪하되 而不說入於過去하며 以己之疾로 愍於彼疾하며 當識宿世無數劫苦하며 當念饒益一切衆生하며 憶所修福하야 念於淨命하며 勿生憂惱하고 常起精進하며 當作醫王하야 療治衆病이니 菩薩이 應如是慰喩有疾菩薩하야 令其歡喜니다

“과거의 죄를 참회하기를 말하되 과거에 빠져있기를 말하지 아니합니다. 자기의 병으로서 다른 이의 병을 연민히 여기며, 마땅히 숙세의 오랜 세월의 고통을 알아야 하며, 마땅히 일체중생을 요익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 닦은 복을 기억하여 청정한 생활을 생각하며, 근심걱정을 하지 말고 항상 정진하며, 마땅히 훌륭한 의사가 되어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하여야 합니다. 보살이 반드시 이와 같이 병든 보살을 위문해서 그로 하여금 기쁘게 하여야 합니다.

강설 ; 병은 흔히 과거의 죄업 때문에 온 것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사람의 삶은 현재가 중요하다. 지난 일에 너무 빠져 있어서는 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나 지금은 건강하다하더라도 언젠가는 병고를 앓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앓을 때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그러한 점을 생각하여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고 연민히 여기고 보살피고 치료에 도움을 주어야 하리라. 또는 자신을 대신해서 아프다는 생각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도와서 사람들을 요익하게 해야 하리라.

병이 있더라도 너무 근심걱정을 하지 말고 남은 시간만이라도 열심히 정진하도록 위문을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훌륭한 의사의 역할까지 할 수 있어서 병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가장 훌륭한 위문이 될 것이다.

7, 병을 앓는 보살이 마음을 조복 받는 법 1

文殊師利言 居士여 有疾菩薩이 云何調伏其心니이까 維摩詰이 言有疾菩薩이 應作是念하되 今我此病은 皆從前世妄想顚倒諸煩惱生이라 無有實法이니 誰受病者어뇨 所以者何오 四大合故로 假名爲身이나 四大無主하고 身亦無我며 又此病起는 皆由着我니 是故로 於我에 不應生着이라할지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거사여, 병을 앓는 보살은 그 마음을 어떻게 조복 받습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병을 앓는 보살은 응당 이러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이 병은 다 전생의 망상과 전도와 온갖 번뇌로부터 생긴 것이라서 실다운 법이 없는데 누가 병을 받아드리는 사람인가?

왜냐하면 4대가 화합하여 거짓으로 이름 하여 몸을 삼으나 4대는 주체가 없고 몸도 또한 무아라. 또한 이 병이 생긴 것은 모두 나에게 집착함을 말미암은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나에게 응당 집착을 내지말자.’라고 해야 합니다.”

강설 ; 문수사리는 또 질문하였다.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남을 원망하거나 병을 탓하지 않고 그 마음을 어떻게 조복 받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 누구나 몸에 무서운 병이 들어와서 고통을 겪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병을 인식하는 마음가짐이다.

마음가짐을 잘못하다보면 큰 병이 아니라도 큰 우환이 되지만 마음가짐을 잘 하면 몸도 가벼워지고 병도 가벼워지고 나아가서 죽음까지도 가벼워진다.

불교에는 수행법으로 관법(觀法), 관행(觀行), 관조(觀照)라는 것이 있다. 하나의 명상법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나 병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의 실상을 잘 꿰뚫어 관찰하는 방법이다. 병의 실상을 꿰뚫어 관찰하면 고통은 사라진다.

즉 병은 어디로부터 생겼는가? 망상번뇌로부터 생겼다. 그러나 망상번뇌는 실재하는 것이 아닌데 누가 병을 받아드리겠는가? 4대가 화합한 것이 이 육신이다. 어느 것도 그 주인은 없다. 그러므로 이 육신도 나라는 것이 없다.

병은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집착하여 착각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병을 앓는 사람은 이렇게 이해하고 이렇게 명상하고 이렇게 사유하여야 한다.

旣知病本인댄 卽除我想及衆生想하고 當起法想이니 應作是念하되 但以衆法으로 合成此身이라 起唯法起요 滅唯法滅이며 又此法者는 各不相知하야 起時에 不言我起하고 滅時에 不言我滅이니라

“이미 병의 근본을 알았다면 나에 대한 생각과 중생에 대한 생각을 제거하고 반드시 법에 대한 생각을 내어 이러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다만 여러 가지 법으로 이 몸을 합성하였다. 생기면 법이 생기는 것이고 소멸하면 법이 소멸하는 것이다. 또한 이 법이란 것은 각각 서로 알지 못해서 생길 때에 내가 생긴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소멸할 때에 내가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여야 합니다.”

강설 ; 명상은 계속된다. “세상에는 내가 있다거나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법이 있다. 이 몸이 생길 때는 법이 생긴 것이며 이 몸이 소멸할 때는 역시 법이 소멸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생긴 것은 아니며 내가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사유하고 명상하여 한다.

彼有疾菩薩이 爲滅法想하야 當作是念하되 此法想者도 亦是顚倒니 顚倒者는 卽是大患이라 我應離之리라 云何爲離오 離我我所라 云何離我我所오 謂離二法이라 云何離二法고 謂不念內外諸法하고 行於平等이니 云何平等고 謂我等涅槃等이니 所以者何오 我及涅槃이 此二皆空이라 以何爲空고 但以名字故로 空이니 如此二法이 無決定性이니다

저 병이 있는 보살이 법에 대한 생각을 소멸하기 위해서 마땅히 이런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이 법에 대한 생각도 또한 전도다. 전도는 곧 큰 병이다. 나는 응당히 그것을 떠나리라. 어떻게 떠나는가. 나와 나의 것을 떠나는 것이다. 어떻게 나와 나의 것을 떠나는가. 이를테면 두 가지 법을 떠나는 것이다. 무엇이 두 가지 법을 떠나는 것인가. 이를테면 안팎의 모든 법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평등을 행하는 것이다. 무엇이 평등을 행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나도 평등하고 열반도 평등한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나와 열반 이 두 가지는 다 텅 비었다. 왜 텅 비었는가. 다만 이름뿐이기 때문에 텅 비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이 결정적인 체성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강설 ; 앞에서는 나와 중생이 모두 법이므로 법이 생기고 법이 소멸한다고 사유하였다. 나아가서 “법에 대한 생각도 모두 전도된 생각이다. 전도란 큰 근심이다. 이것은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떠나서 나와 열반까지도 평등하게 텅 비어 공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모두는 이름뿐이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결정적인 체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깊이 명상하라는 내용이다.

신청곡 : 모두가 부처모습(송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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