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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8 08:52:39, 조회 : 866,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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雖行止觀助道之法이나
而不畢竟에 墮於寂滅(타어적멸)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지관과 조도의 법을 행하나,
필경에 적멸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止觀(지관)”은 불교의 수행법인 止와 觀을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지는 모든 망념을 그치게 하여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기울이는 것이며, 관은 지로써 얻은 明知에 의해 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것을 말합니다.
즉, 지관은 禪定과 智慧에 해당되며, 지와 관의 兩者(양자)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 같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습니다.
止와 觀은 戒(계)와 아울러 불교의 중요한 실천 항목입니다.
그리고 “助道(조도)의 법”이란 앞에서 열거한 37조도법입니다.
보살이 이와 같은 법들을 다 실천 수행한다 하더라도, 고요하고 소극적인 선정이나 적멸의 상태에 떨어져 있으면, 그것은 보살행이 아니므로 그렇게 밝혔습니다.
雖行諸法不生不滅이나
而以相好로 莊嚴其身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모든 법이 불생불멸함을 행하나,
상호로써 그 몸을 장엄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모든 존재[諸法]가 불생불멸이라면 32상이나 80종호와
같은 외적인 모양을 굳이 갖출 필요가 없다.’그러나 그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입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서의 생각은 아닙니다.
불생불멸을 행하더라도 32상과 80종호로써 아름답게 장엄하여야 중생을 교화하는데 훌륭한 방편이 됩니다.
雖現聲聞辟支佛威儀나
而不捨佛法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성문과 벽지불의 위의를 나타내나,
부처님의 법을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堂堂僧相(당당승상)이 容貌可觀(용모가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外現聲聞(외현성문) 內祕菩薩(내비보살)”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성문이나 연각은 그 威儀(위의)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그 외형적인 威儀보다는 내면의 부처님 가르침을 충실히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살은 외적인 모습과 내적인 지혜와 자비의 佛法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어 이상적인 삶을 영위합니다.
雖隨諸法究竟淨相이나
而隨所應하야 爲現其身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모든 법이 끝까지 텅 빈 모습[究竟淨相]임을 따르나,
응할 바를 따라서 그 몸을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究竟淨相(구경정상)이란 철저히 텅 비어 空한 모습 입니다.
모든 존재가 철저히 공[諸法空相]하지만, 그 공한 가운데서 중생교화를 위해 아름다운 몸을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은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도 없고, 色聲香味觸法(색성향미촉법)도 없다.”고 하였으나 누구보다도 값비싼 옷과 장신구를 몸에 걸쳐 장엄하였 으며, 심지어 화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관자재보살은 존재의 空性을 누구보다도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편 누구보다도 외형을 더 잘 가꾸는 보살입니다.
중도적 삶이란 본래로 그와 같습니다.
雖觀諸佛國土가永寂如空이나
而現種種淸淨佛土가 是菩薩行이며
“비록 모든 불국토가 영원히 적멸한 것이 공과 같음을 관찰하나,
가지가지 청정한 불토를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국토란 우리의 환경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보살은 몸에 대해서 텅 빈 이치를 알면서도 몸을 잘 꾸미듯이 국토에 대해서도 역시 본래로 텅 비어 공하다는 사실을 잘 관찰하여 알지만, 중생의 근기와 수준에 따라 그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갖가지 아름다운 국토를 장엄하고 나타내는 것이 또한 보살의 중도적 삶입니다.
자신의 몸도ㆍ환경도ㆍ중생도, 모두 중도적 관점을 떠나서는 보살행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지 치우치는 것은 어리석은 중생이거나 아니면 못난 小乘입니다.
雖得佛道하야轉於法輪하고
入於涅槃이나而不捨於菩薩之道가 是菩薩行이니다
“비록 불도를 얻어서 법륜을 굴리고
열반에 들어가나 보살도를 버리지 아니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說是語時에
文殊師利所將大衆에其中八千天子가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러라
이러한 말을 할 때에
문수사리가 거느린 대중 가운데 8000명의 천자가
모두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발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보살행을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살행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러한 것이라는 뜻으로 설하신 내용입니다.
모든 佛敎徒(불교도)가 이처럼 불교를 바르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에는 여러 가지 수행과 공부와 정진을 통해서 깨달음을 이루는 것! 즉 成佛을 지상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유마거사의 법문과 같이 佛道를 얻고 나서 진리의 가르침인 法輪을 널리 굴려야 합니다.
그리고 끝내는 열반에 들지만 보살도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불을 하고나서 보살도를 행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즉 보살도를 행하는 것이 불교의 최종목적입니다.
성불은 보살도를 행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보살행에 대한 설법을 듣고 문수사리 보살이 인솔하여 온 8000명의 天子가 모두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게 되었습니다.
문수보살이 유마거사를 문병하기 위해 갔다가 위와 같은 위대한 가르침을 듣게 된 것입니다.
신청곡 : 부처님 사랑은(김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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