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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66
普德華 2021-11-19 11:33:40, 조회 : 945, 추천 : 0
六.不思議品(부사의품)

「不思議品」에서는 앞에서 문병을 온 문수사리와 많은 문답을 하였으나 문병 온 사람들이 앉을 의자가 없어서 사리불이 앉을 자리를 생각하는 인연으로 求法(구법)의 문제와 불가사의한 법을 설하게 됩니다.

유마거사는 須彌相(수미상)이라는 나라로부터 순식간에 32000개의 의자를 옮겨오고 비좁던 方丈室(방장실)을 끝없이 넓혀서 그 많은 의자와 대중을 다 수용하는 불가사의한 광경을 보여주게 됩니다.

실로 한 먼지 속에 시방세계를 다 넣는, ‘一卽多 多卽一(일즉다다즉일)’의 화엄의 도리입니다.
아울러 부사의 해탈이란 무슨 의미인가를 설법합니다.

1. 求法(구법)

爾時에舍利弗이見此室中에
無有牀座(무유상좌)하고作是念하되
斯諸菩薩大弟子衆은當於何座오하니라

그때에 사리불이 이 방 가운데에
의자가 없는 것을 보고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이 많은 보살과 큰 제자들은 어디에 앉아야 할까?’

長者維摩詰이知其意하사 語舍利弗言하사대
云何仁者는 爲法來耶아 求牀座耶아

장자 유마힐이 그 뜻을 알고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스님은 법을 위해서 왔습니까? 의자를 위해서 왔습니까?”

舍利弗이言하되
我爲法來오非爲牀座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저는 법을 위해서 왔습니다. 의자를 위해서 온 것은 아닙니다.”

維摩詰이言하되
唯舍利弗이여夫求法者는
不貪軀命(불탐구명)이어든 何況牀座이리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이 봐요. 사리불이여, 대저 법을 구하는 사람은
몸과 목숨을 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의자이겠습니까.”

『유마경』은 그동안 大乘보살인 문수사리와의 대화를 통해서 高峻(고준)한 설법을 펼쳤습니다.
이제 다시 小乘聲聞인 사리불과의 대화를 통해 법을 구하는 마음자세를 밝히고 있습니다.

사리불이 앉을 의자가 없는 것을 생각하자 유마힐이 대뜸, “당신은 법을 위해서 왔습니까?
의자를 위해서 왔습니까?”라고 따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유마경을 편찬한 사람의 마음을 읽어보면 소승성문들의 편견과 집착을 지극하게 싫어하는 것이 들어나 있습니다.
아무튼 사리불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법을 구하는 사람은 身名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으로부터 갖가지 求法정신을 듣게 됩니다.

夫求法者는
非有色受想行識之求며
非有界入之求며
非有欲色無色之求니라

“대저 법을 구하는 사람은
색수상행식이 있음을 구하지 아니하며,
18계와 12입이 있음을 구하지 아니하며,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가 있음을 구하지 아니합니다.”

5온과 6근과 6경과 6식과 12처와, 18계와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 등은 세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해가는 전 영역입니다.
이것을 떠나서는 인간의 삶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 삶의 전 영역은 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법을 구하는 사람은 이런 모든 것을 초월하고 제3의 삶을 추구하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唯舍利弗이여
夫求法者는不着佛求며
不着法求며 不着衆求니라

“사리불이여,
대저 법을 구하는 사람은 부처님을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며,
법을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며, 대중을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합니다.”

불교의 세계에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三寶입니다.
이 3보를 버리고는 불교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모든 의식은 먼저 三寶에 귀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三寶가 불교의 궁극이라고 집착하면 그것은 또한 편견입니다.
편견은 불교가 아닙니다. 진정한 법을 구하는 사람은 佛ㆍ法ㆍ僧 三寶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습니다.

夫求法者는 無見苦求며
無斷集求며
無造盡證修道之求니

“대저 법을 구하는 사람은 고통을 보아 구하지 아니하며,
고통의 원인[集]을 끊음을 구하지 아니하며,
증득함을 다하고 도를 닦음에 나아감을 구하지 아니합니다.

所以者何오法無戲論(법무희론)이라
若言我當見苦斷集하며
證滅修道인댄
是則戲論이요
非求法也니라

왜냐하면 법은 희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나는 마땅히 고통을 보고 고통의 원인을 끊으며
소멸을 증득하고 도를 닦는다.’고 말하면
이것은 희론이며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苦集滅道(고집멸도) 4성제는 근본불교 교리의 근본입니다.
세존이 成道(성도)하시고 처음 녹야원에서 다섯 명의 비구를 교화하기 위해서 최초로 설법하신 내용이 고집멸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집멸도는 초기불교의 바탕이 됩니다.

그런데 유마거사는, “진정한 법은 고집멸도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희론일 뿐이다. 법은 희론이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희론이란 ‘참되고 바른 이치가 아니며, 진실하지 못한 내용을 가지고 장난삼아 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대승불교적 안목에서 소승불교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唯舍利弗아法名寂滅이어늘
若行生滅인댄 是求生滅이요
非求法也며

“사리불이여, 법은 이름이 적멸입니다.
만약 생멸을 행하면 이것은 생멸을 구하는 것이지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법의 중요한 한 면은 생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生死는 곧 生滅입니다.
사람과 모든 존재의 생멸을 초월한 경지를 寂滅이라합니다.
『열반경』사구게에,
“諸行無 常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제행무상시생멸법 생멸멸이적멸위락)”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모든 법이 無常하니 이것이 생멸법이다.
생멸이 다 멸하고 나면 적멸이 곧 樂이 된다.’라는 뜻입니다.
적멸의 경지가 법입니다.
만약 생멸을 구한다면 그것은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法名無染(법명무염)이어늘
若染於法이면乃至涅槃이라도
是則染着이요非求法也며

“법은 이름이 염착이 없음입니다.
만약 법에 염착되거나 내지 열반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곧 염착입니다. 법을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강경오가해』冶父(야보)스님의 게송에, “有佛處에 不得住(유불처부득주)하고 無佛處에 急走過(무불처급주과)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부처님이 계신 곳에도 머무르지 말고, 부처님이 없는 곳에는 급히 지나가라.’ 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법이라 하더라도 그 법에 물들거나 집착하면, 이미 진정한 법과는 거리가 멉니다.
심지어 열반이라 하더라도 집착하면 이미 그것은 열반이 아닙니다.

신청곡 : 참회(법만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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