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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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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1 16:03:41, 조회 : 809,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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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無行處어늘
若行於法이면 是則行處요
非求法也며
“법은 행하는 것이 없음입니다.
만약 법을 행하면 이것은 곧 행하는 것이 되므로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을 행한다는 말은 참선을 하거나 看經(간경)을 하거나,
염불을 하거나 주문을 외거나 기도를 하는 등의 수행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수행은 방편으로는 있을 수 있으나, 진정한 법의 입장에서는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법에는 더 보탤것도 없으며 뺄 것도 없으며, 장엄하여 꾸밀 것도 없습니다.
다만 본래 지니고 있는 기존의 것일 뿐입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사람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것이 곧 법입니다.
진여자성이니ㆍ불성이니ㆍ법성이니ㆍ참마음이니ㆍ참사람이라고 하는 본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법을 위해서 무엇을 달리 행할 것이 있겠습니까?
法無取捨어늘
若取捨法이면 是則取捨요
非求法也며
“법은 취사가 없습니다.
만약 법을 취하거나 버리면 이것은 곧 취하고 버림입니다.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을 달리 말하면, “원만하기가 태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데 진실로 취사를 말미암아 여여하지 못하다[圓同太虛 無欠無餘(원동태허무흠무여) 良由取捨 所以不如(양유취사소이불여)].”라고 한 그것입니다.
법은 실로 취사가 없습니다.
어느 것도 법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法無處所어늘
若着處所댄 是則着處요
非求法也며
“법은 처소가 없습니다.
만약 처소에 집착하면 이것은 곧 집착하는 처소입니다.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란 잠깐도 시간이나 공간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만약 떠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道不可須臾離 可離非道(도불가수유리가리비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로 법이란 따로 처소가 없습니다.
만약 따로 처소가 있으면 도가 없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法名無相이어늘
若隨相識인댄 是則求相이요
非求法也며
“법은 이름이 무상입니다.
만약 상을 따라 인식하면 이것은 곧 상을 구하는 것
입니다.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凡所有相이 皆是虛妄(범소유상개시허망) 이라고 하였습니다.
相에 집착하고 相에 이끌리고 相에 속아 사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相은 다 虛像(허상)입니다.
假像(가상)입니다. 幻影(환영)이며 幻像(환상)입니다.
이러한 相을 구한다면 그것은 법이 아닙니다.
法不可住어늘
若住於法이면 是則住法이요
非求法也며
“법은 머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법에 머물면 이것은 곧 머무는 법입니다.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서 움직인다.”
또는 “머물지 말고 마음이 끊임없이 생동하고 있다
[應無所住 以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라는 말도 있습니다.
법은 이처럼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머물면 썩은 것이지 법이 아닙니다.
法不可見聞覺知어늘
若行見聞覺知면 是則見聞覺知요
非求法也며
“법은 견문각지가 아닙니다.
만약 견문각지를 행하면 이것은 곧 견문각지일 뿐입니다.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고ㆍ듣고ㆍ느끼고ㆍ알고 하는 일이 삶의 전부입니다.
법도 실은 얼핏 보기에 보고ㆍ듣고ㆍ느끼고ㆍ알고하는 그것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보고ㆍ듣고ㆍ느끼고ㆍ알고 하는 것의 완전한 부정을 거친 후에 다시 보고ㆍ듣고ㆍ느끼고ㆍ알고 하는 것이 되어야 법입니다.
예컨대 산의 정상을 정복한 뒤에 다시 평지로 돌아온 것과 같습니다.
또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연후에, 다시 산은 다만 산이고 물은 다만 물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法名無爲어늘
若行有爲면 是求有爲요
非求法也니라
“법은 이름이 무위입니다.
만약 유위를 행하면 이것은 유위를 구하는 것입니다.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강경』에,“일체의 현성들이 모두 무위법으로 유위의 차별을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위는 허망한 것이고 가설이고 幻影(환영)입니다.
무위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불교가 말하는 진리가 다른 종교나 철학과 다른 점이 곧 이 무위법으로써 진실한 법을 삼는 점입니다.
是故로 舍利弗이여
若求法者는 於一切法에 應無所求니라
說是語時에 五百天子於諸法中에
得法眼淨하니라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만약 법을 구하는 사람은 일체의 법에 있어서 응당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이 말을 설할 때에 500명의 천자가 모든 법 가운데 법안이 청정함을 얻었다.
법은 얻을 것도 없으며 구할 것도 없습니다.
구할 것이 없으므로 얻을 것도 없습니다.
『반야심경』에 “얻을 것이 없으므로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걸림이 없으므로 공포가 없다.
顚倒夢想(전도몽상)을 멀리 떠나서 열반을 성취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청곡 : 묻노니 자네는 누구인가(도신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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