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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1 14:42:15, 조회 : 83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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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 觀衆生品(관중생품)
「觀衆生品」에서 觀衆生이란 중생이라는 실상을 진실하게 관찰한다는 의미입니다.
중생의 실상은 중생이 곧 중생이 아니라 부처라고 보는 것이 가장 바르게 보는[正見]안목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내면에 연기로 보는 견해가 깔려 있어서 모두를 허망하고 공한 것이며, 본래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또한 일종의 중생을 보는 정견이기도 하지만, 중생이라는 존재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人佛思想(인불사상)을 주창하는 필자는 중생이 본래로 부처라고 보는 것이 중생에 대한 정견임을 밝혀둡니다.
1. 중생의 실상
爾時에 文殊師利가 問維摩詰言하되
菩薩이 云何觀於衆生이니까
그때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관찰합니까?”
維摩詰이 言하되
譬如幻師가 見所幻人인듯하야
菩薩의 觀衆生도 爲若此니다
유마힐이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마술을 하는 사람이 마술로 만든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이,
보살도 중생을 관찰하기를 이처럼 합니다.”
중생이란 어떤 특정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이라 하든, 有情이라 하든 이름은 여러 가지지만,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마술을 하는 사람이 마술로 거짓 모습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불교는 중생이라는 문제에 크게 걸려있습니다.
소승불교든 대승불교든 중생에 대한 의식은 거의 한결같습니다. 이 『유마경』에서는 특별한 견해를 펼쳐 보여서 중생이라는 존재성을 확연하게 깨달아 알아서, 수수 억년 동안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암과 같은 응어리를 씻어 제거하라는 가르침을 설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생이란 본래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공연히 헛것을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라는 설법입니다.
1. 중생의 실상
如智者가 見水中月하며
如鏡中에 見其面像하며
如熱時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물에 뜬 달과 같이 여기며,
거울 속의 얼굴을 보는 것과 여기며,
더운 날 아지랑이와 같이 여기며,
如呼聲響(여호성향)하며
如空中雲하며
如水聚沫(여수취말)하며
如水上泡(여수상포)하며
소리를 질렀을 때의 메아리와 같이 여기며,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같이 여기며,
물에 있는 물방울과 같이 여기며,
물 위의 거품과 같이 여기며,
如芭蕉堅(여파초견)하며
如電久住하며
파초의 견고함과 같이 여기며,
번갯불이 오래 머무름과 같이 여깁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중생이라는 말에 너무나도 집착하고 있으므로 중생이라는 말의 실상을 꿰뚫어 알려주는 갖가지 비유입니다.
모두가 다만 말이 있을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 중생이라는 관념에서 어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如第五大하며 如第六陰하며
如第七情하며 如十三入하며
如十九界하나니
菩薩의 觀衆生도 爲若此며
“제5대와 같이 여기며, 제6음과 같이 여기며,
제7정과 같이 여기며, 13입과 같이 여기며,
19계와 같이 여깁니다.
보살이 중생을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4대는 있어도 5대는 없으며, 5음은 있어도 6음은 없으며, 6정은 있어도 7정은 없으며, 12입은 있어도 13입은 없으며, 18계는 있어도 19계는 없습니다.
깨어있는 보살은 위에서 든 비유와 함께 중생이란 실재하지 않음을 이와 같이 관찰합니다.
如無色界色하며
如燋穀芽(여초곡아)하며
如須陀洹身見(여수다원신견)하며
무색계의 색과 같이 여기며,
타버린 곡식의 씨앗과 같이 여기며,
수다원의 자신에 대한 이해득실과 같이 여기며,
如阿那含入胎(여아나함입태)하며
如阿羅漢三毒(여아나한삼독)하며
如得忍菩薩貪恚毁禁(여득인보살탐에훼금)하며
아나함의 入胎와 같이 여기며,
아라한의 三毒과 같이 여기며,
깨달음을 얻은[得忍] 보살의 탐욕과 진에와 파계와 같이 여기며,
如佛煩惱習(여불번뇌습)하며
如盲者見色(여맹자견색)하며
如入滅盡定出入息하며
부처님의 번뇌 습기와 같이 여기며,
눈먼 사람이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이 여기며,
멸진정에 들어간 사람의 출식 입식과 같이 여기며,
如空中鳥跡(여공중조적)하며
如石女兒하며
如化人煩惱하며
허공에 날아간 새의 발자국과 같이 여기며,
石女의 아이와 같이 여기며,
조화로 만든 사람의 번뇌와 같이 여기며,
如夢所見已窹(여몽소견이오)하며
如滅度者受身하며
如無煙之火(여무연지화)하나니
菩薩의 觀衆生도 爲若此니라
꿈속에서 보던 것을 꿈을 깬 것과 같이 여기며,
열반에 든 사람이 몸을 받는 것과 같이 여기며,
연기가 없는 불과 같이 여깁니다.
보살이 중생을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열거한 비유들이 참으로 현란합니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 변재가 있을 수 있는가요?
經文(경문)에서 들고 있는 여러 가지 예들은 한결같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름마저 없는 것들입니다.
토끼의 뿔이요, 거북의 털입니다.
중생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마치 길가의 새끼줄을 誤認(오인)하여 뱀으로 본 것과 같으며, 어두운 길을 가다가 비석을 誤認하여 사람으로 잘못 보고 도망가다가 넘어지고 자빠져서 온갖 상처를 입는 것 같은 경우입니다. 중생을 이처럼 관찰하면 이것은 참다운 관찰입니다. 만약 이와 달리 관찰하면 그것은 삿된 관찰입니다.
그렇다면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본래로 공적한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본래로 부처인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처음도 끝도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든, 어떤 지극한 수행을 하든, 중생을 제도하든, 성불하든, 모든 것이 마치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취와 같습니다.
가고 또 가도 본래의 그 곳이며[行行本處(행행본처)], 도착하고 도착해도 처음 출발한 그곳[至至發處(지지발처)]입니다. 피나는 고행과 어려운 수행이란 다만 그와 같은 삶의 한 태도일 뿐입니다.
그와 같은 숭고한 삶이 또한 사람들을 크게 감동하게 하고 발심하게 합니다.
신청곡 : 우리 모두 성불하세(김양희.이준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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