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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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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8 07:28:24, 조회 : 81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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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無住(무주)
文殊師利가 又問하되
生死有畏(생사유외)라 菩薩은 當何所依닛까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생사는 두려운 것입니다. 보살은 마땅히 무엇을 의지해야 합니까?”
維摩詰이 言하되
菩薩이 於生死畏中에 當依如來功德之力이니다
유마힐이 말하였다.
“보살은 생사의 두려움 속에서 마땅히 여래 공덕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인생은 외롭고 생사는 두려운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접어든 사람은 진정으로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러한 때에 불교를 믿고 불교를 공부한 사람은 어떤 태도여야 할까요?
외롭고 두려운 삶과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서는 달리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여래의 공덕의 힘이란 무엇인가요?
一心의 위대함입니다. 약간의 방편을 이용하여 일심의 위대한 힘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화엄성중에게 의지하고!
관세음보살에게 의지하고!
지장보살에게 의지하는 일도 역시 궁극적으로 보면 모두가 여래 공덕의 힘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文殊師利가 又問하되
菩薩이 欲依如來功德之力인댄
當於何住오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보살이 여래 공덕의 힘을 의지하고자 하면,
마땅히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答曰
菩薩이 欲依如來功德力者는
當住度脫一切衆生이니라
답하였다.
“보살이 여래 공덕의 힘을 의지하려는 사람은,
마땅히 일체중생을 제도하는데 머물러야 합니다.”
여래 공덕의 힘이란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큰 원력입니다.
만약 보살이 한순간이라도 일체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보살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又問欲度衆生인댄 當何所除오
答曰欲度衆生인댄 除其煩惱니다
또 물었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면 마땅히 무엇을 제거해야 합니까?”
답하였다.
“중생을 제도하려면 번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又問欲除煩惱ㄴ댄 當何所行고
答曰當行正念이니라
또 물었다.
“번뇌를 제거하려면 마땅히 무엇을 행하여야 합니까?”
답하였다.
“마땅히 바른 생각을 행하여야 합니다.”
“여래공덕의 힘을 의지한다.”는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
입니다. 또 중생을 제도하려면 번뇌를 제거해야 하고, 번뇌를 제거하려면 바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바른 생각이란 ‘알아차림’이라 하여 위빠사나 수행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又問云何行於正念고
答曰當行不生不滅이니라
또 물었다.“어떻게 하여야 바른 생각을 합니까?”
답하였다.
“마땅히 불생불멸을 행하여야 합니다.”
又問何法이 不生이며 何法이 不滅고
答曰不善은 不生하고 善法은 不滅이니라
또 물었다.
“무슨 법이 불생이며 무슨 법이 불멸입니까?”
답하였다.
“선하지 않은 것은 불생이고 선한 법은 불멸입니다.”
본문의 대화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겠으나, 선하지 않은 것은 언제 어디서나 절대로 생기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선한 법은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없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又問善不善은 孰爲本(숙위본)이니까
答曰身爲本이니다
또 물었다.
“선과 불선은 무엇이 근본이 됩니까?”
답하였다.“몸이 근본이 됩니다.”
又問身은 孰爲本고
答曰欲貪이 爲本이니다
또 물었다.“몸은 무엇이 근본이 됩니까?”
답하였다.“탐욕이 근본이 됩니다.”
又問欲貧은 孰爲本이니까
答曰虛妄分別이 爲本이니다
또 물었다.“탐욕은 무엇이 근본이 됩니까?”
답하였다.“허망한 분별이 근본이 됩니다.”
문수사리와 유마힐의 문답이, 속도를 더하면서 쉴 사이도 없이
이어집니다.
삶과 죽음은 두려운 것이라는 문제에서부터 바른 생각, 不生不滅, 인간의 육신, 탐욕, 허망한 분별까지 언급하였습니다.
又問虛妄分別은 孰爲本고
答曰顚倒想이 爲本이니다
또 물었다.“허망한 분별은 무엇이 근본이 됩니까?”
답하였다.“전도망상이 근본이 됩니다.”
又問顚倒想은 孰爲本이니까
答曰無住爲本이니다
또 물었다. “전도망상은 무엇이 근본이 됩니까?”
답하였다.“무주가 근본이 됩니다.”
又問無住는 孰爲本이니까
答曰無住則無本이니
또 물었다.“무주는 무엇이 근본이 됩니까?”
답하였다.“무주는 근본이 없습니다.
文殊師利여
從無住本하야 立一切法이니라
문수사리여,
무주라는 근본으로부터 일체법이 세워졌습니다.”
계속하여 허망 분별에서 顚倒夢想(전도몽상)으로 나아가고 無住와 無本까지 거론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고리에 고리를 물고 일체가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밝혔는데요. 궁극에는 그 무엇이든 모두 변해가고 흘러가서,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으며 근본도 없습니다.
머무름도 없고 근본도 없다면 결국은 무엇입니까?
머무름도 없고 근본도 없다는 데서 일체법이 세워졌다면 그 일체법이란 또 무엇입니까? 참으로 절묘한 지혜의 칼입니다.
一斷(일단)에 一切斷입니다.
신청곡 : 딩동댕(범능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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