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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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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6 21:10:04, 조회 : 83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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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위대한 가르침
3절 행복에 이르는 길
9항 _ 바르게 사는 길
<양극단에 머물지 말라>
지극한 깨달음은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깨달음이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어김을 두지 마라.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마음의 병이 됨이니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여여하지 못하도다.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마라.
한 가지를 바로 지니면
사라져 저절로 다하리라.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면
그침이 다시 큰 움직임이 되나니
오직 양극단에 머물러 있거니
어찌 한 가지임을 알 건가.
한 가지에 통하지 못하면
양쪽 다 공덕을 잃으리니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더욱더 상응치 못함이요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 없느니라.
<수행의 요체는 자기 마음을 단속하는 것>
모든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을 깊이 믿어서 굽히지도 않고 내세우지도 않기를 바라노라.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으면, 단지 무명만 늘어나게 할 뿐이다. 수행의 요체는 다만 범부의 망상을 없애는 것일 뿐, 별도로 성인의 경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는 없다. 중생의 마음을 버릴 필요 없이, 다만 자신의 본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도록 하면 된다.
<벽돌을 같아서 거울을 만들 수 있겠는가>
마조馬祖는 전법원傳法院이라는 암자에 머물면서 매일 좌선을 했다. 남악南嶽은 마조가 법의 그릇임을 알아보고 곁에 가서 물었다.
“대덕은 좌선을 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남악은 이 말을 듣고 바로 벽돌 하나를 잡더니 암자 앞의 바위에다 갈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마조가 물었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합니다."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하거늘, 어찌 좌선을 해서 부처를 이루겠습니까?"
“그러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소가 수레를 몰고 가는 것과 같으니,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려야 옳겠습니까, 소를 때려야 옳겠습니까?"
마조가 대답이 없자, 남악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는 것입니까, 앉은뱅이 부처를 배우는 것입니까? 만일 좌선을 배운다면 선은 앉고 눕는 데 있지 않으며, 만일 앉은뱅이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닙니다. 머무름이 없는 법에서 취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대가 만일 앉은뱅이 부처라면 곧 부처를 죽이는 일이니, 만일 앉는 모습에 집착한다면 진리를 통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 찾아 가는 길 - 김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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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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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불교성전은 모레 12월 29일(수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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