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대보적경 제52권 - 12. 보살장회 /12) 반야바라밀다품
법성화 2021-12-31 05:04:17, 조회 : 853, 추천 : 0
왜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견고한 바른 행을 일으키는 것도 모두가 바른 지혜에 의지하고 저 모든 행도 지혜가 앞잡이가 되기 때문이니, 이 보살마하살이 큰 지혜를 갖추기 때문에 모든 지혜 없는 이들이 귀의하게 되고 모든 악마들이 틈[便]을 얻지 못하며, 모든 부처님·여래께서 함께 가호(加護)하시고 장차 일체지지(一切智智)에 나아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이 보살이 지닌 지덕자량의 선교의 행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복덕과 지덕의 두 가지 자량선교를 성취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이 자량선교의 힘을 얻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염주의 선교[念住善巧]라 하는가 하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네 가지 염주를 구족히 닦아 익혀서 방편선교를 능히 성취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이 네 가지 염주냐 하면, 첫째는 몸[身]에 대하여 몸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요, 둘째는 느낌[受]에 대하여 느낌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心]에 대하여 마음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요, 넷째는 법(法)에 대하여 법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니라.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어떻게 몸[身]에 대하여 몸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느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은 몸에 대하여 몸을 따르는 생각[隨身念]에 머물러서 이 몸이 과거 세상에서 지은 허물들을 관찰하는 것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몸은 뒤바뀐 업(業)이 일으킨 인연으로 생긴 것이라 본래 주재(主宰)가 없고 섭수(攝受)하는 것도 없다. 마치 저 풀과 나무와 우거진 숲이며 모든 약초(藥草) 등과 같아서 인연으로 생겨난 것이라서 본래 주재가 없고 섭수하는 것도 없다. 이 몸은 또 마치 관사(館舍)가 모든 풀·나무·담장 및 벽 등의 여러 가지 연(緣)과 함께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몸도 역시 그러하여서 다만 온(蘊)·처(處)·계(界) 등에 포섭되어 유지될 뿐이므로 그 본래 성품은 공하여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항상함도 없고 견고하게 머무름도 없으며 변하지 않는 법도 아니다. 나는 이제 이 몸에 대하여 허망하게 헤아리는 것이 없어야 하리니, 그러므로 나는 이제 마땅히 이와 같이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어야 한다.

어떤 몸을 견고하고 알찬 몸[堅實身]이라 하느냐 하면, 여래의 몸이 곧 견고하고 알찬 몸이다. 나는 이 몸은 지극히 거짓이라고 관찰하므로 반드시 여래의 몸을 이룩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여래의 몸은 곧 법의 몸[法身]이요, 금강 같은 몸이요, 파괴할 수 없는 몸이요, 견고한 몸이요, 3계(界)를 초월한 가장 뛰어난 몸이기 때문이다'고 하느니라.또 생각하기를 '나의 이 몸은 한량없는 허물에 뒤섞여 있으므로 나는 마땅히 모든 허물을 여읜 여래의 몸을 증득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깨닫는 지혜의 간택(簡擇)하는 힘으로써 '이 몸은 네 가지 요소[四大種]에 속한 것이고 모든 수면(隨眠)이 의지하고 있는 굴택(屈宅)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이 몸으로써 모든 중생을 위하여 몰아서 부리고 심부름을 해야 된다. 왜냐 하면 마치 세간 바깥의 네 가지 요소인 지계(地界)·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가 갖가지 문의 한량없는 뭇 도구와 자재(資財)로써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양육하는 것처럼 나도 이제 역시 이 네 가지 요소로 합해져서 이루어진 몸이므로 갖가지 문의 한량없는 차별된 경계와 자재로써 마땅히 중생들이 수용(受用)할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이 몸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대의(大義)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비록 이 몸의 체성(體性)이 괴로운 것임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괴로운 몸을 싫어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비록 이 몸이 마지막에는 다하는 성품임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유전(流轉)하며 받아 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비록 이 몸의 그 성품에는 나가 없음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중생을 성숙시키는 일에 게으름이 없고, 비록 이 몸의 나는 고요히 사라지는 성품임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저 영영 고요히 사라짐[寂滅]을 버리는 데에 떨어지지 않으며, 비록 몸이 공하고 모양이 없고 멀리 떠났음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멀리 여읨의 맨 끝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이 몸이라는 법에 대하여 몸을 따르는 관[隨身觀]에 머물러서 이 몸은 실제도 없고 견고함도 없음을 관찰하느니라. 또 안[內]의 몸에 대하여 몸을 따르는 관에 머물러 안을 따라 수행하여 모든 번뇌를 다시는 받아들임이 없고, 또 바깥[外]의 몸에 대하여 몸을 따르는 관에 머물러 바깥을 따라 수행하며 모든 번뇌와는 함께 머무르지 않느니라.


-다음에-


------------------------------------------------------------


하윤주/길을 갑니다


  이전글 유마경(무비스님 강설)-92 普德華 2021-12-31
  다음글 유마경(무비스님 강설)-91 普德華 2021-12-30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