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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보적경 제52권 - 12. 보살장회 /12) 반야바라밀다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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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1 05:13:23, 조회 : 83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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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신염주(身念住)를 성취하고 나면 그 몸이 청정하여져서 물듦이 없고 온갖 깨끗한 몸의 업[身業]을 완전히 갖추어서 깨끗한 모양[相]의 장엄한 몸을 얻으며, 이미 이와 같은 장엄한 몸을 갖춘 까닭에 모든 하늘과 인간이 귀의하여 숭배하는 것이니라.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이 몸이라는 법에 대하여 몸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힌다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어떤 것이 느낌[受]에 대하여 느낌을 따라 관찰하고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모든 있는 느낌은 모두가 다 괴로운 것이다. 나는 이제 깨닫는 지혜의 힘을 갖추어 이와 같은 느낌을 마땅히 잘 결택(決擇)하고 지(智)로써 결택하고 혜(慧)로써 결택하고 방편으로 결택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미 이와 같이 훌륭한 결택의 힘을 갖춘지라 비록 즐거움[樂]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즐거움을 접촉할 당시에 곧 온갖 착한 길[善道]의 중생에 대하여 크게 인자한 마음을 일으켜 탐심을 내는 수면(隨眠)에 시달림을 받지 않고, 비록 괴로움[苦]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괴로움을 접촉할 당시에 곧 모든 악한 세계[惡道]의 중생에 대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성을 내는 수면에 시달림을 받지 않으며, 비록 또 모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不苦不樂]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느낌을 접촉할 당시에 무명(無明)의 수면에 시달림을 받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이와 같이 관찰하여 아는 힘[觀解力]을 완전히 갖춘 까닭에 느낌을 따라 행하면서 염주에 있는 바 느낌인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닦고 익혀서 모든 느낌에서 벗어나는 일을 잘 관찰하며, 또 저 모든 중생들이 느낌이 두루한 지혜로써 고요히 사라지는 법을 잘 증득하게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이 모든 중생은 번뇌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혜가 없어서 모든 느낌에서 벗어남을 분명하게 모르나니, 왜냐 하면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문득 탐애를 내게 되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성을 내게 되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문득 어리석음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들의 모든 보살은 지혜의 행을 따라 느끼는 모든 허물의 법들을 이미 쉬고 없앴거늘 어찌 다시금 번뇌를 일으키겠느냐? 나는 이제 마땅히 방편선교를 구족히 일으키고 크게 가엾이 여기어 모든 중생을 섭수하여 모든 느낌에서 모두 쉬고 없앨 수 있게 해야겠다'고 하느니라.사리자야, 이와 같은 보살은 어떤 인연으로 모든 느낌에 대하여 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사리자야, 모든 느낌에 대하여 지혜로써 간택하여 즐거움은 이끌어 내지만, 괴로움은 이끌어 내지는 않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또 어떤 지혜로써 간택하는가 하면, 이 보살은 '이 가운데에서 능히 느끼는 이와 나와 유정과 목숨과 보특가라가 없다'고 관찰하나니, 이렇게 관찰하여 마치면 능히 느끼는 이는 없고 오직 느끼는 것이 있을 뿐이니라. 어떤 느낌이 있느냐 하면, 받아들이는 느낌[執受]과 끌어당기는 느낌[攝受]과 취하는 느낌[取受]과 얻음이 있는 느낌[有得受]과 뒤바뀐 느낌[顚到受]과 분별하는 느낌[分別受]과 견의 수면인 느낌[見隨眠受]과 눈으로 인한 생각에서 생겨나는 느낌[眼想所生受] 나아가 뜻으로 생각하여 생겨나는 느낌[意想所生受]과 빛깔로 생각하여 생겨나는 느낌[色想所生受]과 나아가 법으로 인한 생각에서 생겨난 느낌[法想所生受]과 그리고 갖가지의 눈으로 인한 접촉으로 생겨나는 느낌[眼觸所生受]이니, 이와 같이 널리 말하여 안과 바깥에 있는 모든 법과 모든 접촉의 면으로 생기는 느낌[諸觸緣所生受]에 이르기까지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이와 같은 모양을 곧 느낌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여래께서는 모든 느낌의 한량없는 여러 문과 차별된 모양을 분별하시느니라.사리자야, 여래께서 때로 하나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하나의 마음으로 모든 경계를 따로따로 아는 것이니라. 혹은 두 개의 느낌을 말씀하기도 하나니, 안과 바깥이니라. 혹은 세 개의 느낌을 말씀하기도 하나니, 과거를 따로따로 알고 미래를 따로따로 알며 현재를 따로따로 아는 것이니라. 혹은 네 개의 느낌을 말씀하기도 하나니, 지계(地界)·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를 구별하는 것이니라.
혹은 다섯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이와 같은 5온(蘊)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혹은 여섯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이와 같은 6처(處)를 분별하는 것이니라. 혹은 일곱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7식주(識住)가 그것이니라. 혹은 여덟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8사(邪) 방편의 모양이 그것이니라. 혹은 아홉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중생들이 살게 되는 아홉 가지의 거처가 그것이니라. 혹은 열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열 가지 착한 업의 길[善業道] 등이 그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여 한량없는 모든 느낌에 이르기까지 반연의 대상인[所緣] 경계를 따르고 지을 바의 뜻을 따라 한정된 양의 분제(分齊)로서 저러한 많은 느낌이 있으나, 그러나 모든 여래께서는 느낌의 한량없음을 말씀하시느니라. 왜냐 하면 중생은 한량없으므로 중생이 있음에 따라 각각 이러한 한량없는 모든 느낌을 갖추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따르는 관[隨受觀]에 머무르느냐 하면, 사리자야, 모든 보살은 깨끗한 지혜와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이 지닌 모든 느낌의 나고 없어지고 머무르고 달라짐[生滅住異]을 잘 포섭하며, 그리고 모든 중생의 착하고 착하지 못한 것 등 소유하고 있는 느낌의 지혜를 분명하게 잘 아나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따라 관찰하면 이것을 느낌에 대하여 구족히 관찰한다 하느니라.사리자야,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모든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따라 관찰하고 염주를 닦아 익힌다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어떻게 마음[心]에 대하여 마음을 따라 관찰하고 염주를 닦아 익히는가 하면,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마하살은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은밀히 보호하고 막아 지키며, 모든 산란함을 여의고 마음에 대하여 나고 없어지고 흩어지고 무너져서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음을 관찰하여 안에서나 밖에서나 머무르지도 않고 옮겨가지도 않으면 이것을 보살이 마음을 바르게 관찰한다 하느니라.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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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공스님/옴 마니 반매 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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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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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화 법우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대보적경은 내일 1월 2일(일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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