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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97
普德華 2022-01-15 10:07:07, 조회 : 819, 추천 : 0
寂根菩薩이 曰
佛法衆이 爲二니
佛卽是法이요 法卽是衆이라

寂根(적근)보살이 말하였다.
“부처님과 법과 대중[승]이 둘이지만,
부처님이 곧 법이고, 법이 곧 대중입니다.

是三寶皆無爲相이니 與虛空等이어든
一切法도 亦爾니 能隨此行者가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이 삼보가 다 무위의 모습이어서 허공과 평등합니다.
일체의 법도 또한 그러하니 능히 이러한 행을 따르는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부처님과 법과 대중[승]이 둘.”이라는 말은 ‘다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三寶가 둘이면서 둘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無爲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무위라는 것은 허공과 같습니다.
따라서 일체법도 또한 그렇습니다.
일체법이 無爲法이며 佛法입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心無礙菩薩이 曰
身과 身滅이 爲二어늘
身이 卽是身滅이라

心無礙(심무애)보살이 말하였다.
“몸과 몸의 소멸이 둘이지만,
몸이 곧 몸의 소멸입니다.

所以者何오 見身實相者는
不起見身과
及見滅身이니 身與滅身이 無二無分別이라

왜냐하면 몸의 실상을 보는 사람은 몸을 보는 것과,
몸의 소멸을 보는 것을 일으키지 아니합니다.
몸과 몸의 소멸이 둘도 없고 분별도 없습니다.

其於中에 不驚不懼者(불경불구자)라사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그 가운데서 놀라지도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몸은 ‘번뇌’를 뜻하고, 몸의 소멸은 ‘열반’을 뜻합니다.
번뇌를 소멸한 자리가 열반이며, 열반은 번뇌의 반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에서는 두 가지가 아니며, 나누어 질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에도 놀랄 것이 아니며 두려워할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上善菩薩이 曰
身口意業이 爲二어늘
是三業이 皆無作相이라

上善(상선)보살이 말하였다.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둘이지만,
이 3업이 모두 지음이 없는 모습입니다.

身無作相이 卽口無作相이며
口無作相이 卽意無作相이라

몸의 지음이 없는 모습이 곧 입의 지음이 없는 모습이며,
입의 지음이 없는 모습이 곧 뜻의 지음이 없는 모습입니다.

是三業無作相이 卽一切法無作相이니
能如是隨無作慧者라사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이 3업의 지음이 없는 모습이 곧 일체법의 지음이 없는 모습입니다.
능히 이처럼 지음이 없는 지혜를 따르는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엇을 作爲(작위)하는 것은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셋이 하나하나가 지어도 지음이 없는 無作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일체법이 모두 지음이 없는 모습입니다.
지음이 없는 모습은 곧 지음이 없는 지혜입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福田菩薩이 曰
福行罪行不動行이 爲二어늘
三行實性이 卽是空이라

福田(복전)보살이 말하였다.
“복의 행과 죄의 행과 움직이지 않는 행이 둘이지만,
세 가지 행의 실다운 본성이 곧 空합니다.

空則無福行하며 無罪行하며
無不動行이니

공하다면 복의 행이 없으며 죄의 행도 없으며,
움직이지 않는 행도 없습니다.

於此三行에 而不起者라사
是爲入不法門이니다

이 세 가지 행에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복이 되는 행동!
죄가 되는 행동.
이러한 문제는 일반적인 불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들입니다.
또 죄도 복도 아닌 움직임이 없는 행동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행동은 모두가 실다운 자성이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아는 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華嚴菩薩이 曰
從我起二가 爲二어늘
見我實相者는 不起二法이라

華嚴(화엄)보살이 말하였다.
“나로부터 두 가지를 일으키는 것이 둘이지만,
나의 실상을 보는 사람은 두 가지 법을 일으키지 아니합니다.

若不住二法이면 則無有識이니
無所識者가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만약 두 가지 법에 머물지 아니하면 곧 앎이 없습니다.
아는 바가 없는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세상사는 모두가 나로부터 남[他(타)]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두 가지가 되지만, 나라는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꿰뚫어 보아 텅 비어 공한 줄 안다면, 나와 남이라는 두 가지 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德藏菩薩이 曰
有所得相이 爲二어늘
若無所得이면 則無取捨라

德藏(덕장)보살이 말하였다.
“얻을 것이 있는 모습이 둘이지만,
만약 얻을 것이 없으면 곧 취하고 버릴 것이 없습니다.

無取捨者가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취하고 버릴 것이 없는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얻을 것이 있으면 얻는 자가 있고, 따라서 취할 것도 있게 되고 버릴 것도 있게 됩니다.
모두가 상대적인 차별이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얻을 것이 없는 불교의 근본 이치를 알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청곡 : 부처님께 의지합니다(장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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