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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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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6 12:54:50, 조회 : 856,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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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上菩薩이 曰
暗與明이 爲二어늘
無暗無明이면 則無有二라
月上(월상)보살이 말하였다.
“어둠과 밝음이 둘이지만,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으면 곧 둘이 없습니다.
所以者何오 如入滅受想定이면
無暗無明이니
왜냐하면 느낌과 생각이 소멸한 선정에 들어가면,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습니다.
一切法相도 亦復如是라
於其中에 平等入者는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일체법의 모양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그 가운데에 평등하게 들어가는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어둠과 밝음을 아는 것은 사람에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느끼고 생각함이 소멸한 선정에 들어가면,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습니다. 일체의 법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寶印手菩薩이 曰
樂涅槃하고 不樂世間이 爲二니
若不樂涅槃하고 不厭世間(불염세간)이면
則無有二라
寶印手(보인수)보살이 말하였다.
“열반을 좋아하고 세간을 싫어하는 것이 둘이지만,
만약 열반을 좋아하지도 아니하고, 세간을 싫어하지도 아니하면 곧 둘이 없습니다.
所以者何오 若有縛則有解(약유박즉유해)어니와
若本無縛이면 其誰求解(기수구해)리오
왜냐하면 만약 속박이 있으면 해탈도 있지만,
만약 본래 속박이 없으면 그 누가 해탈을 구하겠습니까?
無縛無解면 則無樂厭이니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면 곧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열반을 좋아하고 세간을 싫어하는 것.”은 분명히 둘입니다.
만약 열반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세간을 싫어하지 아니하면, 열반도 세간도 없습니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습니다.
속박도 해탈도 없습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珠頂王菩薩이 曰
正道와 邪道爲二어늘
住正道者는 則不分別是邪是正하나니
離此二者는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珠頂王(주정왕)보살이 말하였다.
“정도와 사도가 둘이지만
정도에 머문 사람은 곧 사도와 정도를 분별하지 아니합니다.
이 두 가지를 떠난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삿된 법과 바른 법은 분명히 둘이지만, 만약 바른 법에 머문 사람이라면 삿되다, 바르다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나누는 사람은 아직 바른 법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樂實菩薩이 曰
實不實이 爲二나
實見者는 尙不見實이어든
何況非實가
樂實(낙실)보살이 말하였다.
“진실과 진실이 아님이 둘이지만,
진실을 보는 사람은 오히려 진실도 보지 아니하는데,
어찌 하물며 진실이 아님을 보겠습니까?
所以者何오 非肉眼所見이요
慧眼으로 乃能見이니
왜냐하면 육안으로 보는 바가 아니며,
혜안으로 능히 봅니다.
而此慧眼은 無見無不見이라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이 혜안은 봄도 없고 보지 않음도 없습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은 분명히 둘이지만, 진실을 제대로 보는 사람은 진실마저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진실이 아니 것을 보겠습니까?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如是諸菩薩이 各各說已하시고
問文殊師利호대
何等이 是菩薩의 入不二法門이니까
이처럼 모든 보살이 각각 설하여 마치고 나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엇이 보살의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文殊師利言하사대
如我意者ㄴ댄 於一切法에 無言無說하며
無示無識하야 離諸問答이
是爲入不二法門이라하노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저의 생각으로는 일체법에 言說(언설)이 없으며,
보임도 없고 앎도 없어서 모든 문답을 떠난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지금까지 31명의 보살에게 둘이 아닌 법을 물어서 들었습니다.
이제 문수사리보살이 견해를 말할 차례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은 일체법이 말을 할 것도 없으며, 보일 것도 없으며 알 것도 없어서, 모든 문답을 떠난 것이,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언설을 모두 부정하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주장인 언설을 떠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於是에 文殊師利가 問維摩詰호대
我等은 各自說已어니와
仁者는 當說何等이 是菩薩의 入不二法門이니까
이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우리는 각각 스스로 다 설하였습니다.
어지신 분은 마땅히 무엇이 보살의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時에 維摩詰이 黙然無言(묵연무언)커늘
文殊師利가 歎曰(탄왈)
善哉善哉라 乃至無有文字言語가
是眞入不二法門이니다
그때에 유마힐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문수사리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문자와 언어가 없는 것이,
참으로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說是入不二法門品時에
於此衆中五千菩薩이 皆入不二法門하야
得無生法忍하니라
이 불이법문품을 설할 때에
이 대중 중에 5000보살이 모두 다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서
無生法忍(무생법인)을 얻었다.
드디어 유마거사가 둘이 아닌 법을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이 유마거사에게 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것을 물었습니다.
유마거사는 묵묵히 말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만고에 절창이라고 찬탄하는, “비야리 城(성)의 杜口(두구)”라고 합니다.
유마거사가, ‘비야리성에서 입을 막고,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도리를 보였다!’ 는 뜻입니다.
문수보살도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라고 찬탄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그 유명한 「불이법문품」입니다.
『유마경』의 절정이라고들 합니다.
三藏法師(삼장법사)가 수년에 걸쳐 천신만고 끝에 부처님의 경전을 인도에서 모시고 왔는데요.
장안에 다 도착하여 어느 강가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 바람이 불어서 경전이 날아갔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경전을 주워서 펼쳐보니 경전 속에는 글자가 한 자도 없었습니다.
경전의 어떤 말씀이 그 고생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말씀이라야 진정 참다운 진리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진리는 말과 문자로써 표현할 수 없다는 도리를 분명하게 보여 준 일이 아닐까요?
유마거사도 또한 무슨 말로 둘이 아닌 이치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묵묵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신청곡 : 사랑은(능인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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