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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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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6 11:52:13, 조회 : 86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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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於寂滅하되 亦不永滅하며
不此不彼하고 不以此不以彼하며
“적멸함을 관찰하지만 또한 영원히 적멸하지도 아니하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며,
이것으로써도 아니고 저것으로써도 아니며,
不可以智로 知요 不可以識으로 識이며
無晦無明(무회무명)하고 無名無相하며
지혜로써 아는 것도 아니며,
의식으로써 인식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습니다.
無强無弱(무강무약)하고 非淨非穢(비정비예)며
不在方不離方하며
강함도 없고 약함도 없습니다.
청정함도 아니며 더러움도 아닙니다.
방향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방향을 떠난 것도 아닙니다.
非有爲非無爲며 無示無說하며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닙니다.
보임도 없으며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불교는 적멸을 말합니다.
그래서 “적멸이 낙이 된다[寂滅爲樂(적멸위락)]”고까지 말하지만, 한편 모든 존재는 恒常(항상)하다고도 말합니다.
치우치지 않으면서 두루 수용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입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원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彼此(피차)의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궁극의 경지! 곧 여래의 경지는 “지혜로써 아는 것도 아니며 의식으로써 인식하는 것도 아니라[不可以智知 不可以識識]”라는 말이 또한 『유마경』의 명언입니다.
“어둠과 밝음과, 이름과 형상과, 강함과 약함과, 청정함과 더러움과, 方所의 有無와, 有爲와 無爲와, 보임[示]과 설함[說]” 등도 그와 같습니다.
不施不慳(불시불간)하고
不戒不犯(불계불범)하며
不忍不恚(불인불에)하고
“베풀지도 않고 아끼지도 아니하며,
戒를 가지지도 않고 범하지도 아니하며,
참지도 않고 성내지도 아니하며,
不進不怠(부진불태)하며
不定不亂(부정불란)하고
不智不愚(부지불우)하며
정진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아니하며,
선정을 닦지도 않고 산란하지도 아니하며,
지혜롭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아니합니다.
不誠不欺(불성불기)하고
不來不去하며
不出不入하야 一切言語道斷이라
진실하지도 않고 속이지도 아니하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아니하며,
나가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아니하여 일체 언어의 길이 다 끊어졌습니다.”
앞의 설명과 같이 베풂과 아낌과, 戒를 지킴과 犯함과, 참음과 성냄과, 정진과 懈怠(해태)와, 선정과 산란함과, 지혜와 어리석음과, 진실과 속임과, 오고 감과, 나가고 들어옴 등도 역시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로써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 여래의 실상입니다.
非福田이나 非不福田이며
非應供養이나 非不應供養이며
非取非捨며
“복전도 아니고 복전이 아님도 아니며,
공양에 응함도 아니고 공양에 응하지 아니함도 아니며,
취함도 아니고 버림도 아니며,
非有相非無相이며 同眞際等法界하야
不可稱不可量이라 過諸稱量하며
상이 있음도 아니고 상이 없음도 아니며,
진제와 같고 법계와 같아서
일컬을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서 모든 칭량을 지나갔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福田(복전)이라고 하고, 應供(응공)이라고도 하고, 취할 것이라고도 하고, 형상이 있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여래를 반드시 이렇게만 집착하고 있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여래는 곧 眞際(진제)며 법계며 법성이기 때문입니다.
여래는 저울로 달거나 헤아림만으로는 그 무엇을 다 표현할 수 없으므로 모든 稱量(칭량)을 멀리 벗어나” 있습니다.
非大非小며 非見非聞이며
非覺非知며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보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니며,
느낌도 아니고 앎도 아니며,
離衆詰縛(이중힐박)하야 等諸智同衆生하며
於諸法에 無分別하야 一切無得無失하고
온갖 결박을 다 떠나서 모든 지혜와 같고 중생과 같으며,
모든 법에 분별이 없어서 일체를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으며,
無濁無惱(무탁무뇌)하며 無作無起하고
無生無滅하며 無畏無憂하고
흐림도 없고 번거로움도 없으며,
지음도 없고 일으킴도 없으며,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두려움도 없고 걱정도 없으며,
無喜無厭(무희무염)하며
無已有無當有無今有라
기쁨도 없고 싫음도 없으며,
과거에 있음도 아니고 미래에 있음도 아니고 지금 있음도 아닙니다.
不可以一切言說로 分別顯示니다
世尊하 如來身이 爲若此ㄹ새
가히 일체 언설로 분별하고 나타내 보이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몸이 이와 같습니다.
作如是觀이니 以斯觀者ㄴ 名爲正觀이요
若他觀者ㄴ댄 名爲邪觀이니다
이와 같은 관찰을 지어야 합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 이름이 바른 관찰입니다.
만약 다르게 관찰하는 것은 이름이 삿된 관찰입니다.”
여래는 크고 작음도 아니며, 보고 듣는 것도 아니며, 느끼거나 아는 것도 아니어서 그와 같은 모든 결박을 떠났습니다.
분별과 얻음과 잃음과 번뇌와 생멸과 두려움과 기쁘고 싫어함과 과거 미래 현재까지도 모두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것을 다 포함한 것이 또한 여래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여래는 中道며 중도적 正見으로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관찰하는 것이 바른 관찰입니다.
만약 여래를 이와 다르게 관찰하면 그것은 삿된 관찰입니다.
신청곡 : 시방삼세 불보살(범능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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