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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125
普德華 2022-03-21 13:03:51, 조회 : 951, 추천 : 0
十四. 囑累品(촉루품)

囑累品」이 『유마경』의 마지막 품입니다.
대부분의 경전이 그렇듯이 마지막에는 그동안 설하신 법을 보살들이나 제자들에게 咐囑(부촉)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囑累란 법이 널리 퍼지고 오래 가도록 특별히 부촉하고 당부한다는 뜻입니다.
『유마경』에서는 미륵보살에게 그 의무를 지웠습니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을 이어서 미래에 성불할 보살로 되어 있습니다.
성불하는 이치로 보면 모든 사람은 모두 다 미래에 성불할 사람들입니다.
미륵보살을 등장시킨 것은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미래에 성불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經文에서,      “오랜 세월동안 모은 바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즉 최상의 깨달음을 모두 그대에게 부촉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1. 미륵보살에게 부촉하다

於是에 佛告彌勒菩薩言하사대
彌勒(미륵)아 我今에 以是無量億阿僧祇劫의
所集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으로 付囑於汝하노니

이에 부처님이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였다.
“미륵이여, 내가 지금 한량없는 억 아승지겁 동안
모은 바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으로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如是輩經(여시배경)을 於佛滅後末世之中에
汝等이 當以神力으로 廣宣流布(광선유포)하야
於閻浮提(어염부제)에 無令斷絶케하라

이와 같은 경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말세 중에
그대들이 마땅히 神力으로 널리 펴서 유포하여
염부제에 끊어지지 않게 하여라.

所以者何오 未來世中에 若有善男子善女人과
及天龍鬼神과 乾闥婆羅刹等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야
樂於大法이라도 若使不聞如是等經이면
則失善利하리니

왜냐하면 미래세 중에 만약 선남자 선녀인과,
천신 용 귀신과 건달바와 나찰 등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서
큰 법을 좋아하더라도 만약 이와 같은 경을 듣지 못하면
좋은 이익을 잃어버리리라.

如此輩人(여차배인)은 聞是等經하면 必多信樂하야
發希有心하야 當以頂受하며
隨諸衆生의 所應得利하야
而爲廣說하리라

이와 같은 사람들이 이 경을 들으면 반드시 많이 믿고 좋아하여
희유한 마음을 내어 마땅히 이마에 받아 지니리라.
그러므로 여러 중생이 응당 얻을 바 이익을 따라서
그들을 위하여 널리 설하도록 하여라.”

오랜 세월에 걸쳐 부처님이 깨달으신 모든 법을 미륵보살에게 咐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널리 유포하여 이 염부제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부촉입니다. 어쩌면 유언과도 같은 것입니다.

설사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가르침을 만나더라도 이 『유마경』과 같은 經法을 만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대승 경전들은 모두 그 경전이 훌륭하여 제일이라고들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경전이 있지만 경전마다 독특하고 뛰어난 면이 있어서 그와 같이 제일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사실입니다.

요즘도 불교공부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사람들은 불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예가 많습니다.
만약 『유마경』과 같은 훌륭한 경전을 편찬하였다면 그만한 소신과 자부심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 보살의 두 가지 모습

彌勒아 當知하라
菩薩이 有二相하니 何謂爲二오

“미륵이여, 마땅히 알아라.
보살에게 두 가지 모습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一者는 好於雜句文飾之事(호어잡구문식지사)요
二者는 不畏深義하고 如實能入이니

하나는 잡된 글귀와 문장을 수식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며,
둘은 깊은 뜻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에 능히 들어가는 것이니라.

若好雜句文飾事者는
當知是爲新學菩薩이요

만약 잡된 글귀와 문장을 수식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새로 배우는 보살이며,

若於如是無染無着인
甚深經典에 無有怖畏하고
能入其中하야

만약 이처럼 물듦이 없고 집착이 없는
매우 깊은 경전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고,
그 가운데 능히 들어가서,

聞已心淨하고
受持讀誦하야 如說修行하면
當知是爲久修道行이니라

듣고 나서 마음이 청정하여지고
받아서 독송하고 설한대로 수행하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오랫동안 道行을 닦은 사람이니라.”

앞에서 이 『유마경』이 매우 깊고 훌륭한 경전임을 찬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전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음을 염려하여, 그들을 “새로 배우는 보살”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

경문에 “잡된 글귀와 문장을 수식하는 일을 좋아하는”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유마경』이 편찬되었을 당시에 불교문학이 발달하여 불교를 문학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불교에 있어서 초보자[新學菩薩]들은 진실한 이치에 능히 심취하는 것보다는, 문장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잘 꾸며진 雜文들을 좋아하였던 것이겠지요.
실로 이 『유마경』은 다른 경전과 비교할 때 글이 너무나 화려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들면 마치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지듯이 하는 설법은, 화려함을 넘어서 현란하다고까지 말을 해야 할 정도입니다.
또한 이야기의 줄거리나 극적인 인물들의 등장은 경전이라기보다 그대로 문학작품입니다.
『유마경』이 이와 같아서 이러한 점을 지적하여, 문학적 작품성을 보지 말고 그 깊은 뜻을 이해하라는 점을 말하였습니다.

또 한 부류의 보살들은 경전의 깊은 이치에 심취하여 두려워하지도 않고 경전을 통해서 마음이 청정하여,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설한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은 보살은 “오랫동안 도행을 닦은 사람[久修道行]”이라고 하였습니다.

彌勒아 復有二法이니 (책엔 토가 "을"이었음)
名新學者니 不能決定於甚深法이라
何等이 爲二오

“미륵이여, 다시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이름이 새로 배우는 사람이니 능히 매우 깊은 법을 결정하지 못함이라.
무엇이 두 가지인가?

一者는 所未聞深經에
聞之驚怖生疑(문지경포생의)하야
不能隨順하고 毁謗不信(훼방불신)하야

하나는 아직 깊은 경전을 듣지 못한 것을
들으면 놀라고 두려워서 의심을 내어
능히 수순하지 못하고 훼방하고 믿지 아니하여,

而作是言하되
我初不聞이라 從何所來오하며

이러한 말을 하되
‘나는 처음부터 듣지 못했다.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하는 사람이다.

二者는 若有護持解說如是深經者라도
不肯親近供養恭敬하며
或時於中에 說其過惡하나니

둘은 만약 이와 같은 깊은 경을 보호하여 가지고[持] 해설하는 사람이라도
기꺼이 친근하여 공양 공경하지 아니하며,
혹 때로는 그 가운데서 허물을 말하느니라.

有此二法이면 當知是新學菩薩이니라
爲自傷毁(위자상훼)하야
不能於深法中에 調伏其心이라

이 두 가지 법이 있으면 마땅히 알아라. 새로 배우는 보살이니라.
스스로 상처내고 헐뜯어서
능히 깊은 법 가운데에서 그 마음을 조복하지 못하느니라.”

새로 배우는 보살들[新學者]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마경』과 같은 깊은 이치를 설한 경전을 들으면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의심하거나 훼방하고 믿지 않습니다.
또 이와 같은 경을 설하는 사람까지 가까이하지도 않고 공경하지도 않고 오히려 허물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견해를 갖게 되면, 그것에 집착하여 버릴 줄 모릅니다.
사람이 정신적으로 무한히 향상하고 발전하려면 기존의 견해에 집착하지 말고, 항상 새로운 가르침과 견해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유마경』과 같은 대승적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여 의심하거나 비방하고 외면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소승과 대승의 다른 점이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彌勒아 復有二法하나니
菩薩이 雖信解深法이나 猶自毁傷하야
而不能得無生法忍이라
何等이 爲二오

“미륵이여, 다시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보살이 비록 깊은 법을 믿고 이해하지만, 오히려 스스로 헐뜯고 상처를 내어
능히 생멸이 없는 법을 얻지 못하느니라.
무엇이 둘인가?

一者는 輕慢新學菩薩(경만신학보살)하야
而不敎誨(이불교회)요

하나는 새로 배우는 보살을 가벼이 하고 업신여겨서
가르치지 아니함이요,

二者는 雖信解深法이나
而取相分別하나니 是爲二法이니라

둘은 비록 깊은 법을 믿고 이해하지만,
모양을 취해서 분별하나니 이것이 두 가지 법이니라.”

불교를 공부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중생이라고 여기는 열등의식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만심도 문제지만, 열등의식은 “衆生想”이라고 해서 더 큰 문제입니다.
그와 같은 열등의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남을 업신여기고 비판합니다.

경문의 내용과 같이 學菩薩을 가볍게 여겨서 가르치지 아니하며, 또한 깊은 도리를 믿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현상을 집착하고 분별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신청곡 : 평안케하라(도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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