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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1일(목) 아침방송법문 : “부처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계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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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1 08:10:51, 조회 : 54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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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 여러분, 오늘은 “부처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계시다.”라는 주제로 법문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마치 너무도 당연해서 우리의 귀를 스치고 지나가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 한마디 말씀 속에는 불교 전체의 교학과 수행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부처님을 먼 옛날 인도에서 중생을 제도하셨던 역사적 인물, 혹은 서방 정토에 계신 절대자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이해한다면, 부처님은 영원히 우리의 삶과 유리된, 추앙만 하면서도 만날 수 없는 먼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화엄경에서는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고 말합니다.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니 일체는 오직 마음이 지은 바임을”이라는 이 구절은 우주 만유의 모든 현상이 우리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의 온몸에서 뻗어 나온 광명, 부처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설법의 소리, 그 모든 것도 결국 우리 마음의 본성이 발현된 한 모습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부처상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금이나 흙으로 빚은 그 형상 자체를 부처님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형상은 우리 마음속의 부처, 우리의 본성, 우리의 불성(佛性)을 깨닫도록 인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입니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는 부처님의 진신(眞身)이 법계에 두루 하며, 중생의 마음속에 깃들어 계신다고 설합니다.
부처님의 진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 어디에나 계시지만, 특히 우리의 청정한 마음속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절을 하고, 염불을 하고, 참선을 하는 모든 행위는 외부의 어떤 존재에게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완전히 구비되어 있는 부처님의 성품, 즉 불성을 스스로 깨우치기 위한 노력인 것입니다.
때로는 삶이 힘들고 어둡게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외부에 구원자를 찾아 헤매기 쉽습니다.
‘부처님, 제발 저를 구원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나’라는 존재를 버리고 어딘가에 있는 부처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불교의 진의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조혜능 대사는 육조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식본심 학법무익(不識本心 學法無益)” 즉, “자기의 본심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다.”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외부의 교리나 이론을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그것은 진실한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엄한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내면의 부처님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답은 우리의 일상생활 그 자체에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걸을 때, 일할 때, 심지어 쉬고 있을 때에도, 그 순간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잠시 화가 났을 때, ‘아, 지금 화가 나는구나’ 하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 화에 휩쓸리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그 관찰자가 바로 나의 불성입니다.
즙을 짜내도 쓴맛이 나지 않는 오이처럼, 시절이 가도 변하지 않는 그 마음의 본체입니다. 그것은 생각이나 감정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감정을 비춰주는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은 늘 “잘 드러내라”, “그대로 나타내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을 찾아 천산만길을 돌아다니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걷고, 앉고, 말하고, 일하는 그 자리에서 그 마음의 주인공을 드러내 보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결코 어렵거나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그 간단함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를 너무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어렵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범망경에서는 “나는 본래 성품이 본래부터 청정함을 보니, 일체 중생들이 모두 그러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고 있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본래부터 부처와 다름없는 지혜와 자비의 씨앗, 불성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다만 망념과 집착의 구름에 가려져 그 빛을 발하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의 수행은 이 구름을 걷어내는 작업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구름이 걷히면 하늘은 저절로 푸르고, 태양은 저절로 빛나듯이, 망상을 멈추고 고요해지면 본래의 불성은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이 점을 늘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부처님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눈으로, 부처님의 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힘들 때, 외로울 때,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해보세요.
“나의 마음속에 계신 부처님, 안녕하십니까?”
그러면 그 부처님은 반드시 당신의 마음에 미소 지어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 응답은 평안의 미소가 될 수도 있고, 용기의 한마디가 될 수도, 혹은 지혜의 빛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내가 숨 쉬고, 느끼고, 존재하는 이 마음속, 바로 그곳에 너무도 당연하게, 너무도 확실하게 자리 잡고 계십니다.
법우 여러분, 지금 우리는 “부처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계시다.”라는 주제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불교 수행 전체의 핵심을 꿰뚫는 진리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처님을 불단 위의 불상 속에서만 만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처님의 상징일 뿐, 진실한 부처님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 안에 계십니다.
유마경에서는 이렇게 설합니다.
“심즉시불 즉불심시(心卽是佛, 佛卽是心)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다.”
이 말씀은 곧 우리가 부처님을 바깥에서 따로 찾을 필요가 없음을 알려줍니다.
이미 내 마음이 곧 도량이고, 내 마음이 부처님의 집입니다.
우리는 왜 부처님을 멀리 있다고만 생각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 마음이 번뇌와 무명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태양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구름 뒤에는 언제나 태양이 빛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가득하면, 내 안에 계신 부처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번뇌를 걷어내고 마음을 맑히면, 이미 부처님은 내 안에서 자비와 지혜로 빛나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모든 것의 근원이다. 마음에서 선한 생각이 일어나면 즐거움이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따른다.” 즉, 우리가 마음을 청정히 하고 선한 마음을 낼 때, 그 순간 부처님은 내 안에 살아 계십니다.
법우 여러분, 수행이란 멀리 부처님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닙니다.
수행은 곧 내 마음 속에 있는 부처님을 깨우는 길입니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다 한 마음에서 나온다.” 과거의 부처님, 현재의 부처님, 미래의 부처님, 모두가 바로 이 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이란 내 마음을 바르게 세우고, 탐욕과 성냄을 비우고, 자비와 지혜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것이 곧 내 마음 안의 부처님을 친견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순간에도 부처님은 함께 계십니다.
가족과의 대화 속에서도, 직장에서의 선택 속에서도, 이웃을 돕는 작은 손길 속에서도 부처님은 내 마음 안에서 드러나십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자비로 전환하는 순간, 그 자리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을 놓아주고 기쁨으로 함께 축하할 수 있다면, 그 순간 부처님은 내 마음에서 환히 웃고 계십니다.
증일아함경에서는 이렇게 설합니다.
“남의 이로움을 보고 시기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곧 보리심이다.”
보리심이란 깨달음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즉,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지 않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곧 내 안의 부처님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종종 “나는 아직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부처님은 언제나 내 안에 계십니다.
내 마음이 청정할 때, 내 마음이 자비로울 때, 내 마음이 지혜로울 때, 그곳에서 이미 부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착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청정히 일으킬 때, 그 순간이 곧 부처님과 하나 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 비는 기도는 멀리 계신 분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일깨우는 기도입니다. 내 마음의 자비를 깨우고, 내 마음의 지혜를 일으키는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합장하는 두 손은, 바로 내 마음 속에 계신 부처님과 내가 하나임을 상징합니다. 향을 사르며 절하는 그 순간, 부처님은 내 마음 안에서 미소 짓고 계십니다.
법우 여러분, 삶은 늘 우리를 시험합니다.
괴로움이 찾아올 때, 병이 찾아올 때, 갈등이 찾아올 때, 우리는 종종 “부처님은 왜 나를 도와주지 않으실까?”라고 의문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내 마음의 자비와 지혜로 응답하고 계십니다.
내가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작은 희망을 붙잡을 때, 그 순간 부처님은 내 마음 속에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잡아함경에서는 “고통은 지혜의 스승이요, 괴로움은 깨달음의 길을 연다.”고 하셨습니다. 괴로움조차도 내 안의 부처님을 더 깊이 만나게 하는 길이 됩니다.
이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부처님을 멀리서 찾지 마십시오.
내 마음을 바라보는 순간, 내 마음이 맑아지는 순간, 그 자리에 부처님은 계십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배우자를 아끼는 마음속에서도 부처님은 계십니다.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정직을 지키는 마음속에서도 부처님은 계십니다.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보고 감사하는 순간에도 부처님은 계십니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를 이기는 자가 가장 위대하다.”
내 안의 탐욕과 성냄을 이기는 순간, 내 안의 부처님은 더욱 빛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내 마음 안의 부처님을 믿고 살아가십시오.
남을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가 부처님을 드러내고, 작은 보시 한 번이 부처님을 환하게 빛나게 합니다.
삶 속에서 부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항상,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안에 계십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도 내 마음 안의 부처님과 함께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발원하면서 오늘 아침방송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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