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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5일(수) 아침방송법문 : “내 마음이 고요할 때 관세음보살이 오신다.”
眞虛性宗 2025-10-15 08:14:20, 조회 : 543, 추천 : 0
법우 여러분, 오늘은 음력 8월 스무 나흘 날,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는 관음재일 아침입니다.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국화의 향기가 맑게 피어오르고, 산사의 종소리는 그 향기에 실려 천천히 세상을 깨웁니다.

들판은 가을빛으로 물들고, 하늘은 어느 때보다 투명합니다.
이 고요한 아침에,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로운 이름을 부르며 마음의 소리를 들어봅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처럼, “내 마음이 고요할 때 관세음보살이 오신다.”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 보문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살은 중생의 울음소리를 듣고, 자비로 응답하느니라.” 관세음보살님은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소리를 따라 응하시는 자비의 화신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마음이 고요할 때입니다. 마음이 분노와 두려움, 탐욕과 시비로 요동칠 때는 아무리 그분이 우리 곁에 계셔도, 우리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고요함은 단지 침묵이 아니라, 모든 진리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유마경에서는 “마음이 청정하면 그곳이 곧 도량(道場)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부처님도 보이지 않지만, 마음이 고요하면 돌 하나, 바람 한 줄기, 꽃 한 송이 속에서도 부처님을 뵙게 됩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님은 먼 하늘의 신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고요함 속에 늘 함께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고요한 마음을 회복할 때, 그분은 미소 짓듯 우리 안으로 오십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시끄럽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늘 바쁘고, 휴식조차 마음속엔 끊임없는 생각과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아무리 수행을 해도, 부처님 말씀은 귀를 스쳐 지나갈 뿐, 마음에 닿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고요히 하는 일입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세상은 이미 부처님의 도량이 됩니다.  

고요함은 결코 공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는 생명이 피어납니다. 바람이 멈춘 호수는 하늘을 비추듯, 마음이 멈추면 자비가 드러납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는 바로 그 고요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과 같습니다. 연꽃은 흙탕물 속에서 자라지만, 그 꽃은 흙의 때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 세속의 번뇌 속에서도 청정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마음을 고요히 할 때, 관세음보살님은 우리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대의 고요함이 곧 나의 자비요, 그대의 자비가 곧 나의 음성이다.” 이 말씀은 단지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수행의 진리입니다. 마음이 잔잔해질수록 자비의 소리가 깊어지고, 자비의 소리가 들릴수록 마음은 더욱 맑아집니다. 결국 고요와 자비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법우 여러분, 고요한 마음은 결코 세상을 외면하는 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바람이 잠잠해야 돛이 방향을 잡듯, 마음이 고요해야 올바른 길을 볼 수 있습니다. 화가 난 마음으로는 남의 고통을 볼 수 없고,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자비를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요하면, 타인의 고통이 내 마음에 울리고, 그 울림이 바로 자비의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자비행입니다. 듣는 자비, 응하는 자비, 그리고 고요 속의 자비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보살님을 찾기 위해 멀리 절을 찾아가고, 이름을 천 번 만 번 염송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요하지 않다면 그 염불은 소리로만 머무를 뿐, 진심으로 닿지 않습니다. 반대로, 마음이 맑고 고요하면 한 번의 염송도 천 번의 염송보다 깊게 울립니다. 그것은 외운 횟수가 아니라 마음의 청정함이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의 들녘을 걸어보십시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벼이삭은 서로 부딪히며 은은한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 속에는 감사와 겸손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혼자 익은 것이 아닙니다. 햇살이 나를 키웠고, 바람이 나를 말렸으며, 땅이 나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그 벼이삭의 고백은 바로 우리 마음의 고요함 속에서 들을 수 있는 법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소리는 관세음보살님의 음성으로 변합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세상은 곧 도량이 됩니다.  

법화경에는 “보살이 이름을 들으면 근심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마음의 불안이 가라앉고, 두려움이 녹아내립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단지 이름의 힘 때문이 아니라,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염송하는 그 순간, 생각이 잠시 멈추고, 오직 그 한 마음만이 남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관(觀)의 수행이며, 자비의 씨앗입니다.  

법우 여러분, 고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를 욕해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요함은 단단함이 아니라 깊음이기 때문입니다. 고요한 사람의 마음은 깊은 바다처럼 잔잔하면서도, 그 속에 모든 것을 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비의 마음이고,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시면서, 법우님들의 마음속에도 그 고요함이 머물길 바랍니다. 말이 많을수록 마음은 흐려지고, 침묵 속에서 마음은 맑아집니다. 고요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오늘 하루의 모든 만남이 관세음보살님을 만나는 인연이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마음의 고요함은 단순히 세상의 소음을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요는 세상을 떠나는 침묵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화입니다. 바람이 잔잔해야 바다의 깊은 빛이 드러나듯, 마음이 고요해야 자비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이 고요한 마음이 바로 관세음보살님께서 머무시는 자리요, 그분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도량입니다.  

우리는 흔히 관세음보살님을 바다와 같은 분이라 부릅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품으시고, 그 소리마다 자비로 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다가 모든 물줄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넓고 깊기 때문입니다. 깊지 않으면 넓을 수 없고, 넓지 않으면 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또한 그렇습니다. 얕은 마음은 쉽게 흔들리고, 좁은 마음은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마음이 깊어지고 넓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의 고통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때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는 내 안에서 숨 쉬기 시작합니다.  

법우 여러분, 고요한 마음은 자비의 씨앗이요, 실천의 근본입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사람의 말 속에서도 그 사람의 괴로움이 들리고, 미소 뒤에 감춰진 외로움이 보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이해하게 됩니다. 이해는 연민으로 이어지고, 연민은 자비로 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고요함이 자비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법화경에서 관세음보살님은 “세상의 모든 중생이 괴로움을 당하면 그 소리를 듣고 구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모든 사람의 고통을 물리적으로 없애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 깨달음을 일깨우시어, 스스로 고통을 다스릴 수 있도록 자비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즉, 관세음보살님은 ‘들어주는 분’이 아니라 ‘깨닫게 하는 분’이십니다. 그 깨달음의 순간이 바로 마음의 고요입니다.  

고요한 마음을 지닌 이는 타인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아봅니다. “저 사람의 말이 왜 저리 거칠까?” 생각하는 대신,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이런 성찰의 순간마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 안에서 미소 짓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이미 자비의 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결코 거창한 행동이 아닙니다. 한마디 말, 한순간의 침묵, 한 번의 양보 속에서도 자비는 살아 숨 쉽니다.  

유마경에서는 “고요한 마음은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마음이 고요하면 들을 수 있고, 아무리 조용한 방 안에 있어도 마음이 요란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이유는, 그분의 목소리가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수행이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는 일, 그것이 수행의 처음이며 끝입니다.  

법우 여러분, 삶이란 매일의 선택의 연속입니다. 순간순간 우리는 화를 낼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요한 마음은 늘 올바른 길을 알려줍니다. 고요함은 판단이 아니라 통찰이며, 통찰은 자비의 행위로 이어집니다. 누군가 내게 상처 주는 말을 할 때, 즉시 화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 고요히 숨을 고를 때,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 고요한 순간, 자비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 아이가 울고 있을 때 어머니는 서둘러 꾸짖지 않습니다. 잠시 아이를 바라보며 그 울음의 이유를 헤아립니다. 그것이 자비입니다. 자비는 이해에서 시작되고, 이해는 고요에서 비롯됩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울음을 들으시되, 그 소리를 고요히 관(觀)하시며, 그 울음이 스스로 잦아들 수 있도록 부드럽게 감싸 주십니다. 이것이 ‘관세음(觀世音)’의 참뜻입니다. 듣되 반응하지 않고, 바라보되 판단하지 않으며, 그저 고요히 품어주는 마음, 그것이 자비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런 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보았을 때, 바로 나무라기보다 “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헤아리는 마음, 그것이 자비의 시작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이런 마음의 움직임을 가장 귀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 번 이해할 때마다,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고,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부드러워집니다. 그 순간, 관세음보살님은 우리와 함께 미소 짓고 계십니다.  

고요한 마음은 결국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자비를 느꼈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고, 작은 도움이라도 베풀며,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로 그 자비를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지혜는 고요함에서 피어나고, 자비는 실천에서 완성된다.”고 하셨습니다. 고요함은 자비의 뿌리요, 실천은 그 열매입니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고, 고요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비도 없습니다.  

법우 여러분, 세상은 때로 거세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요하면 그 흔들림조차 하나의 수행이 됩니다. 폭풍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등불처럼, 고요한 마음은 삶의 어둠 속에서도 길을 밝혀 줍니다. 관세음보살님은 그 등불을 우리의 마음속에 놓아 주신 분입니다. 그 등불은 작지만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비를 잊지 않는 한, 그 빛은 늘 타오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혹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시비의 말이 떠오를 때, 그 순간 잠시 마음을 멈추어 보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이 고요할 때, 관세음보살님이 오신다.”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의 불길을 잠재우고, 내 삶의 고요함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외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관세음보살님이 내 안에서 함께 숨 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법우 여러분, 고요함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걸음 물러설 때, 한숨 대신 미소를 지을 때, 그리고 미워하기보다 이해를 택할 때 피어나는 마음의 빛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말씀하신 자비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서로를 향해 보이는 따뜻한 시선 속에 이미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 이는 고요를 찾기 위해 산으로 가고, 또 어떤 이는 기도를 위해 절로 향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미 유마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그곳이 곧 도량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우리가 일하는 그 현장, 우리가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공간이 곧 부처님께 귀의하는 도량입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그 자리가 바로 수행의 자리이고, 그 순간 관세음보살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법우 여러분, 고요함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품는 일입니다. 고요한 마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습니다. 누군가의 한숨, 누군가의 웃음, 그리고 바람의 속삭임 속에서도 보살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고요한 마음이 바로 깨달음의 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지혜가 피어나고, 지혜 속에서 자비가 완성된다.” 우리가 마음을 고요히 하면 지혜가 드러나고, 그 지혜가 다시 자비로 변하여 세상을 이롭게 합니다. 이것이 곧 수행의 순환이자 자비의 원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은 늘 청정하고, 늘 고요하며, 늘 자비롭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요해질 때 그분은 이미 내 안에 계시고, 우리가 자비로울 때 그분의 손길이 세상에 닿습니다. 고요함은 관세음보살님의 언어이고, 자비는 그분의 행동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마음이 시끄러워질 때,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십시오. 그리고 속삭이십시오. “내 마음이 고요할 때 관세음보살이 오신다.” 그 한마디 속에 보살님의 미소가 깃들고, 세상은 다시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 여러분 모두의 마음속에도 자비의 등불이 환히 빛나길 발원드립니다.
대덕심 [2025-10-15] :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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