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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1일(화) 아침방송법문 : “추수(秋收)의 계절, 마음의 공덕을 거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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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1 08:03:54, 조회 : 55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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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9년 10월 21일 (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추수(秋收)의 계절, 마음의 공덕을 거둔다.”
법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불기 2569년 10월 21일, 음력 9월 초하루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시절, 산과 들은 붉고 누렇게 물들며, 모든 만물이 결실의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 불자들은 “추수의 계절, 마음의 공덕을 거둔다.”는 뜻으로, 한 해 동안의 수행과 정진을 되돌아보며 마음의 열매를 수확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가을의 들녘은 말이 없습니다.
벼이삭은 낮게 고개를 숙이고, 나무들은 그 잎을 거두며, 하늘은 깊고 푸르게 열려 있습니다.
그 고요한 자연의 모습 속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숨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이루어지고, 인연은 행(行)으로 이어지며, 행은 결과로 돌아온다.’우리가 오늘 거두는 열매는 어제 심은 씨앗의 결과이며, 오늘 우리가 행하는 선(善)은 내일의 복덕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복을 짓는 것은 땅에 씨앗을 심는 것과 같으니,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열매를 얻는다.”부처님께서는 ‘마음의 밭’을 일구는 일을 농부의 일에 비유하셨습니다.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 내내 잡초를 뽑으며 땀을 흘립니다.
그 노력의 결실로 가을에 곡식을 거두듯이, 불자는 마음의 밭에 자비와 지혜의 씨앗을 심고, 그 위에 인내와 정진의 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마음의 들판에도 황금빛의 공덕이 익어갑니다.
그러나 법우 여러분, 씨앗이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뿌린 뒤에는 꾸준한 정성이 필요합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더라도, 농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수행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염불을 하다 지칠 때, 기도가 더딜 때, 혹은 마음이 흐트러질 때조차 그 순간이 바로 공덕이 익어가는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법구경(法句經)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행을 꾸준히 닦는 이는,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복도 쌓이고 쌓여 큰 복덕이 된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와 같은 복의 샘이 있습니다.
그 샘은 탐욕이 줄고 자비가 피어날 때 솟아납니다.
남을 위해 나누고, 중생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의 욕심을 줄이는 순간마다 공덕의 물결이 조금씩 고요히 차오릅니다. 그러나 만약 그 마음을 시기와 탐욕으로 흐리면, 샘물은 탁해집니다. 공덕의 추수는 오직 맑은 마음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가을의 논을 떠올려 보십시오.
벼이삭이 무르익으면 고개를 숙입니다.
공덕이 무르익은 사람 또한 겸손합니다.
유마경(維摩經)에 이르기를, “지혜로운 이는 공덕을 말하지 않고, 공덕이 없는 자만 그것을 자랑한다.”진정한 수행자는 자신이 쌓은 복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부드럽고, 눈빛은 따뜻하며, 행동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한 삶의 자세가 바로 익은 벼이삭의 모습입니다.
오늘 음력 9월 초하루를 맞이하며, 우리 마음의 밭도 한 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는 올 한 해 어떤 씨앗을 뿌렸는가?
남의 잘못을 탓하는 말의 씨앗을 심었는가,
아니면 격려와 위로의 말을 전한 씨앗을 심었는가.
작은 기쁨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는가,
아니면 당연한 듯 지나쳐버렸는가. 이러한 성찰이 바로 마음의 추수입니다.
공덕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본생경(本生經)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줌의 곡식도 보시하면, 그것은 천만 배의 복으로 돌아오리라.”
부처님께서는 복의 크기를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마음이 진실한가, 자비로운가, 집착이 없는가를 보셨습니다.
한 마디 따뜻한 말, 한 번의 미소, 한 걸음의 양보, 그것이 곧 공덕의 씨앗입니다.
그 씨앗은 작은 듯 보이지만, 시간 속에서 자라나 나와 타인을 모두 이롭게 하는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가을은 우리에게 결과의 법(果法)을 일깨웁니다.
봄에 뿌린 대로 가을에 거두듯, 우리의 행위 또한 언젠가 그 결과로 돌아옵니다.
선을 심으면 선의 열매를, 악을 심으면 악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업(業)의 법칙이며, 인연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의 생각 하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곧 내일의 열매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불심사 법우님들께서 약사여래 천일기도에 동참하시며 천일 동안의 정진을 이어오신 것도 이 마음의 추수와 깊이 통하는 일입니다.
천일기도는 곡식을 가꾸듯 매일의 기도를 거르는 법이 없고, 그 속에 참회와 인내, 그리고 믿음의 씨앗이 함께 자라납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고요해지고, 타인의 아픔이 보이고, 감사와 기쁨이 피어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덕의 결실입니다.
오늘 초하루 법회는 그동안의 정진을 감사로 회향하고, 다가오는 한 달을 새롭게 시작하는 인연의 자리입니다. 이날 부처님께 올리는 등불 하나, 향 한 자루, 그 작은 공양 속에도 깊은 원력이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듯, 우리 또한 서로의 마음속에 깃든 선의 향기를 알아보는 것이 수행의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도 가을의 향기가 피어오릅니다.
그 향기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선의 향이며, 세속의 향보다 천배 만 배 귀한 향기입니다. 법구경의 말씀처럼,“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퍼지지 않지만, 선인의 향기는 사방으로 퍼진다.”
이 가을, 우리 모두의 삶이 그 선인의 향기로 세상을 물들이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공덕은 실천 속에서 익어갑니다.
씨앗을 뿌리고도 물을 주지 않으면 그 싹이 나지 않듯, 불자로서의 믿음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결코 공덕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아침, 부처님께 귀의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해 봅시다.
“나는 오늘 선한 마음으로 한 사람에게 미소를 짓겠습니다.
나는 오늘 한 번의 인내로 화를 누그러뜨리겠습니다.
나는 오늘 한 줄의 감사로 내 삶을 채우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이며, 공덕의 추수입니다.
증일아함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보시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재물로 하는 보시, 법으로 하는 보시, 두려움을 덜어주는 보시니라.”이 세 가지는 모두 마음의 공덕을 가꾸는 길입니다.
첫째, 재보시(財布施)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나눌 때, 탐욕이 줄고 자비가 자랍니다.
둘째, 법보시(法布施)는 지혜의 나눔입니다.
좋은 말을 건네고, 올바른 법을 전하며, 중생을 어둠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무외보시(無畏布施)는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근심과 외로움에 떨고 있을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무외보시입니다.
이 세 가지 보시가 조화를 이루면, 그 삶은 이미 부처님의 향기로 가득 찬 정토와 같습니다.
우리의 공덕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세상과 나누어야 더욱 커집니다.
유마경에서는 “공덕은 나눔으로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자비를 실천할 때, 나의 마음은 넓어지고, 감사를 표현할 때, 내 안의 복은 자라납니다. 그리고 회향할 때, 그 공덕은 무량해집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수행하고 기도하는 이유는 단지 나의 안락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공덕을 중생에게 회향하기 위함입니다.
‘나의 행복이 모든 중생의 행복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이것이 회향(回向)의 마음이며, 불교 수행의 마지막 열매입니다.
봄에 심은 씨앗이 혼자만의 힘으로 자라지 않듯이, 우리의 공덕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인연이 함께하고, 도반이 함께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함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불심사라는 도량도, 한 사람의 원력으로가 아니라 수많은 법우들의 정성과 기도, 그리고 마음의 나눔이 모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초하루 법회의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날은 자신이 쌓은 복덕을 되돌아보고, 그 공덕을 부처님께 회향하는 날입니다.
향 한 자루, 꽃 한 송이, 공양 한 그릇에도 진심이 담기면 그것이 바로 회향의 공덕입니다. 법구경에서 말씀하시길, “공양의 크기를 따지지 말라. 마음이 깨끗한 이의 작은 공양은 천만의 큰 복을 낳는다.”
이 말씀을 새기며, 오늘의 공양을 부처님께 올려야 합니다.
가을은 감사의 계절입니다.
하늘은 높고, 들판은 풍성하고, 바람은 맑습니다.
이 계절의 모든 기운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가?”
감사할 것이 많을수록 그 사람의 마음은 부유합니다.
부처님은 “감사의 마음은 복의 근원이며, 원망은 어둠의 근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내 곁의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십시오.
그것이 곧 복의 문을 여는 첫걸음입니다.
혹여 법우님들 가운데 “나는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내 마음은 아직 공덕을 거둘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공덕의 씨앗은 완벽함에서 싹트는 것이 아니라, 참회의 눈물 속에서 자랍니다.
부처님은 잡아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보고 뉘우치는 이는, 이미 선인의 길 위에 선 자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다시 일어서려는 그 마음이 바로 ‘첫 공덕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실할 때, 그 마음은 저 가을 하늘보다 더 높고, 그 자비는 강물처럼 멀리 흐릅니다. 세속의 풍요보다 더 귀한 것은, 마음의 풍요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싹트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그 자체가 복이고, 탐욕이 사라지면 그 자리가 곧 천상(天上)입니다.
그러므로 법우 여러분,
이 가을에는 밖의 수확보다 마음의 추수를 더 귀히 여기십시오.
쌀 한 톨, 콩 한 알의 수확보다, 나의 자비심이 얼마나 익었는가를 살피는 계절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오늘 한 번이라도 화를 참았는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는가, 남의 허물을 덮어주었는가, 이 모든 것이 공덕의 추수입니다.
본생경에는 부처님께서 과거세에 보살행을 닦으시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때 보살은 허기진 사자를 보고, 자신의 몸을 던져 먹이로 내어주셨다고 합니다.
그 행위는 생명을 버린 희생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에는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자비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 한 번의 보시가 무량한 생을 두루 이롭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공덕의 추수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러한 보살의 마음을 닮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조금 덜어 이웃에게 나누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며,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도할 때, 그 공덕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그 복덕은 자손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진리요, 인연의 법칙입니다.
오늘 이 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법우님들의 마음에도 공덕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 씨앗이 감사의 햇살과 자비의 물을 만나면, 머지않아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그 꽃은 탐욕의 향이 아닌, 자비의 향이며, 그 열매는 명예의 과실이 아닌, 평안의 과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정한 추수입니다.
법우 여러분, 마음의 공덕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매일 짓는 선한 마음, 부드러운 말, 작은 인내 속에 있습니다. 오늘의 법문 제목처럼,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지만, 불자에게는 마음의 열매를 거두는 때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난다.”
공덕이란 외부의 결과가 아니라, 내 마음의 향기입니다. 내가 오늘 미소 한 번을 지었다면 그것이 복이고, 타인을 이해하려 했다면 그것이 곧 수행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며 나무는 잎을 떨구지만, 우리 마음은 한층 더 충만해집니다.
내려놓음 속에서 진정한 풍요를 얻는 법입니다. 부처님께서 “탐욕을 버리면 복이 따르고, 성냄을 버리면 평화가 따르며, 어리석음을 버리면 지혜가 따른다.”고 하셨듯이, 이 세 가지 독을 버리는 것이 바로 마음의 추수요, 수행의 완성입니다.
오늘 음력 9월 초하루 법회일을 맞아 부처님 전에 올리는 우리의 합장은 곡식의 이삭을 거두는 손길과 같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시작한 하루는 반드시 복으로 열매 맺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맑으면, 그 맑음이 곧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
오늘도 부처님 가르침 안에서 마음의 밭을 갈며, 자비의 씨앗를 심고, 감사의 물을 주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열매가 자신과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에게 회향되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발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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