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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4일(금) 아침방송법문 : “자비는 나를 밝히고 세상을 밝힌다.”
眞虛性宗 2025-10-24 08:03:47, 조회 : 539, 추천 : 0
불기 2569년 10월 24일(금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법문 주제 : “자비는 나를 밝히고 세상을 밝힌다.”

법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불심사 자비나눔회 창립법회를 하루 앞둔 뜻 깊은 금요일 아침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며 세상은 점점 고요해지고, 아직 추수를 덜 끝낸 들녘의 벼이삭처럼, 우리 마음도 고개를 숙이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계절에 우리가 함께 되새겨야 할 부처님의 말씀은 바로 자비(慈悲)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자비는 나를 밝히고 세상을 밝힌다.”입니다.

오늘 법문 주제처럼 자비는 나를 밝히고 세상을 밝히는 부처님의 빛입니다. 자비가 없는 세상은 삭막한 어둠과 같고, 자비가 있는 마음은 등불처럼 주위를 비춥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향해 나아가신 모든 걸음의 시작과 끝은 자비였습니다.
자비는 부처님의 마음이며, 동시에 중생의 본래 마음이기도 합니다.  

유마경(維摩經)에는 “자비심은 모든 선행의 근본이며, 자비 없는 지혜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비는 수행의 뿌리이며, 깨달음의 문입니다.
지혜는 자비를 떠나 홀로 설 수 없고, 자비는 지혜의 인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자비는 단지 불쌍히 여기는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고통을 내 일처럼 느끼는 공감의 실천입니다. 남의 괴로움을 볼 때 외면하지 않고, 작게라도 도와주려는 마음, 그것이 바로 자비의 시작입니다.  

법우 여러분, 자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는 말 한마디의 따뜻함 속에 있고, 작은 손길 하나의 온기 속에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미소를 건네는 일, 화난 마음을 잠시 눌러주는 인내, 서운한 이를 먼저 이해하는 용서, 이것들이 모두 자비의 실천입니다. 우리는 큰일을 해야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작은 선행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그 작은 선이 모여 큰 복을 이룬다.”하셨습니다. 작은 자비의 씨앗 하나가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가을 햇살이 나뭇잎을 비추면 잎은 스스로의 색을 더 선명히 드러냅니다. 마찬가지로, 자비의 마음이 우리의 일상 속에 비추어질 때 우리의 인생은 한층 더 깊은 빛깔을 띠게 됩니다. 자비는 남을 위해 베푸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정화하는 수행입니다. 미움과 분노, 원망을 품은 마음은 나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하면 내 마음이 먼저 평안해집니다. 남을 밝히려는 자비의 등불이 결국 내 안의 어둠을 먼저 없애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는 나를 밝힌다.’는 뜻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왜 자비를 실천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은 나의 자식이며, 그들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갑니다. 내가 웃으면 주변이 밝아지고, 내가 어두워지면 세상도 그만큼 어두워집니다. 그러니 내 마음의 자비는 단지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전체의 행복과 직결된 일입니다. 나를 밝히는 자비의 불빛이 결국 세상을 밝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일은 불심사에서 자비나눔회 창립법회가 봉행됩니다. ‘자비나눔회’라는 이름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자비는 나눔을 통해 완성되고, 나눔은 자비로써 이어집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나누는 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 그리고 마음을 나누는 일, 이것이 자비의 생활화입니다. 불심사 자비나눔회는 바로 그 자비의 실천을 신행공동체의 중심으로 세우려는 큰 원력의 결실입니다. 법우님 한 분 한 분이 그 자비의 씨앗이 되어 세상 곳곳에 따뜻한 빛을 전하는 등불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자비는 곧 이해(理解)입니다. 이해는 판단이 아니라 공감에서 나옵니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내 입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진정한 자비가 피어납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보실 때 그들의 업이나 잘못만을 보지 않으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들이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부처의 씨앗을 품고 있음을 보셨습니다. 그것이 자비의 눈입니다. 자비의 눈은 비판 대신 연민을, 미움 대신 이해를 선택합니다. 우리가 그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이미 달라집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자비의 마음을 가진 이는 원수도 친구로 바꾸고, 미움의 마음을 가진 이는 친구도 원수로 만든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비의 마음은 세상을 화합하게 하고, 미움의 마음은 세상을 갈라놓습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마음속의 자비를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자비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수행이고, 그것이 곧 불자의 삶입니다.  

법우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대반열반경에서 “자비는 모든 불법의 근본이요, 깨달음의 첫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경전을 외우고, 깊은 선정에 들었다 하더라도, 자비의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껍질뿐입니다.
자비는 불법의 근본이며, 수행의 완성입니다.
왜냐하면 자비는 인간이 본래 지닌 부처의 성품을 깨우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살아 있습니다.  
가족과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 어려운 이에게 건네는 작은 도움, 서운한 사람을 향한 용서의 마음, 이 모든 것이 자비의 씨앗입니다.  
우리는 큰 보시나 거창한 행동만을 자비라고 생각하지만, 자비는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증일아함경에서 “한 번의 미소와 한 번의 이해가 백 번의 공양보다 더 큰 복을 낳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자비는 단순한 마음의 움직임에서 시작됩니다. 그 한 번의 미소가, 한 번의 말이, 누군가의 어둠을 걷어내고 마음의 등불이 되어 줍니다.  

불심사 자비나눔회가 내일 창립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비는 함께 나눌 때 더욱 커지고, 함께 실천할 때 더욱 깊어집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선행보다, 함께 모여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자비행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된 수행입니다.  
자비나눔회는 단지 보시 단체가 아니라, 자비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이어가는 수행공동체입니다. 이곳 불심사에서 자비의 불씨가 타오르고, 그 불씨가 각자의 삶 속으로 옮겨질 때 우리의 세상은 한층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자비의 실천은 단지 타인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정화하는 수행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실제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미움을 품으면 그 독이 내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용서하면 그 병이 사라집니다.  
부처님께서는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이는 이미 천상의 문을 연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용서와 이해는 자비의 실천이자, 스스로를 구제하는 길입니다.  

자비는 또한 존중입니다. 모든 생명은 다 이유와 사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한 마리,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의 존엄이 깃들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길을 걷다 상한 나뭇잎 하나도 밟지 않으셨다는 일화는 그 자비가 얼마나 섬세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자비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만 있는 덕목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보는 지혜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자비와 지혜는 한 뿌리에서 나옵니다.  
지혜는 자비를 밝히고, 자비는 지혜를 완성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비를 개인의 덕목으로만 여기지 말고, 공동체 전체의 빛으로 키워가야 합니다. 불심사에서 시작된 자비의 움직임이 전국 곳곳으로 번져 나간다면, 그것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꾸는 ‘불심의 실천’이 될 것입니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한 사람의 자비는 더욱 귀하고 빛납니다.  
부처님께서도 “한 사람의 자비로운 마음이 열 사람의 악한 마음을 이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법우 여러분,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겠다고 서원하십시오. 나의 자비가 한 사람의 마음을 밝히고, 그 한 마음이 다시 열 사람의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자비는 또한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내가 남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곧 내 마음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타인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순간, 내 안에도 어둠이 생기고,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순간, 내 마음에도 빛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자비는 나를 치유하는 힘입니다.  

법우 여러분,
만약 오늘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그 사람도 나처럼 힘들고 외로웠겠구나.” 하고 이해하는 순간, 그 서운함은 사라지고 따뜻함으로 바뀝니다. 그 변화의 순간이 바로 자비의 기적입니다.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에는 “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실천입니다.  
자비는 안전한 곳에 머물며 마음으로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현장으로 들어가 손을 내밀고, 그들과 함께 울어주는 용기입니다.  
자비는 연민의 눈물과 실천의 땀이 만나 이루어지는 행동의 수행입니다.  
내가 직접 움직이고, 직접 돕고, 직접 함께할 때 자비는 살아납니다.  
자비가 없는 신행은 껍데기이고, 실천이 없는 자비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자비는 생각이 아니라 행동의 불빛입니다.  

오늘 이 아침, 법우님들의 마음에도 그 불빛이 켜지기를 바랍니다.  
자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 그것이 자비의 시작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과의 대화 속에서,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고, 조금 더 따뜻하게 행동하면, 그 한 걸음이 바로 불심의 발자취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 자비가 스며들 때, 불심사는 진정한 자비도량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자비는 결코 이론이 아닙니다. 자비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삶의 실천입니다. 자비는 화려한 말보다 조용한 행동으로 드러나며, 먼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과 내 주변에서 가장 먼저 피어납니다. 내가 먼저 따뜻하면 내 곁이 밝아지고, 내 곁이 밝아지면 세상이 함께 밝아집니다.
그것이 오늘 주제 “자비는 나를 밝히고 세상을 밝힌다.”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자비의 마음은 곧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뒤 가장 먼저 세상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혼자만의 평안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야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나를 깨닫게 하고, 나를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의 마음을 가진 이는 지혜를 얻게 되고, 지혜를 얻은 이는 다시 자비를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자비와 지혜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자비가 곧 깨달음의 실천이고, 깨달음은 다시 자비로 이어집니다.  

법우 여러분, 내일은 불심사 자비나눔회 창립법회가 봉행됩니다. ‘자비나눔회’라는 이름 속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자비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비는 나눔 속에서 완성됩니다. 나눔은 단지 물질적인 보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시간의 나눔, 내 마음의 나눔, 내 웃음의 나눔, 내 배려의 나눔  이것들이 모여 자비의 큰 강을 이루는 것입니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 모든 생명을 적시듯, 자비의 마음도 흘러야 합니다. 멈추지 않고 흘러야 세상을 살리고 나를 살립니다.  

불심사 자비나눔회는 바로 그 흐름의 출발점입니다. 이곳에서 피어난 작은 자비의 물줄기가 전국의 법우님들 마음속으로 퍼져나가 세상을 따뜻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첫걸음을 내딛는 수행자들입니다. 자비의 실천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한 사람을 위로하고, 오늘 한 사람에게 미소를 건네고, 오늘 한 사람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길을 걷는 일입니다. 자비는 곧 살아 있는 불법입니다.  

법우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이 왜 이렇게 어두운가?”
하지만 세상이 어두운 이유는 아직 우리의 자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등불을 켜지 않고 어둡다고 한탄할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속 자비의 등불을 켜면 그 빛이 곧 세상으로 번져갑니다. 어둠은 어둠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자비의 한 생각이 백겁의 어둠을 없앤다.”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켜는 그 작은 자비의 등불 하나가 백겁의 어둠을 지우는 힘이 됩니다.  

자비는 또한 감사입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내가 복된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비는 베푸는 자의 손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비움 속에서 채워지고, 채움 속에서 다시 비워지는 순환이 바로 자비의 길입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피어나는 연꽃과 같습니다. 진흙 속에서도 맑은 향기를 피우며, 오직 세상을 향해 향기롭게 피어납니다.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서 보현보살은 이렇게 발원하셨습니다.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때까지 나는 쉬지 않으리라.” 이것이 자비의 원력입니다. 자비는 잠시 돕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생을 두고 지속되는 원력의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도 이 마음을 본받아 자비의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내가 먼저 밝아지고, 내 가족이 밝아지고, 내 이웃이 밝아지고, 마침내 이 세상이 밝아질 때까지, 우리의 자비는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자비의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알고 있습니다. 미소 하나로도 누군가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 한마디로도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운 말은 향기로운 꽃과 같아, 그 향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자비로운 말 한마디가 바로 세상에 퍼지는 그 향기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의 법문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봅시다.
자비는 나를 밝히고 세상을 밝힙니다. 자비는 단지 이타의 행이 아니라, 내 존재의 빛을 되찾는 길입니다. 남을 도우며 나를 깨닫고, 나를 비추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삶의 방향입니다. 내 마음이 따뜻할 때 세상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자비의 마음이 피어날 때 세상은 이미 정토(淨土)가 됩니다.  

내일 봉행되는 불심사 자비나눔회 창립법회가 바로 그 정토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밝히는 이 작은 등불이, 이웃의 삶과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닿아, 모든 중생이 고통을 벗고 안락을 누리게 되기를 발원합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의 등불을, 오늘 다시 우리 가슴속에 밝혀봅시다.
그 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매일의 삶 속에서 자비를 실천합시다. 그것이 곧 수행이고, 그것이 곧 보시이며, 그것이 곧 불심입니다.  

자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미소를 지을 때, 그 순간 이미 자비가 시작됩니다. 그 미소 하나가 나를 밝히고, 내 앞의 세상을 환하게 비춥니다.
그러므로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는 자비의 하루로 살아가십시오. 말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행동보다 깊은 배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시길 바랍니다.
그 길 위에 부처님이 함께하실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대덕심 [2025-10-24] :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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