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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3일(월) 아침방송법문 : “원망을 놓고 용서할 때 진정한 복이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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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3 08:01:58, 조회 : 56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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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9년 11월 3일(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법문 주제 : “원망을 놓고 용서할 때 진정한 복이 온다.”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법문의 주제는 “원망을 놓고 용서할 때 진정한 복이 온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법문은 부처님께서 법구경(法句經)에서 하신 말씀, “원한은 원한으로 풀리지 않는다. 오직 사랑으로 풀린다.”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이 짧은 한 문장은 우리가 일생 동안 배워야 할 모든 마음공부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누구나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고, 사랑과 미움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불자는 그 마음의 작용을 지혜로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원망의 불길을 품으면 결국 그 불에 나 자신이 타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용서의 바람을 일으키면, 그 불길은 꺼지고 마음에는 평화의 향기가 남습니다.
원망은 남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입니다. 남을 탓하는 말은 결국 내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남을 향한 분노는 나의 복을 갉아먹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스스로의 불 속에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원망은 밖의 불이 아니라 내 안의 불입니다. 우리가 원망을 놓는다는 것은 단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불길을 스스로 끄는 일입니다. 그 불을 끄는 순간, 내 마음은 더 이상 뜨겁지 않고, 부처님의 가피가 서서히 스며듭니다.
법우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때로 부당한 일, 억울한 일, 상처받는 일을 겪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믿었던 이에게 상처를 받으면 그 원망의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붙잡고 사는 한, 우리는 늘 과거에 갇혀 살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과거의 일에 머물면 현재의 복이 줄어든다.”고 하셨습니다. 원망은 과거를 붙잡는 마음이고, 용서는 현재를 사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떠나보내야 오늘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용서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다치면 시간이 필요하고, 상처가 깊으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치유를 만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원망은 시간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마음으로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사라집니다. 그 내려놓음의 순간이 바로 복을 짓는 순간입니다.
법우 여러분, 용서의 마음은 불법(佛法) 안에서 자비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자비(慈悲)란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마음은 좁아지고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용서의 마음을 낼 때, 그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들어옵니다. 그 빛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빛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가장 큰 자기 치유이며, 동시에 최고의 복덕행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진정한 보살은 원망을 사랑으로 바꾸고, 미움을 자비로 전환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현실에서 원망을 어떻게 수행으로 바꾸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했을 때, 그 사람을 미워하는 대신 자비심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불자의 수행입니다. 그 사람도 무명(無明)에 가려있고, 그 마음 또한 괴로움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임을 알면, 미움은 연민으로 바뀌고 원망은 이해로 변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돌이키는 순간, 이미 복이 내 안에서 피어납니다.
법우 여러분,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남의 마음을 바꾸려 하면 괴로움이 생기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면 슬픔이 커집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고 하셨습니다. 원망이란 결국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집착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내가 기대했던 대로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내가 바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그 순간 원망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 집착을 내려놓으면 원망도 사라집니다. 내려놓음은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용서는 수행자의 가장 높은 덕목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나의 자존심을 넘어서는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넓이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부처님은 “작은 그릇에는 큰 복이 머물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원망을 품은 마음은 그릇이 작습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마음은 그릇이 크고, 그 속에는 무한한 복이 담길 수 있습니다. 복은 크고 작은 행위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복은 마음의 크기에서 비롯됩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 불심사 도량에는 수많은 기도와 발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약사기도, 관음기도, 신중기도에 동참하는 모든 법우님들의 공덕이 쌓여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도량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원망을 내려놓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이 가득한 채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벽에 부딪히지만, 마음을 비우고 용서하면 부처님의 가피는 강물처럼 흘러들어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문은 용서로 열리고, 복의 문은 자비로 열립니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비를 품은 자는 원한의 칼날이 닿지 못하고, 용서를 행한 자는 하늘의 복이 머문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망을 버림으로써 복을 짓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용서는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수행의 실천입니다. 그것은 나를 구제하는 법이자, 세상을 구제하는 법입니다.
법우 여러분, 원망은 결국 나의 복을 가로막는 벽입니다. 그 벽을 허무는 순간, 복은 스스로 들어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 때, 마음은 맑아지고, 그 맑은 마음이 복을 부릅니다. 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맑아질 때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 원망을 놓는 것은 복을 청하는 가장 빠른 길이요, 용서하는 것은 복을 짓는 가장 큰 수행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혹시 마음 한켠에 아직 풀리지 않은 원망이 남아 있다면, 부처님께 맡기십시오. 그 마음을 고이 올려놓고, 이렇게 서원하십시오. “부처님, 제가 이 마음을 놓겠습니다. 제가 이 인연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렇게 서원하는 순간, 부처님께서 그 마음에 복을 내리십니다. 왜냐하면 그 용서가 바로 자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법우 여러분, 인간의 인연은 참으로 깊고도 복잡합니다. 하지만 그 인연의 매듭을 푸는 열쇠는 결국 내 마음에 있습니다. 내가 풀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풀어줄 수 없습니다. 용서는 그 매듭을 부드럽게 풀어내는 힘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의 칼”은 미워하는 마음을 끊는 칼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으로 매듭을 자르는 지혜의 칼입니다. 원망을 내려놓는 순간, 마음의 매듭은 풀리고, 그 자리에는 평화가 피어납니다.
이처럼 용서의 힘은 작아 보이지만, 그 공덕은 한량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용서하는 이는 부처의 길을 걷는 자이며, 미워하는 이는 다시 윤회의 길을 걷는 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용서는 수행자의 자유요, 원망은 중생의 굴레입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윤회의 사슬이 끊어지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이 아침의 법문을 통해 부처님 말씀을 마음에 새겨봅시다. 원망을 품은 마음에는 복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마음은 그 자체가 복의 그릇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넘어 자신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불법의 실천이요, 불자의 삶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은 재물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입니다. 그 마음의 평화는 용서에서 옵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낸다는 것은 단지 상대를 위해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부처님과 하나 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용서를 통해 우리는 부처님의 자비를 닮아가고, 그 자비가 복이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에서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보살은 원망을 끊고 자비를 일으키며, 자비 속에서 복덕을 낳는다.” 이 말씀은 자비의 행위, 곧 용서가 복덕의 근원임을 가르치십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나의 자비심을 일깨우는 행위이며, 그것이 곧 복을 짓는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부처님 전에 향을 올릴 때 그 향의 연기가 하늘로 오르듯이, 우리가 원망을 내려놓는 그 마음의 향기도 부처님께 닿습니다. 향의 연기가 허공에 머물지 않듯, 우리의 자비심도 세상에 머물러 누군가의 상처를 감싸줍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그 용서가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열고, 그 자비의 파동은 멀리멀리 번져갑니다. 그래서 용서는 단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온 세상을 밝히는 불빛이 됩니다.
유마경(維摩經)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중생은 본래 청정하나, 원망과 미움이 그 마음을 가린다.” 이 말씀은 우리의 본성은 본래 맑고 자비로우며, 다만 미움이라는 구름이 그 빛을 가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 구름을 걷어내면, 부처님의 빛은 다시 밝게 비춥니다. 원망을 놓는다는 것은 그 구름을 걷어내는 일이며, 용서하는 순간 그 빛은 다시 마음을 덮습니다. 그러니 용서란 ‘남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의 본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법우 여러분, 세상살이는 인연의 그물입니다. 그 인연 속에는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때로는 상처를 통해 깨달음을 얻습니다. 원망의 인연도 결국 나를 깨닫게 하는 스승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원망하는 자를 통해 인내를 배우고, 미워하는 자를 통해 자비를 배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를 괴롭게 하는 사람도 결국 나를 깨닫게 해주는 인연입니다. 그 인연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이미 용서는 이루어지고 복은 싹틉니다.
법우 여러분, 원망은 마음의 벽을 세우고, 용서는 그 벽에 문을 여는 일입니다. 마음에 문이 열리면 부처님께서 들어오십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기도하면서도 왜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습니까? 그것은 아직 마음의 벽을 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문을 열면 기도의 빛이 스며들고, 그 빛이 복으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곧 부처님께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여는 수행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增支部)에서는 “원망은 어둠의 뿌리요, 용서는 빛의 근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원망을 품는 동안은 어둠 속을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마음이 무겁고, 아무리 복을 지어도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망을 놓고 용서하는 순간 마음은 환히 밝아집니다. 그 밝음이 곧 복입니다. 복은 외부의 보상이 아니라, 마음이 밝아질 때 스스로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법우 여러분,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을 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내가 더 이상 괴롭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계속 품으면 그 사람은 내 안에서 살아 있고, 용서하는 순간 그 인연은 부처님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부처님께서는 “미움을 품은 자는 과거에 묶이고, 용서한 자는 미래를 연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원망은 과거의 감정이고, 용서는 미래의 지혜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 삶의 모든 인연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만난 것입니다. 좋은 인연은 복을 쌓기 위함이고, 힘든 인연은 마음을 닦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미운 인연도 사실은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부처님이 보내신 스승입니다. 그 스승에게 원망 대신 감사의 마음을 낼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이미 해탈의 길에 들어서 있습니다.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는 “원망을 끊은 자에게는 천상의 길이 열리고, 용서를 행한 자에게는 복덕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복은 결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워하던 마음을 자비로 바꿀 때, 바로 그 순간 복은 내 안에 피어납니다. 용서는 마음을 맑히는 수행이며, 자비를 실천하는 지혜입니다.
법우 여러분, 때로는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저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자비의 마음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상처가 없었다면, 나는 용서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바꾸면 미움의 인연이 복의 인연으로 바뀝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연의 색깔은 달라집니다. 마음을 원망에 쓰면 어둠이 되고, 마음을 용서에 쓰면 빛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원망을 품으면 원망의 세상이 보이고, 용서를 품으면 자비의 세상이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 마음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뀌고, 원망을 놓으면 복이 들어옵니다.
법우 여러분, 용서는 기도입니다. 원망의 마음을 자비로 바꾸는 순간, 그것은 부처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됩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신 기도는 결코 화려한 염불이나 많은 공양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는 바로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부처님의 자비와 같고, 그 마음 안에 모든 복이 깃듭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혹시라도 마음속에 불편한 인연이 떠오른다면, 그때 부처님을 떠올리십시오. “부처님, 제가 그 인연을 용서하겠습니다. 그 마음으로 복을 짓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돌리는 순간,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의 도량이 됩니다. 용서의 마음으로 사는 하루는 복으로 시작해 복으로 끝나는 하루입니다.
법우 여러분, 원망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용서는 부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원망을 품을 때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용서할 때는 부처님의 모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수행 중의 수행이요, 자비 중의 자비입니다. 그 마음을 내는 순간 부처님께서 우리 마음에 머무시고, 그 마음이 곧 해탈의 문이 됩니다.
이제 마음속으로 이렇게 발원합시다.
“부처님, 제가 원망을 놓고 용서하겠습니다. 미움을 녹이고 자비를 키우겠습니다. 원망의 인연을 복의 인연으로 바꾸겠습니다.”
그 발원이 이루어질 때, 부처님께서 미소로 응답하십니다.
그 미소가 곧 우리의 복입니다.
오늘 이 아침 법문을 들으시며 마음속에 맺힌 모든 원망이 부드럽게 풀어지고, 그 자리에 자비와 평화가 피어나기를 진심으로 발원합니다. 원망을 놓는 것이 복의 시작이고, 용서하는 것이 복의 완성입니다. 오늘 하루, 그 복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도 부처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따뜻하게 시작하셨습니까.
11월의 바람이 한결 차가워지고, 낙엽은 고요히 떨어지며 겨울의 문턱을 알립니다.
그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처럼 우리 마음속의 원망도 흩어지고, 용서의 바람이 불어오길 바랍니다.
오늘 법문에서 나눈 부처님 말씀, “원한은 원한으로 풀리지 않는다. 오직 사랑으로 풀린다.”는 이 한 구절은 우리가 어떻게 복을 짓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용서는 남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수행이며, 그 마음이 곧 복의 씨앗입니다.
법우 여러분, 아직 마음속에 미움이 남아 있다면 그 마음을 부처님께 맡기십시오.
“부처님, 제가 이 마음을 놓겠습니다.”
그렇게 발원하는 순간,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여러분의 마음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자비로운 이는 복을 얻고, 원망하는 이는 괴로움을 얻는다는 부처님 말씀처럼 오늘 하루는 자비로 복을 짓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용서하는 마음은 약한 마음이 아니라 가장 큰 용기입니다.
남을 탓하는 대신 미움을 놓는 순간, 부처님의 가피가 우리 삶을 감쌉니다.
그 마음이 바로 수행이고, 그 순간이 곧 복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 원망을 내려놓고 용서의 등불을 켜십시오.
그 등불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여러분의 삶을 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법우님들께 감사드리며, 부처님의 자비와 약사여래의 가피가 늘 함께하시길 발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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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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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힙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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