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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5일(토) 아침방송법문 :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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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5 08:02:19, 조회 : 529,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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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9년 11월 15일(토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짜 행복하다.”
법우 여러분, 오늘의 법문 주제는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짜 행복하다.”입니다.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평생 동안 설하신 모든 가르침의 중심이자, 불법의 근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법구경 첫머리에서도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며, 마음이 주인이요, 마음이 세상을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평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행복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 것 같고, 재산이 늘면 평안할 것 같으며, 환경이 좋아지면 마음도 편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밖의 세상을 다스리려 하지 말고, 먼저 자기 마음을 다스리라. 마음이 바로 서면 세상은 저절로 바른 길로 흐른다.”
이 말씀은 우리가 행복을 찾는 방향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즉, 진정한 행복은 외부의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에서 비롯됩니다.
불자는 자신의 마음을 수행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마음이란 형체도 없고 잡을 수도 없지만,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 인연의 뿌리가 되는 곳입니다.
그 마음이 탐욕으로 흐르면 세상은 괴로워지고, 자비로 흐르면 세상은 평화로워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한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 사람의 세상이 평화롭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작은 마음 하나가 곧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마음은 바람보다 빠르고, 물결보다 쉽게 흔들립니다.
조금만 불쾌한 일이 있어도 금세 분노가 일고, 작은 칭찬에도 교만이 피어오릅니다.
이처럼 마음은 늘 요동치며, 우리를 끊임없이 괴로움으로 이끕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길들이는 순간, 고통은 힘을 잃고 행복이 자라납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잘 다스린 자는 자기 자신을 구한 자요, 마음을 방일하게 한 자는 자기 자신을 잃은 자”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수행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해 줍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즉, 분노가 일어나면 ‘아, 내 마음에 분노가 있구나.’하고 알아차리고, 탐욕이 일어나면 ‘지금 내 마음이 무언가를 원하고 있구나.’하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보는 수행, 즉 ‘관(觀)의 수행’입니다.
중아함경에서는 “자기 마음을 아는 이는 모든 법을 아는 이”라 하셨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인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됩니다.
마음을 다스린 사람은 상황이 바뀌어도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교만하지 않고, 괴로운 일이 닥쳐도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은 언제나 고요하고 단단하여, 세속의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이긴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승리란 남을 이기는 승리가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마음속의 욕심, 분노, 어리석음을 제어하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유와 행복을 얻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두 가지 길 위에 서 있습니다.
한쪽은 욕심과 집착으로 향하고, 다른 한쪽은 자비와 평화로 향합니다.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길은 언제나 두 번째 길, 자비와 지혜의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숫타니파타에는 “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불길 속에서도 타지 않고, 분노 속에서도 미소 지으며, 슬픔 속에서도 평화를 찾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다스린 이의 삶의 모습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세상은 끊임없는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탐욕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다툼을 만들며, 다툼은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마음을 바로 보면 욕심은 줄고, 분노는 사라지고, 미움은 이해로 변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근본 수행, 심수행(心修行)입니다.
몸의 행동을 다스리는 것도, 언어를 바르게 하는 것도 결국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청정하면 말도 청정하고, 말이 청정하면 행위도 청정하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수행의 뿌리는 마음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주제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 안에 행복의 샘을 발견합니다.
그는 외부의 풍요보다 내면의 평화를 더 귀하게 여기며,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양심과 진리를 따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언제나 중심을 지켜 나아갑니다.
그 마음이 곧 행복의 근원이며, 해탈의 시작입니다.
법우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숨쉬는 순간순간, 걷고 앉고 말하고 듣는 그 자리에서 수행이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중아함경에서는 “마음을 알고, 마음을 지키며, 마음을 닦는 이는 이미 모든 법을 닦는 이와 같다.”고 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은 거창한 명상이나 긴 정진보다, 일상의 매 순간 마음을 살피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선 첫 번째 수행은 ‘알아차림(念)’입니다.
마음은 늘 변하기 때문에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기쁨이 일어나면 ‘지금 내 마음에 기쁨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리고, 분노가 일어나면 ‘지금 내 마음에 분노가 있구나.’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감정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우리는 감정을 지켜보는 주체가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위빠사나(觀)’수행의 시작입니다.
알아차림은 마음을 바꾸는 첫 번째 열쇠이며, 모든 수행의 기초입니다.
두 번째 수행은 ‘멈춤(止)’입니다.
유마경에는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곧 열반의 문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이란 늘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려 합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놓칩니다.
그러나 불자는 순간순간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내 마음의 방향을 살피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을 다스리는 시작입니다.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행동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번뇌의 흐름을 멈추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지고, 세상은 달라 보입니다.
세 번째 수행은 ‘놓아버림(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붙잡는 자는 괴로움을 얻고, 놓는 자는 자유를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대부분 놓지 못함에서 비롯됩니다.
사람, 물건, 감정, 생각을 붙잡고 있으니 마음이 무겁고, 자유를 잃습니다.
놓는다는 것은 버림이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고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지혜입니다.
꽃이 피고 지듯, 인연이 오고 가듯,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 무상(無常)의 이치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이처럼 집착을 놓고, 변화 속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네 번째 수행은 ‘감사(感恩)’입니다.
감사는 마음을 밝히는 가장 쉬운 수행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는 원망이 머물지 못합니다.
불자는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의 공기, 한 끼의 음식, 이웃의 미소, 도반의 인연 모두가 감사의 이유입니다. 증일아함경에서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복을 부르고, 불평하는 마음이 괴로움을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감사는 마음의 방향을 밖이 아닌 안으로 돌려주며, 우리를 다시 부처님께로 이끌어 줍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이미 마음을 다스린 사람입니다.
다섯 번째 수행은 ‘자비(慈悲)’입니다.
자비는 마음을 정화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으로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선행을 권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의 정화를 위한 근본 가르침입니다.
미움이 있는 마음에는 평화가 자리할 수 없고, 원망이 있는 마음에는 행복이 머물지 않습니다.
자비는 상대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바꾸기 위한 수행입니다.
타인을 용서할 때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남을 이해할 때 내 마음이 밝아집니다.
그래서 자비는 마음을 다스리는 최고의 수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봄의 꽃이 한순간에 피지 않듯이, 마음의 평화도 꾸준한 정진 속에서 피어납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잠시 멈추고, 알아차리고, 다시 중심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자의 삶이며, 불자의 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셨습니다.
그처럼 작은 실천이 쌓이고 쌓이면, 마음의 바위도 결국 무너지고 지혜의 샘이 솟습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현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속에서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부드럽게 다스리는 것이 곧 불자의 수행입니다.
누군가의 말이 거슬릴 때, 즉시 반응하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르는 것, 누군가의 실수에 분노가 치밀 때, 이해하려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 작은 순간들이 바로 마음공부의 도량이 됩니다.
법구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을 제어한 이는 잘 길들인 말과 같아 어떤 길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
말을 길들이면 나그네의 길이 편하듯, 마음을 다스리면 인생의 길이 평화롭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 애쓰지만, 사실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할 것은 바로 자기 마음입니다. 마음을 바로 세우면 말이 부드러워지고, 말이 바르면 행동이 선해집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이 바르게 되면, 가정이 화목하고 세상이 따뜻해집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다섯 가지 수행, 알아차림, 멈춤, 놓아버림, 감사, 자비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마음의 훈련법이자,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하고도 깊은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은 마음을 단련하는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을 원망하지 말라, 세상은 단지 네 마음을 비춰줄 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괴롭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세상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돌이켜보라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경책입니다.
마음을 다스린 사람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는 비난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의 중심에는 부처님의 지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구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다스린 이는 정복자보다 위대하다.”고 하셨습니다. 외적의 군대를 무찌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전쟁이 바로 마음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 일어나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하고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번뇌를 이겨낸 수행자입니다.
현실의 삶 속에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일입니다.
누가 나를 비난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누가 나를 칭찬해도 교만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곧 마음의 주인이 된 삶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바람이 그루터기를 흔들지 못하듯, 지혜로운 이는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마음을 다스린 사람은 외부의 소리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내면의 진리와 양심에 귀 기울입니다.
그는 세상의 불안 속에서도 평화를, 혼란 속에서도 고요를 지켜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수행을 하는 이유는 결국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함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가장 먼저 설하신 가르침도 마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분은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며, 괴로움을 없애는 길은 무엇인가?”를 설하시며,
그 해답을 오직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서 찾으셨습니다.
탐욕이 괴로움을 낳고, 집착이 고통을 낳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는 고요와 행복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괴로움의 뿌리를 뽑는 수행이며, 그 마음의 평화가 바로 열반의 문입니다.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을 제어한 이는 물결 위의 섬과 같아서, 고통이 닿을 수 없다.”
이 말씀은 마음을 다스린 사람에게는 외부의 고통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고통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고통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을 다스린 사람은 고통과 함께 살아가되, 그 속에서 평화를 잃지 않습니다.
그는 슬픔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알고, 어려움 속에서도 배움을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마음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이 자유를 얻으려면 먼저 마음의 방향을 부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삼귀의의 서원은 언제나 마음공부의 출발점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외부의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의 부처님을 깨우는 일입니다. 그 마음이 깨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어둠에 갇히지 않습니다.
법(法)에 귀의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며,
승(僧)에 귀의한다는 것은 함께 수행하며 마음을 닦는 도반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삼귀의의 서원을 일상 속에서 살아내는 일과 같습니다.
마음을 다스린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그는 같은 일을 겪어도 감사로 받아들이고, 같은 말을 들어도 이해로 듣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분노 대신 자비가, 원망 대신 지혜가 피어납니다.
그는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고, 자신의 허물을 바로 봅니다.
이런 사람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머물고, 그 주변에는 평화가 깃듭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부처님의 향기가 번지고, 그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줍니다. 그가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행복한 사람입니다.
법우 여러분,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돈이 많아서도, 지위가 높아서도 아닙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그 순간, 이미 행복은 내 안에 있습니다.
마음이 평화롭다면 아무리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고, 마음이 불안하다면 아무리 큰 부귀도 헛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청정하면 복락은 그를 따르고, 마음이 흐리면 고통은 그림자처럼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행복은 마음에서 피어나고, 불행도 마음에서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마음을 맑히고 다스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다짐합시다.
매일의 삶 속에서 내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고, 비워나가기를...
그리하여 탐욕 대신 감사로, 분노 대신 자비로, 어리석음 대신 지혜로 채워가기를...
그 마음이 모여 불심사를 밝히고, 그 자비가 모여 이 세상을 따뜻하게 할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유롭고, 그 자유 속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행복을 얻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부처님의 지혜의 등불이 켜지고, 그 빛이 하루의 고요와 평화를 밝혀주기를 발원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짜 행복하다.”이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오늘 하루도 부처님 법 안에서 평화롭고 감사한 걸음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법문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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