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12월 19일(금) 아침방송법문 :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眞虛性宗 2025-12-19 08:32:48, 조회 : 514, 추천 : 0
불기 2569년 12월 19일(금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이 아침을 열고 있습니다. 배려라는 말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기 쉬운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배려를 예의나 성격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부처님 가르침 안에서 배려는 분명한 수행이며, 마음을 닦는 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배려는 바로 그 마음을 바로 세우는 가장 현실적인 수행입니다. 왜냐하면 배려는 늘 사람 사이에서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시험받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누구나 너그러울 수 있지만, 사람이 개입되는 순간 마음은 흔들립니다.

법구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앞서고 마음이 모든 법을 이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 행동 하나는 모두 이미 마음에서 출발한 결과입니다. 마음이 거칠면 말도 거칠어지고, 마음이 부드러우면 말도 부드러워집니다. 배려란 바로 이 마음의 결을 부드럽게 만드는 수행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보다 먼저, 그 말이 상대의 마음을 살리는가, 아니면 더 무겁게 만드는가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배려가 담기면 약이 되고, 배려가 빠지면 상처가 됩니다. 수행자는 이 차이를 늘 살핍니다.

일상 속에서 배려가 사라지는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대개는 마음이 급할 때, 몸이 지칠 때, 내 사정이 먼저 떠오를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상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내 말만 빨리 끝내고 싶어집니다. 바로 이 지점이 수행의 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이 일어나는 그 자리가 수행의 출발점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람을 대하실 때 가장 먼저 보신 것은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마음이었습니다. 분노 뒤에는 두려움이 있고, 거친 말 뒤에는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배려란 바로 이 마음을 보는 눈을 기르는 일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사람을 만납니다. 가족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낯선 사람과도 스치듯 인연을 맺습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선택을 합니다. 이해할 것인가, 판단할 것인가. 기다려 줄 것인가, 밀어붙일 것인가. 이 선택의 순간마다 수행의 길과 업의 길은 갈라집니다.

배려는 나를 낮추는 일이 아닙니다. 배려는 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배려하지 못한 말은 반드시 마음에 후회로 남고, 배려한 말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이것이 배려가 곧 나를 위한 수행인 이유입니다.

오늘 이 아침, 법우 여러분께서는 하루를 시작하시며 이렇게 발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는 사람을 이기려 하지 않고,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겠습니다.” 이 발원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이미 수행의 날이 됩니다.

배려는 거창한 계획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말하기 전 한 번 멈추는 것, 판단하기 전 한 번 숨을 고르는 것, 상대의 하루를 한 번 떠올리는 것, 이 작은 실천 하나가 수행이 되고 공덕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배려는 머리로 이해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익혀 가는 수행입니다. 그래서 배려는 늘 쉽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상황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말이 앞서고 감정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 다시 수행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넘어지지 않는 수행자가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수행자를 귀하게 보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지금 이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분노에서 나왔는지, 두려움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왔는지를 살피라는 가르침입니다. 배려는 말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오는 마음의 뿌리를 살피는 수행입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상처의 대부분은 상대의 말 그 자체보다 그 말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에서 커집니다. 배려는 이때 상대에게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도 동시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먼저 다독이지 않으면, 아무리 옳은 말도 배려가 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내는 마음은 불과 같아 먼저 자신을 태운다.”고 하셨습니다. 배려 없는 말은 결국 상대보다 나 자신을 더 지치게 합니다. 한 번 던진 말은 되돌릴 수 없고,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되풀이됩니다. 반면 배려가 담긴 말은 말한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합니다. 이것이 배려가 곧 자기 수행인 이유입니다.

가정 안에서의 배려를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가족에게 건네는 첫마디, 그 말 속에 배려가 담겨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라는 말과 “오늘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말은 전혀 다른 하루를 만듭니다. 배려는 상황을 바꾸지 않아도, 마음의 방향을 바꿉니다.

배려는 늘 크고 대단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드러납니다. 상대가 말을 더 하지 못할 때 기다려 주는 것,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는 것, 굳이 따지지 않고 넘어가 주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자의 배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에게 “이겨야 할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성급함과 분별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배려는 바로 이 성급함을 내려놓는 연습이며, 분별심을 잠시 멈추는 지혜입니다. 이 연습이 쌓일수록 마음은 점점 넓어지고, 관계는 자연스럽게 깊어집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말에 즉시 반응하지 말고 한 호흡 늦추어 보십시오. 그 한 호흡 속에 배려가 들어설 자리가 생깁니다. 그 자리에 부처님 가르침이 머물게 됩니다.
지금부터는 배려가 어떻게 업을 바꾸고 인연을 전환시키는지, 그리고 왜 배려가 가장 큰 공덕이 되는지를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법우 여러분, 앞선 법문에서 우리는 배려가 예의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수행의 문제임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시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배려가 어떻게 우리의 업을 바꾸고 인연의 흐름을 전환시키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자비와 배려를 그토록 강조하신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사람 사이를 좋게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마음으로 지은 업이 세상을 이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없이 짓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바로 업이 되고, 그 업이 쌓여 삶의 모습이 됩니다. 배려 없는 말 한마디, 성급한 판단 하나, 상대를 밀어내는 태도 하나가 모두 업이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반대로 배려가 담긴 말과 행동은 인연을 부드럽게 하고, 삶의 결을 바꾸는 선업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업이라고 하면 아주 큰 죄업이나 공덕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업의 대부분이 일상의 사소한 선택에서 만들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는지, 어떤 말투로 응답했는지, 그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배려는 바로 이 일상의 업을 정화하는 가장 현실적인 수행입니다.

배려가 부족해지는 순간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대부분은 내 마음이 먼저 다칠 때입니다. 기대가 어긋났을 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억울함이 쌓였을 때 우리는 쉽게 배려를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이 생기는 그 순간이 바로 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욕바라밀은 단순히 참는 수행이 아닙니다. 인욕이란 상황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살피는 지혜입니다. 배려는 인욕바라밀의 가장 생활적인 모습입니다. 즉시 반응하지 않고, 한 번 더 상대의 처지를 떠올리는 그 짧은 멈춤 속에서 업은 달라집니다.

가정에서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가장 많은 인연을 맺고 사는 가족 사이에서 배려가 사라질 때, 갈등은 깊어집니다. “왜 그것도 이해 못 하느냐”라는 말은 업을 쌓는 말이고,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말은 업을 풀어내는 말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정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들에게 특히 말의 업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은 가장 쉽게 짓는 업이면서도 가장 빠르게 인연을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려 없는 말은 화살처럼 상대의 마음을 찌르지만, 배려가 담긴 말은 연꽃처럼 마음 위에 머뭅니다. 이 차이를 아는 것이 바로 수행자의 눈입니다.

사회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과 이웃, 크고 작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내 말이 옳음을 증명할 것인가, 아니면 관계를 살릴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늘 관계를 살리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옳음을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옳음을 내려놓을 줄 아는 지혜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배려는 결코 약함이 아닙니다. 배려는 마음의 힘이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강함입니다. 즉각 반응하지 않고 마음을 지켜보는 사람은 이미 수행자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이 힘이 쌓일수록 삶은 점점 단단해지고, 인연은 점점 부드러워집니다.

법우 여러분, 앞에서 우리는 배려가 업을 바꾸고 인연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힘이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그 배려가 결국 누구를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왜 부처님께서 배려와 자비를 수행의 핵심으로 삼으셨는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배려는 상대를 위한 듯 보이지만,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성냄으로 성냄을 이길 수 없고, 오직 자비로써만 성냄을 멈출 수 있다0”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배려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 줍니다. 성냄과 다툼은 언제나 또 다른 성냄을 불러옵니다. 그러나 배려와 자비는 그 흐름을 끊어 버립니다. 배려는 상황을 이기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악순환을 멈추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부드러워지면 나도 배려할 수 있고, 상대가 이해해 주면 나도 마음을 열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은 늘 그 반대입니다. “네 마음을 먼저 살피라.” 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환경이 바뀌어도 괴로움은 반복된다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보셨습니다.

배려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내 마음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점입니다. 즉각 반응하던 습관이 줄어들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여유가 생깁니다. 이 여유가 바로 수행의 열매입니다. 마음이 느려질수록 분별은 약해지고, 분별이 약해질수록 괴로움도 함께 줄어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이기는 것이 천 명을 이기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배려는 바로 이 ‘자신을 이기는 수행’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말 한마디를 삼키는 것, 표정을 바꾸는 것, 판단을 미루는 것, 이 모든 작은 실천들이 모여 내 안의 성급함과 교만함을 다스립니다.

배려는 또한 나의 언어를 변화시킵니다. 같은 뜻이라도 표현이 달라지고, 같은 상황에서도 말의 결이 달라집니다. 배려가 깃든 말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말한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합니다. 말은 소리로 사라지지만, 그 여운은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의 업을 그토록 강조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에서 배려를 실천해 보십시오. 갈등의 원인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갈등의 온도는 분명히 달라집니다. 문제는 그대로인데 마음이 부드러워지면, 해결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배려는 문제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마음의 태도를 바꾸는 수행입니다.

사회 속에서도 배려는 나를 보호하는 힘이 됩니다. 날카로운 말과 행동이 오가는 자리에서 배려를 선택하는 사람은 쉽게 소모되지 않습니다. 분노에 휘말리지 않고, 비교에 빠지지 않으며, 불필요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물러섬이 바로 지혜이며, 수행자의 거리입니다.

법우 여러분, 배려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수행이 아닙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돌아서면 후회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배려하지 못한 순간이 있다면,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이미 수행은 진행 중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이 아침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배려가 예의나 성격의 문제처럼 보였지만, 차분히 살펴보니 배려는 부처님께서 반복해서 강조하신 수행의 핵심이며, 자비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려는 말과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사람을 만나고, 그만큼 많은 갈등과 오해를 경험합니다. 그때마다 마음은 늘 같은 갈림길에 섭니다. 나를 앞세울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상대를 헤아릴 것인가. 이 선택의 순간마다 업은 새로 지어지고, 인연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배려란 이 갈림길에서 조금 더 깨어 있는 선택을 하는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는 모든 수행의 뿌리”라고 하셨습니다. 자비는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실천되는 마음입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성급히 판단하지 않는 것, 굳이 이길 필요 없는 말은 내려놓는 것, 이 모든 작은 선택이 자비이며 배려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삶 전체를 바꾸는 큰 공덕이 됩니다.

오늘이 을사년 동지기도 입재일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상징을 전해 줍니다. 동지는 어둠이 가장 깊은 날이지만, 동시에 다시 빛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운함과 분노, 피로와 상처로 마음이 어두워질 때, 가장 먼저 켜야 할 빛이 바로 배려의 마음입니다. 이 빛이 켜질 때, 마음의 방향은 다시 따뜻한 쪽으로 돌아섭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둠을 탓하기보다 등불 하나를 켜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배려는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 하나는 분명히 바꿉니다. 그리고 바뀐 내 마음은 반드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 주변을 밝힙니다. 이것이 배려가 수행이 되는 이유이며, 자비가 공덕이 되는 까닭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말하기 전 한 번 멈추고, 판단하기 전 한 번 숨을 고르며, 상대의 하루를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이 짧은 멈춤 속에 부처님 가르침이 머물 자리가 생깁니다. 그 자리가 바로 수행의 자리이며, 기도가 살아 숨 쉬는 자리입니다.

동지기도를 입재하며 올리는 모든 발원 위에, 오늘 들은 이 배려의 마음을 함께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 앞에서, 상처 주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덜 무겁게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 발원 하나만으로도 기도는 이미 깊은 공덕이 됩니다.

이제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배려의 마음 하나로 시작한 삶이 곧 수행이며, 그 삶 자체가 부처님께 올리는 가장 좋은 공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대덕심 [2025-12-19] : 감사합니다._()_


  이전글 12월 20일(토) 아침방송법문 : “나누는 삶... 眞虛性宗 2025-12-20
  다음글 12월 18일(목) 아침방송법문 : “인연은 지... 眞虛性宗 2025-12-18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