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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0일(토) 아침방송법문 : “나누는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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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0 08:26:41, 조회 : 50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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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9년 12월 20일(토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나누는 삶”
법우 여러분, 우리는 흔히 나눔을 여유 있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남을 때, 돈이 있을 때, 마음이 편할 때 하는 것이 나눔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 나눔은 조건이 아닙니다.
나눔은 수행이며, 삶을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법구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베풂은 마음을 맑히고 집착은 마음을 흐리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눔이 상대를 위한 행위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위한 수행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람은 움켜쥘수록 불안해지고, 나눌수록 마음이 놓입니다.
이것이 나눔의 역설입니다.
손을 펴면 잃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마음은 자유로워집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쥐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서운함을 쥐고, 억울함을 쥐고, 상처를 쥔 채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놓을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주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눔은 바로 이 놓음의 연습입니다.
나누는 삶은 내 것을 없애는 삶이 아니라, 내 마음을 넓히는 삶입니다.
그래서 나눔은 언제나 수행의 중심에 놓입니다.
이제 이 나눔의 삶이 어떻게 우리의 업을 바꾸고, 기도를 완성하며, 동지의 어둠 속에서 빛이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법우 여러분, 나누는 삶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꾸 무엇을 얼마나 내놓아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얼마를 보시해야 하는지, 시간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 내가 가진 것이 충분한지부터 따집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나눔은 계산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나눔은 마음의 방향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나만을 향해 움켜쥐고 있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바깥을 향해 열려 있는지가 나눔의 출발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아함경서 “보시는 재물보다 마음이 앞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눔의 본질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같은 보시라도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공덕이 얕고, 비록 적은 나눔이라도 마음이 담기면 공덕은 깊습니다. 나누는 삶이란 결국 무엇을 주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주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힘들어서 남을 도와줄 여유가 없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힘들 때일수록 나눔을 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나눔은 에너지를 빼앗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지친 마음은 움켜쥘수록 더 지치고, 나눌수록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나눔은 반드시 물질일 필요가 없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시간, 판단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 침묵도 모두 나눔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병든 이를 찾아가 손을 잡아 주시고, 외로운 이를 위해 자리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 나눔은 재물이 아니라 마음이었고, 그 마음이 중생을 살렸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눔을 큰일로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작은 나눔 하나가 업의 방향을 바꾼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내가 건넨 친절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살리고, 그 사람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친절을 건네며 선한 인연은 이어집니다. 이것이 나눔이 가진 힘이며, 수행이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방식입니다.
동짓달 초하루에 우리가 나누는 삶을 다시 살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동지는 어둠이 깊은 때이지만, 동시에 빛이 다시 태어나는 때입니다. 움켜쥔 손을 펴는 순간, 어둠은 물러가고 마음에는 빛이 들어옵니다. 나눔은 이 빛을 맞이하는 가장 분명한 태도입니다.
특히 내일 봉행되는 을사년 동지기도 회향법회는 그동안의 기도를 마무리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다시 삶으로 돌아가는 출발점입니다. 기도의 끝은 언제나 삶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 삶의 모습은 나눔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기도만 하고 나눔이 없다면 기도는 메아리에 머물고, 나눔으로 이어질 때 기도는 공덕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오늘 나누는 삶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것은 무언가를 더 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꽉 쥐고 살아온 마음을 조금 풀어도 괜찮다는 허락입니다. 이 허락이 있을 때 삶은 숨을 쉬고, 수행은 부담이 아니라 길이 됩니다.
나누는 삶은 특별한 사람이 사는 삶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나눔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되고, 희생이 아니라 감사가 됩니다. 이 마음이 자리 잡을 때 우리의 신행은 한결 가벼워지고, 일상은 수행의 도량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나누는 삶은 결코 특별한 사람만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할 불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부처님께서 재가와 출가를 가리지 않고 나눔을 강조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수행이란 세상과 등을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보시하는 이는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눔이 상대를 돕는 행위이기 이전에, 나 자신의 불안을 덜어내는 수행임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잃을까 봐 두려워 움켜쥐고, 부족해질까 봐 더 쌓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움켜쥠이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듭니다. 나눌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그 순간 집착이 느슨해지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며 우리는 수없이 비교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잘 사는지, 나는 왜 이렇게 버거운지, 남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눔은 이 비교의 고리를 끊어 줍니다. 나누는 순간, 마음은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가?’에서 ‘내가 무엇을 건넬 수 있는가’로 방향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이 전환이 삶을 가볍게 합니다.
나눔은 또한 공동체를 살리는 힘입니다. 한 사람이 나누기 시작하면, 그 마음은 반드시 주변으로 번져 나갑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꾸고, 작은 배려 하나가 공동체의 숨결을 바꿉니다. 부처님께서 승가 공동체를 세우실 때 가장 먼저 강조하신 덕목이 화합과 보시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하나 나눈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한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말씀하십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어둠을 밀어내듯, 한 사람의 나눔이 주변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나눔이 수행이 되는 이유입니다.
법우 여러분, 동짓달 초하루라는 오늘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동지는 해가 가장 짧은 날이지만, 동시에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나눔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 큰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나눔의 씨앗은 이미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특히 내일 봉행되는 을사년 동지기도 회향법회는, 기도를 마무리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삶으로 돌아가는 자리입니다. 그동안 올린 발원과 정성은 이제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이어짐의 모습이 바로 나누는 삶입니다. 기도가 삶이 될 때, 수행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이 아침을 계기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무엇을 더 가져야 행복해질까”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나눌 때 마음이 편안해질까”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삶의 방향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나누는 삶은 나를 비우는 삶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채우는 삶입니다. 움켜쥔 손을 펼 때 비로소 손은 제 역할을 하듯이, 마음도 나눌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합니다. 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오늘 하루는 이미 수행의 날이며 공덕의 날입니다.
법우 여러분, 앞선 말씀에서 우리는 나누는 삶이 특별한 희생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수행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시간에는 나눔이 우리의 업을 어떻게 바꾸고, 인연을 어떻게 살리며, 왜 부처님께서 나눔을 모든 수행의 근간으로 두셨는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나눔은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차원을 넘어, 삶의 흐름 자체를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증일아함경에서 “보시하는 이는 복을 심고, 그 복은 반드시 되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보시가 거래라는 뜻이 아니라, 삶의 인과를 밝히는 가르침입니다. 나눔은 그 순간에 끝나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씨앗이 되어 시간이 지나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는 때로는 물질로, 때로는 인연으로, 때로는 마음의 평안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흔히 나눔의 결과를 너무 빨리 확인하려 합니다. 내가 이렇게 도왔는데 왜 달라지는 것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 업의 성숙은 늘 시간이 필요합니다. 씨앗을 심고 바로 열매를 기대하지 않듯이, 나눔도 조용히 쌓이며 삶의 밑바탕을 바꿉니다. 이 과정을 믿지 못하면 나눔은 금세 지치고 맙니다.
나눔이 어려워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비교심입니다. 나는 이것밖에 못 하는데, 저 사람은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움츠러듭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나눔의 크기를 비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진심이며,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입니다. 작은 나눔 하나라도 진심이 담기면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가르치신 보시의 핵심은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억지로 하는 나눔은 공덕이 얕고, 기쁜 마음으로 하는 나눔은 공덕이 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나눔을 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닦으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나눔은 오히려 집착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 안에서의 나눔을 떠올려 보십시오. 재물을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고, 힘든 마음을 나누고, 침묵 속에서도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나눔입니다. 이런 나눔이 있을 때 가정은 쉼의 공간이 되고, 수행의 도량이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눔은 관계를 단단히 묶는 힘입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나누고, 역할을 나누고, 책임을 나눌 때 공동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승가를 세우실 때 가장 먼저 강조하신 것이 보시와 화합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눔 없는 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법우 여러분, 나눔은 나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나를 넓히는 일입니다. 나눌수록 마음은 넓어지고, 넓어진 마음은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나눔의 역설이며, 부처님 가르침의 깊이입니다. 이 깊이를 이해할 때 나눔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나누는 삶이 우리 삶을 치유하는 이유는 나눔이 마음의 중심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의 대부분은 내 마음이 나에게만 붙들려 있을 때 커집니다. 내 상처, 내 억울함, 내 부족함에만 시선이 머물면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숨이 막히게 됩니다. 그러나 나눔은 이 시선을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돌려줍니다. 다른 이의 삶을 바라보고, 다른 이의 아픔을 헤아리는 순간, 내 마음은 잠시라도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숨을 돌리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자비와 보시를 치유의 길로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자비로 마음을 적시면 원한은 머물 곳을 잃는다.”고 하셨습니다. 나눔은 이 자비를 가장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원망과 분노는 마음을 계속 과거에 붙잡아 두지만, 나눔은 마음을 지금 이 자리로 데려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친절 하나, 지금 내가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집중할 때, 마음은 과거의 상처에서 조금씩 풀려납니다.
우리는 흔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찾습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혼자만의 치유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은 관계 속에서 다치고, 관계 속에서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나눔은 이 회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시간을 내어 주고, 작은 도움을 건네는 그 순간, 관계의 온기는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나눔은 또한 말의 습관을 바꿉니다. 움켜쥔 마음에서는 말이 거칠어지기 쉽고, 나누는 마음에서는 말이 부드러워집니다. 부처님께서 정어를 강조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누는 삶을 사는 사람의 말에는 상대를 밀어내는 힘이 아니라, 머물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지탱합니다.
특히 신행 생활 속에서 나눔은 수행의 깊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됩니다. 기도를 오래 한다고 해서 수행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며, 경전을 많이 외운다고 해서 자비가 저절로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와 공부가 삶으로 이어질 때, 그 모습이 나눔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수행은 살아 움직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늘 “아는 만큼이 아니라 행한 만큼이 수행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동지기도를 회향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기도가 나를 얼마나 나누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는지, 나의 말과 태도가 이전보다 얼마나 부드러워졌는지, 이 질문 앞에서 정직해질 때 기도는 헛되지 않습니다. 나눔은 기도의 성적표가 아니라, 기도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법우 여러분, 나누는 삶은 내 삶을 비워내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누는 삶은 내 삶을 다시 채워 주는 삶입니다. 나눔을 통해 우리는 사람을 얻고, 신뢰를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복이며, 오직 수행으로만 얻을 수 있는 공덕입니다.
법우 여러분, 나누는 삶이 인연을 살린다는 말은 결코 추상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오며 돌아보면, 진정으로 기억에 남는 인연은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준 사람이 아니라, 나의 삶에 따뜻함을 나누어 준 사람입니다. 그 따뜻함은 때로는 말 한마디였고, 때로는 묵묵히 곁에 있어 준 시간이었으며, 때로는 힘든 순간에 건네진 작은 손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눔이었고, 그 나눔이 인연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연을 “함께 지은 업의 만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인연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나누는 말, 나누는 마음, 나누는 행동이 쌓여야 비로소 선한 인연으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나눔이 사라지면, 인연은 점점 메말라 가고 관계는 형식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관계 속에서 늘 나눔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나눔은 공동체의 숨결을 살립니다. 한 사람이 자기 몫만 챙기기 시작하면 공동체는 곧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먼저 한 발 물러서고,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나누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는 다시 숨을 쉽니다. 부처님께서 승가의 화합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화합은 말로 이루어지지 않고, 나눔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불심사 도량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도량이 여기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힘은 누군가의 묵묵한 나눔 덕분이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시간을 나눈 분들, 정성을 나눈 분들, 마음을 나눈 분들이 있었기에 이 인연의 법석이 이어져 왔습니다. 나누는 삶은 개인의 수행일 뿐 아니라, 도량을 살리는 원력이기도 합니다.
동지기도를 회향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기도는 끝났지만 수행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기도의 열매가 일상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 답은 바로 나눔 속에 있습니다. 기도 후에도 여전히 각박하다면, 기도는 마음에 닿지 못한 것입니다. 기도 후에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그 기도는 이미 공덕이 되었습니다.
법우 여러분, 나눔은 완벽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그래도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을 “완전함”이 아니라 “지속됨”으로 보셨습니다. 나누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꾸준히 이어질 때, 삶은 서서히 바뀝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나누는 삶”이라는 주제로 이 아침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나눔은 여유가 있을 때만 하는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불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임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누는 삶은 나를 줄이는 삶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살리는 삶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는 모든 공덕의 문을 연다.”고 하셨습니다. 그 문은 밖으로 향한 문이기 이전에, 내 마음 안에 닫혀 있던 문입니다. 나눌 때 그 문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며, 삶은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이 숨결 속에서 우리는 다시 사람을 믿고, 인연을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오늘이 음력 동짓달 초하루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 소중해지고, 마음이 힘들수록 나눔은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내일 봉행되는 을사년 동지기도 회향법회 또한, 기도를 마무리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눔의 삶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이렇게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를 한 번 더 떠올려 보십시오. 따뜻한 말 하나, 기다림 하나, 이해하려는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 작은 나눔이 오늘 하루를 수행의 날로 바꾸어 줄 것입니다.
나누는 삶은 부처님 가르침을 가장 아름답게 실천하는 길이며, 우리 불자들이 세상 속에서 부처님의 얼굴이 되는 길입니다. 이 마음을 가슴에 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셔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발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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