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게시판
|
|
|
|
![]()
| 12월 26일(금) 아침방송법문 : “사랑은 나눌수록 깊어집니다.” |
|
|
2025-12-26 07:51:49, 조회 : 497, 추천 : 0 |
|
|
|
불기 2569년 12월 26일(금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사랑은 나눌수록 깊어집니다.”
법우 여러분, 성탄절 다음 날인 오늘은 참으로 의미 있는 날입니다. 어제는 사랑을 기념하는 날이었고, 오늘은 사랑을 살아내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기념은 하루로 끝나지만, 실천은 하루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말로 하는 선(善)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선을 가르치셨습니다.
법구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남을 이기려는 자는 원한을 남기고, 자신을 이기는 자는 평화를 얻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을 나누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는 바깥의 조건이 아니라, 내 안의 계산과 분별입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 먼저 주기 싫어하는 마음, 상처받을까 두려워 닫아버린 마음이 사랑을 막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자비는 조건이 없습니다. 자비는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느냐에 따라 생기는 마음이 아니라, 괴로움을 보는 순간 자연히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성탄절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귀하기 때문에 사랑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 봅시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마음을 닫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원래 그래’, ‘말해 봐야 소용없어’라는 생각은 사랑을 멈추게 하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마음을 무명(無明)이라 하셨습니다. 알지 못함이 아니라, 알면서도 외면하는 상태입니다.
사랑은 크지 않아도 됩니다. 거창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생각의 선한 마음이 천 가지 공덕을 낳는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따뜻한 말 한마디, 양보 한 번, 침묵으로 참아내는 인내 하나가 이미 깊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을 나누면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깊어집니다. 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고, 등불은 나눌수록 밝아집니다. 자비도 그렇습니다. 나누지 않을 때 마음은 굳어가고, 나눌 때 마음은 살아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비의 이치입니다.
법우 여러분, 사랑과 자비는 마음속에서만 머물 때는 감정이지만, 삶 속으로 내려오면 수행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을 특별한 자리에만 두지 않으셨습니다. 산중 선방이나 법당 안에만 수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밥을 짓는 손길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마음자리에 수행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성탄절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동안 촛불을 밝히고 노래를 부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그 다음 날인 오늘은 그 마음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은 익히지 않으면 거칠어지고, 익히면 부드러워진다.”고 하셨습니다. 사랑과 자비는 타고나는 성품이기도 하지만, 반복해서 길러야 하는 수행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은 있지만 여유가 없다.”, “형편이 되면 돕겠다.”, “나부터 살고 봐야지.”.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조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자비는 진짜 자비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자비는 여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선택하는 마음입니다. 넉넉해서 주는 것은 나눔이지만, 부족함 속에서 내미는 손길은 수행입니다.
잡아함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비록 한 숟가락의 음식일지라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베풀면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다.” 사랑의 크기는 물질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에서 결정됩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불필요한 말을 삼키는 것, 상대의 처지를 한 번 더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깊은 자비의 실천입니다.
특히 연말이 되면 사람의 마음은 쉽게 날카로워집니다. 한 해 동안 쌓인 피로와 서운함,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이 말과 표정으로 드러나기 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것이 바로 하심(下心)입니다. 마음을 낮추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스스로를 살리는 길임을 부처님은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기준입니다. ‘이 정도는 해야 고마워하지’, ‘이 사람은 그럴 자격이 없어’라는 생각이 자비를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자격으로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심지어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부처님은 같은 눈길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자비의 깊이입니다.
법우 여러분의 일상 속으로 다시 돌아와 보십시오.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도량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랑을 계산하고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계산하는 마음은 번뇌를 낳고, 내어주는 마음은 자유를 낳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손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마음을 가장 가볍게 만드는 선택입니다.
성탄의 여운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을 살고 있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기억에 머무는 가르침은 지식이지만,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지혜가 됩니다. 자비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볼 때, 특별한 일을 하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다만 한 순간이라도 ‘내가 조금 더 따뜻했는가?’를 돌아보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의 완성을 먼 미래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마음자리에 두셨습니다.
사랑은 한 번 크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깊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물이 돌을 뚫듯이, 자비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오늘 성탄절의 여운 위에 자비의 한 걸음을 더 얹는다면, 이 하루는 그냥 지나가는 하루가 아니라 수행의 하루가 됩니다.
법우 여러분, 사랑과 자비는 우리의 인생을 단번에 바꾸는 기적이 아니라,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방향을 바꾸는 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삶의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진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면, 같은 삶이라도 전혀 다른 길이 열린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과 자비를 실천할 때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원망하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비교하던 마음이 잦아들며, 늘 부족하다고 느끼던 삶이 조금씩 감사로 바뀝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마음의 해탈’이라 하셨습니다. 조건이 달라지지 않아도 마음이 풀리면 이미 자유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법구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미움은 미움으로써 사라지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써 사라진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상적인 도덕이 아니라, 삶의 법칙입니다.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낳고, 상처는 더 깊은 상처를 부릅니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마음을 낮추고 손을 내밀 때, 그 고리는 비로소 끊어집니다. 자비는 약함이 아니라, 고리를 끊는 용기입니다.
연말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해를 돌아봅니다. 잘한 일과 못한 일,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마음속에서 교차합니다.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결과로 자신을 재단하지 말고, 마음의 방향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얼마나 따뜻했는가를 묻는 것이 수행자의 회향입니다.
법우 여러분, 혹시 지난 한 해 동안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미처 풀지 못한 오해, 꺼내지 못한 말, 혼자만 간직한 서운함이 있다면, 오늘 이 법문을 인연으로 삼아 보십시오. 자비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놓아주기 위한 길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는 상대의 잘못을 지워주는 행위가 아니라,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선택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등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과 자비는 밖에서 주어지는 빛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밝혀야 할 등불입니다. 성탄절의 촛불이 하루를 밝히고 꺼졌다면, 이제는 우리가 자비의 등불을 밝혀야 할 차례입니다. 그 등불은 크지 않아도 됩니다. 꾸준히 꺼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베푸는 감정이 아니라,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자비는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입니다. 오늘 하루 말 한마디를 줄이고, 판단 하나를 늦추고, 상대의 사정을 한 번 더 헤아리는 것, 이것이 부처님께서 기뻐하신 수행의 모습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끝과 시작을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이 마음이 바로 새로운 출발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미루지 않고, 자비를 조건 없이 선택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이미 새로운 삶은 시작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수행으로 마무리하십시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했는가, 어제보다 조금 덜 날카로웠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한 생각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성탄의 여운이 남아 있는 오늘, 그 사랑을 자비로 바꾸어 가슴에 심으십시오. 그리고 그 자비를 내일의 삶으로 이어가십시오. 사랑은 나눌수록 깊어지고, 자비는 실천할수록 삶을 밝힙니다. 이 길 위에서 법우 여러분 모두가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평안해지기를 부처님 전에 발원 올립니다.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