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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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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7일(토) 아침방송법문 : “생활 속 염불수행”
眞虛性宗 2025-12-27 08:03:14, 조회 : 510, 추천 : 0
불기 2569년 12월 27일(토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생활 속 염불수행”

법우 여러분, 오늘은 약사여래 부처님의 자비와 원력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약사재일이며, 동시에 2025년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주말 토요일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잘한 일도 떠오르고, 아쉬움과 후회도 함께 스쳐 갑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수행이 무엇일까요. 바로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다시 부처님께 돌리는 수행입니다. 그 길 위에 있는 가장 쉽고도 깊은 수행이 바로 염불입니다. 그래서 오늘 방송 법문의 주제는 “생활 속 염불수행‘입니다.


염불이라 하면 많은 분들이 법당에서만, 혹은 일정한 시간과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수행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수행을 결코 일부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마음이 닿는 곳마다 법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수행이 삶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염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염불은 특별한 자리에 앉아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그 자체 속에서 이어질 때 비로소 참된 힘을 갖게 됩니다.  

생활 속 염불수행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루의 틈틈이, 걷는 순간에도, 일을 하면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부처님을 잊지 않고 마음속으로 부처님 명호를 불러보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약사여래불”, 혹은 “관세음보살” 한 마디를 조용히 되뇌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서서히 맑아지고, 번잡한 생각은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염불은 마음을 다스리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합니다. 걱정, 불안, 비교, 후회, 기대와 욕심이 쉼 없이 마음을 오갑니다. 이때 염불은 마음속에 단단한 닻을 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파도가 아무리 거세도 닻이 내려진 배는 쉽게 떠밀려가지 않듯이, 염불은 흔들리는 마음을 한 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법구경에서는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우나, 잘 다스려진 마음은 큰 복을 가져온다.”고 하셨습니다. 염불은 바로 이 마음을 다스리는 실천입니다.  

특히, 약사재일에 염불을 실천하는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병든 몸과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부처님이십니다. 몸의 병뿐 아니라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마음의 병까지도 고쳐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나무약사여래불”을 염할 때, 그 소리는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치유 받고자 하는 나의 간절한 마음’이 됩니다. 염불은 부처님을 부르는 동시에, 나 자신의 마음을 부처님께로 향하게 하는 수행입니다.  

생활 속 염불수행의 첫걸음은 ‘짧게, 자주’입니다. 많은 시간을 내어 한 번에 오래 하려는 마음보다, 하루에 여러 번 짧게라도 염불하는 것이 훨씬 큰 힘을 가집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한 번, 길을 걸으며 한 번, 식사 전후에 한 번, 잠자리에 들기 전 한 번, 이렇게 염불이 생활의 리듬이 될 때 수행은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듭니다. 부처님께서는 “물방울이 모여 바위를 뚫는다.”고 하셨습니다. 염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짧은 염불이 쌓여 어느 순간 마음의 바위를 조금씩 깎아내립니다.  

또한 염불은 혼자만의 수행이면서 동시에 함께하는 수행입니다. 내가 염불할 때, 나만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파장은 주변에도 전해집니다. 부드러운 말씨, 한결 여유로운 표정, 이전보다 덜 흔들리는 태도 속에서 염불의 공덕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이것이 바로 생활 속 염불의 가장 큰 공덕입니다. 말로 설법하지 않아도, 삶 자체가 법문이 되는 것입니다.  

연말이 되면 많은 분들이 새해 발원을 세웁니다. 무엇을 더 이루고, 무엇을 더 가지겠다는 발원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세워야 할 발원은 ‘마음을 잘 지키겠습니다.’라는 발원입니다. 염불은 이 발원을 실천으로 옮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염불을 하는 동안만큼은 욕심도, 원망도 잠시 내려놓게 되기 때문입니다.  

법우 여러분, 염불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잊지 않고 부르십시오. 마음이 힘들 때일수록 염불을 더 가까이 두십시오. 생활 속 염불수행은 우리를 특별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흔들리는 일상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법우 여러분, 사람의 삶은 늘 평탄하지 않습니다. 몸이 아플 때도 있고,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으며, 이유 없이 지치고 허무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기도해도 소용이 없구나.”, “수행을 해도 달라지는 게 없구나.”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염불이 가장 절실해지는 때입니다. 염불은 상황을 즉시 바꾸기 위한 주문이 아니라,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증일아함경에서 “마음이 괴로우면 세상이 괴롭고, 마음이 평안하면 세상도 평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불은 이 마음을 평안으로 이끄는 가장 단순한 길입니다. 염불을 할 때, 우리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나라는 작은 생각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원력과 자비로 향하게 됩니다. 이 방향 전환이 바로 염불의 핵심입니다.  

생활 속 염불수행이 중요한 이유는, 괴로움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당에 앉아 있을 때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더 크게 흔들립니다. 이때 미리 길들여진 염불의 힘이 없다면 우리는 번뇌에 쉽게 끌려가고 맙니다. 그러나 평소에 생활 속에서 염불을 해온 사람은, 마음이 요동치는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부처님 명호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것이 수행이 몸에 배어 있다는 뜻입니다.  

염불은 마음을 비우는 수행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채우는 수행입니다. 번뇌를 밀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염불 소리 하나가 들어오면, 그 자리에 있던 잡생각은 자연스럽게 물러납니다. 마치 방 안에 향을 피우면 오래된 냄새가 사라지듯이, 염불은 마음의 공기를 맑게 바꾸어 줍니다. 관무량수경에서는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염하면 그 마음이 곧 부처님 마음과 응한다.”고 하셨습니다. 염불은 이처럼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과 연결시키는 수행입니다.  

특히 연말이 되면 많은 법우님들께서 마음의 짐을 크게 느끼십니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지나간 일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이럴 때 염불은 한 해를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됩니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가 올라올 때마다 염불을 해보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약사여래불” “나무아미타불”한 마디를 조용히 염하는 순간, 마음은 자연스럽게 ‘이미 지나간 것’에서 ‘지금 여기’로 돌아옵니다. 염불은 시간을 거슬러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바로 서게 합니다.  

또한 염불은 혼자만의 수행을 넘어 관계를 맑히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 그 사람의 얼굴과 말이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며 괴로움을 줍니다. 이때 억지로 잊으려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염불을 해보면 다릅니다. 염불을 하면서 그 사람을 떠올리면, 마음속의 날카로움이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합니다. 용서가 당장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염불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을 조금씩 부드럽게 만들 뿐입니다.  

약사여래 부처님의 원력 가운데에는 “중생의 몸과 마음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서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 병에는 육체의 병뿐 아니라 분노, 미움, 집착, 두려움이라는 마음의 병도 포함됩니다. 염불은 이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가장 온화한 약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강제로 고치지 않으십니다. 염불이라는 이름의 약을 스스로 먹게 하실 뿐입니다.  

생활 속 염불수행을 지속하기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점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염주를 들어야만 염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염주가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수행이 멈출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부처님 명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염불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걸음을 옮기며 한 걸음에 한 염불을 해도 좋고, 숨을 들이쉴 때 부처님을 떠올리고 내쉴 때 감사의 마음을 얹어도 좋습니다. 염불은 자유롭고 유연한 수행입니다.  

염불을 하다 보면 “잡념이 많아서 잘 안 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잡념이 올라오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잡념이 올라왔을 때 다시 염불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그 순간이 바로 수행입니다. 법구경에서 “수행은 넘어지지 않는 데 있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데 있다.”고 하셨듯이, 염불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우 여러분, 염불은 우리 삶을 단번에 바꾸는 기적의 열쇠는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염불은 분명히 우리 삶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바꾸어 갑니다.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판단이 느려지며, 화가 올라오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이것이 염불의 공덕입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깊게 삶을 바꾸는 힘입니다.  

법우 여러분, 지금 이 시간은 2025년 한 해의 끝자락이며, 동시에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직전의 문턱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나는 이 한 해를 어떻게 살아왔는가.”, “다가오는 새해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는가.”이 질문에 대한 가장 부드럽고도 깊은 답이 바로 염불수행입니다.  

염불은 과거를 붙잡지 않고,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지 않게 합니다. 염불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게 합니다. 우리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약사여래불”, “나무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순간, 마음은 지나간 후회에서도, 아직 오지 않은 불안에서도 벗어나 현재로 돌아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지금 여기’의 수행이 바로 염불 속에 담겨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많은 분들이 마음의 결산을 합니다. 잘한 일은 적어 보이고, 못한 일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염불의 눈으로 보면 다릅니다. 잘하고 못한 것을 따지기보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온 자신을 먼저 받아들이게 됩니다. 염불은 평가의 언어가 아니라 자비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꾸짖기보다 늘 품어주셨습니다. 염불은 그 품으로 스스로를 돌아가게 하는 길입니다.  

생활 속 염불수행이 중요한 이유는, 수행이 따로 있고 삶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당에서만 수행하고, 일상에서는 번뇌에 휘둘린다면 그것은 아직 수행이 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염불을 일상 속에 들여놓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상할 때, 화가 치밀 때, 이유 없이 서운할 때, 그 순간에 염불 한 마디를 올릴 수 있다면, 그 자리가 곧 수행의 도량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수행자는 항상 깨어 있으되, 억지로 애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불은 바로 이 가르침에 가장 가까운 수행입니다. 힘을 주어 억지로 하려 하면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숨 쉬듯, 걷듯, 자연스럽게 염불을 생활에 얹어두면 수행은 저절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무리하지 않는 정진입니다.  

특히 새해를 앞두고 세우는 발원에 염불을 더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올해는 건강하겠습니다.”, “올해는 화내지 않겠습니다.”, “올해는 남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발원은 모두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 발원이 오래 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합니다. 염불은 그 실천의 가장 단순한 형태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염불을 하겠다는 작은 서원을 세워보십시오. 그 작은 서원이 일 년을 이끄는 큰 힘이 됩니다.  

또한 염불은 자신만을 위한 수행이 아닙니다. 내가 염불할 때, 그 공덕은 나를 넘어 가족에게, 이웃에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인연들에게까지 미칩니다. 우리가 염불을 하며 올리는 부처님 명호 하나하나는 세상에 올리는 작은 등불과도 같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작은 불빛 하나가 더 소중해지듯, 혼란한 세상일수록 염불의 공덕은 더욱 빛을 냅니다.  

약사여래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병고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몸이 아픈 이의 고통도, 마음이 지친 이의 눈물도 그대로 받아 안으십니다. 우리가 약사여래불을 염하는 것은 “저를 고쳐주십시오”라는 요구이기 전에, “저를 부처님 손에 맡기겠습니다.”라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이 신뢰가 쌓일수록 마음은 점점 단단해지고, 삶은 조금씩 안정됩니다.  

염불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말 달라질까.” 그러나 수행은 결과를 재촉할수록 멀어집니다. 염불은 씨앗과 같습니다. 심어두면 당장은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날 문득 마음이 덜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끊어지지 않게 하라.” 염불은 끊어지지 않는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염불은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붙잡을 ‘맑은 대상’을 주는 수행입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쏟아지는 걱정이 있을 때, 숨을 들이쉬며 “나무관세음보살”, 내쉬며 “나무관세음보살”을 열 번만 해보십시오.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걱정에 끌려가던 마음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납니다. 그 한 걸음이 곧 수행의 시작입니다.  

또 관계 속에서 화가 치밀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 말을 먼저 하면 업이 생기고 상처가 남습니다. 그때 잠깐 입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세 번만 염불해 보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이 짧은 염불은 감정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힐 틈을 만들어 줍니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으면 지혜가 올라오고, 지혜가 올라오면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이 변화가 바로 염불의 공덕입니다.  

불심사에서 2026년 3월 8일부터 봉행하는 관음천일기도는 큰 결심으로 시작되지만, 그 결심이 천일 동안 이어지려면 결국 작은 실천이 필요합니다. 관음천일기도의 핵심은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심을 닮아가는 것이고, 그 자비심은 생활 속에서 길러집니다. 법당에서만 염불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염불이 아니라, 밥을 짓는 손에도, 걸음을 옮기는 발에도, 사람을 대하는 말씨에도 스며드는 염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염불을 이렇게 생활화해 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뜨며 10번, 식사 전후 10번, 길을 걸으며 108걸음에 맞춰 108번, 잠자기 전 10번. 길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끊어지지 않게 하십시오. 이렇게 ‘짧게, 자주’ 염불하면 마음은 점점 한 곳에 머무는 힘을 얻고, 그 힘이 두려움과 번뇌를 다스리는 약이 됩니다.  

이 말씀처럼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순간, 평안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염불은 그 평안을 생활 속에서 매일 꺼내 쓰는 수행이며, 관음천일기도를 천일 동안 지켜내는 가장 든든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2025년의 마지막 주말 아침입니다. 이 아침을 염불로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큰 공덕을 지으셨습니다. 오늘 하루, 그리고 다가오는 날들 속에서 염불을 한 마디라도 더 가까이 두시기 바랍니다. 힘들 때는 힘들어서 염불하고, 기쁠 때는 감사해서 염불하십시오. 그 모든 염불이 모여 법우 여러분의 삶을 조용히 지켜주는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생활 속 염불수행은 특별한 수행자가 되기 위한 길이 아니라,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길입니다. 이 길 위에서 부처님은 늘 우리보다 한 걸음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이 인연을 씨앗 삼아, 남은 한 해와 다가올 새해를 염불과 함께 걸어가시기를 발원합니다.  

이 염불의 공덕이 법우 여러분 각자의 삶에 평안과 치유로 회향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법문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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