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1월 10일(토) 아침방송법문 : “감사는 최고의 수행입니다.”
眞虛性宗 2026-01-10 08:14:37, 조회 : 490, 추천 : 0
불기 2570년 1월 10일(토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감사는 최고의 수행입니다.”

오늘 법문은“감사는 최고의 수행입니다”로 준비하였습니다.
법우 여러분,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계율을 지키는 일입니까.  
선정을 닦는 일입니까.  
지혜를 증득하는 일입니까.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늘 그 이전의 마음을 먼저 보셨습니다.

증일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바르면 행이 바르고, 행이 바르면 삶이 편안해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 수행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수행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입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왜 수행입니까.
감사는 마음을 바로 세우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 감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잘 풀렸을 때, 건강이 회복되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잘해주었을 때 그때 비로소 감사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 말하는 감사는 조건부가 아닙니다.  
결과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자각입니다.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도 아침을 맞이했음에 감사하고,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법구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자는 가난하지 않고, 탐욕에 매인 자는 부유하지 않다.”
감사는 만족에서 나오고 만족은 수행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늘 불평 속에 머무를 때 마음은 쉼 없이 밖을 향해 달려갑니다.  
더 가져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하고, 더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현재의 삶은 늘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마음은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옵니다.

지금 가진 것, 지금 함께하는 인연, 지금 숨 쉬는 이 몸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알아차림이 바로 수행입니다.
감사는 업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원망의 말 한마디가 쌓이면 업이 되고, 감사의 말 한마디가 쌓여도 업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업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마음의 방향을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원망하는 마음으로 보면 고통이 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면 수행이 됩니다.

겨울이 춥다고만 생각하면 계절은 견뎌야 할 대상이 되지만, 이 추위 덕분에 우리가 서로를 더 생각하게 됨을 본다면 겨울은 감사의 스승이 됩니다.
이처럼 감사는 삶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라 삶을 바로 보는 눈입니다.

법우 여러분, 감사가 수행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막상 삶 속에서 실천하려 하면 가장 어려운 수행 중 하나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상황이 좋을 때보다 상황이 힘들 때 더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행은 언제나 편안한 자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괴로움이 일어나는 그 자리, 마음이 흔들리는 그 순간이 바로 수행의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바로 보지 않으면 해탈의 길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괴로움을 없애라는 뜻이 아니라 괴로움 앞에서 마음이 어떤 방향을 택하는지를 보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병이 들었을 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때 가장 먼저 드는 마음은 대개 원망과 불평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왜 나는 늘 이 모양인가, 왜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때 감사는 마음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을 가집니다.
감사는 상황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프면 아픈 그대로 인정하고, 힘들면 힘든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위에 하나의 물음을 더 얹습니다.
“이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모든 경험에는 배움이 깃들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괴로움조차도 지혜로 나아가는 문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감사의 수행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병이 들었기에 몸을 돌아보게 되고, 실패했기에 교만을 내려놓게 되고, 외로움이 찾아왔기에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 경험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수행의 재료가 됩니다.

법구경에 “어리석은 이는 고통 속에서 원망을 키우고, 지혜로운 이는 고통 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감사는 지혜로운 이의 태도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업을 전환시킵니다.  
같은 업이 이어져도 마음의 태도가 바뀌면 그 업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원망은 업을 굳게 만들고, 감사는 업을 녹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기도의 한 형태이며 수행의 한 방식입니다.
특히 관계 속에서 감사의 수행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쉽게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가족, 도반, 이웃과의 관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말 한마디, 기대에 어긋난 행동 하나로 마음이 돌아서기도 합니다.

이때 감사의 수행은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먼저 자기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 인연이 나에게 무엇을 비추어 주고 있는가.”  
“이 불편함 속에서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인연을 거울에 비유하셨습니다.  
상대의 모습은 곧 내 마음의 그림자라는 뜻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그 거울을 깨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는 힘입니다.

노년의 삶에서도 감사는 더욱 깊은 수행이 됩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기억은 흐려지며,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듭니다.  
이때 마음이 과거에 머물면 괴로움이 커지고, 현재를 받아들이면 평안이 자랍니다.
부처님께서는 늙음과 병듦, 죽음은 피해야 할 재앙이 아니라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로 수행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하다.”  
“아직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작은 감사가 하루를 지탱하고 마음을 지켜줍니다.

법우 여러분, 감사는 삶을 미화하는 말이 아닙니다.  
감사는 삶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쌓일 때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감사하며 살아온 그 시간 자체가 이미 수행이었음을...

이제 우리는 감사라는 수행이 어디까지 우리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감사가 결국 어떤 마음으로 회향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수행의 끝은 깨달음이 아니라 삶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에도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오셔서 중생들과 함께 숨 쉬고 공양을 드시며 길 위에서 법을 설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깨달음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수행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에서만 머무는 감사는 오래가지 못하고, 말로만 하는 감사는 쉽게 흐려집니다. 그러나 삶으로 이어지는 감사는 업을 바꾸고 인연을 바꾸며 결국 한 사람의 생을 바꿉니다.

부처님께서는 상윳따 니까야에서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이는 이미 세상을 이긴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말하는 마음 다스림의 핵심이 바로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마음이 밖으로 흩어 질 때마다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비교 속에서 괴로워합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고, 기대와 현실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감사는 비교를 멈추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이미 주어진 것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비교가 멈추면 탐욕이 약해지고, 탐욕이 약해지면 성냄도 함께 잦아들며,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평안이 깃듭니다.
이것이 바로 팔정도의 실제적인 작용입니다.  
정견은 감사로 시작되고, 정사는 감사 속에서 자라며, 정정은 감사의 반복 속에서 완성됩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수행의 구조 그 자체입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피해 가지 않고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죽음을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셨습니다.  
생과 사를 나누는 것은 분별의 작용일 뿐이며, 실상은 흐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흐름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바로 수행의 성숙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감사로 살아온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감사로 마무리한 사람은 내일이 오지 않더라도 이미 충만한 하루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죽음을 준비하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할 만큼 살았다.”  
“오늘도 마음을 다해 살았다.”  
이 고백이 가능한 삶이 바로 수행자의 삶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불심사에서 함께 봉행해 온 천일기도 역시 이 감사의 수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천일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마음을 길들이는 시간이며,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발원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매일 점검하는 수행입니다. 천일기도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얻어야 할 것은 바라는 결과보다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 기도는 이미 깊은 수행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받은 줄 알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인연과 업의 이치를 아는 지혜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수많은 인연과 공덕 위에 서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법문을 회향하며 한 가지를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다.
감사는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날을 지켜내는 힘이라는 점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감사하고,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았을 때에도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면 그 하루는 이미 수행의 하루가 됩니다. 이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고, 그 인생이 곧 그 사람의 수행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감사는 최고의 수행입니다.”라는 이 한 문장은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오늘 하루, 단 한 가지라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 하루는 헛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내일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어느새 부처님 가르침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공덕을 불심사와 인연 맺은 모든 법우님들, 이 땅의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하며 오늘 법문을 마무리합니다.


  이전글 주말 특별법문(불기 2570년 1월 11일, 일요... 眞虛性宗 2026-01-11
  다음글 1월 9일(금) 아침방송법문 : “집착을 내려... 眞虛性宗 2026-01-09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