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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4일(수) 아침방송법문 :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를 살피십시오.”
眞虛性宗 2026-01-14 08:09:51, 조회 : 497, 추천 : 0
불기 2570년 1월 13일(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를 살피십시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밖으로 돌립니다. 가족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힘들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서 답답하며, 세상이 왜 이렇게 각박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이때 마음속에는 공통된 생각 하나가 자리합니다. “저 사람이 좀 바뀌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수행의 출발점을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두셨습니다. 남을 바꾸는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나를 살피는 일은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서 가능한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남의 허물을 찾는 데 있지 않고, 자기 마음을 바로 보는 데 있습니다.

남을 바꾸려는 마음은 처음에는 정의롭고 옳은 주장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관계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내 기대가 어긋났다는 실망, 내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분노, 그리고 상황을 통제하고 싶다는 집착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마음이 반복되면 우리는 점점 피곤해집니다. 왜냐하면 남은 내 마음대로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을 바꾸려 애쓰면, 마음은 늘 긴장 상태에 머물고, 말은 거칠어지며, 관계는 서서히 굳어집니다. 이때 괴로움을 만드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상대를 바꾸려는 내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승리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긴다는 것은 억누른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차린다는 뜻입니다. 남을 향해 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는 순간, 수행은 이미 시작됩니다.

나를 살핀다는 것은 나를 비난하거나 책망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왜 나는 이렇게 화가 날까”, “왜 이 말에 이렇게 민감해질까”, “왜 이 상황에서 이렇게 불안해질까” 하고 조용히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는 답을 빨리 찾으려는 조급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묻고 바라보는 것 자체가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혹합니다. 남에게는 이해하려 노력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왜 이 정도도 못 하느냐”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자비의 방향을 남에게만 한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는 마음, 자기 자신을 돌볼 줄 아는 마음 또한 수행자의 자비입니다.

나를 살피는 수행이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말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상대를 바꾸려는 말이 먼저 나왔다면, 이제는 내 마음을 정리한 뒤에 말하게 됩니다. 말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이 변화는 상대가 바뀌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졌기 때문에 생기는 변화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고, 집착하는 마음에서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바꾸려는 마음은 곧 집착입니다. 그 집착을 내려놓고 나를 살피기 시작할 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만이라도 누군가를 고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인가”,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이 말은 자비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불만에서 나오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짧은 멈춤 하나가 하루를 바꾸는 시작이 됩니다. 남을 바꾸려는 에너지를 나를 살피는 데로 돌리는 순간, 마음은 이미 수행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가장 현실적이고도 깊은 수행입니다.
니다.

법우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남을 바꾸려는 마음이 어떻게 괴로움의 씨앗이 되는지, 그리고 그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는 것이 왜 수행의 출발점이 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남을 바꾸려는 마음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반복되고 강화되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어떻게 다시 나를 살피는 수행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혼자서만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가족과 함께 살고, 이웃과 마주치며, 도반과 인연을 맺고, 직장이나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관계 속에서 마음이 가장 자주 흔들리는 이유는 “상대가 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생각대로 자라주기를 바라며, 자녀는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대합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더 이해받고 싶어 하고, 도반 사이에서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하는 생각이 쉽게 올라옵니다. 이때 마음속에서는 늘 같은 공식이 반복됩니다. ‘상대가 바뀌면 내가 편해질 텐데’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공식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보셨습니다. 상대가 바뀌어야 내가 편해진다는 생각은 끝없는 조건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바뀌면 또 다른 사람이 눈에 띄고, 한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불만이 생깁니다. 이렇게 남을 바꾸려는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남을 바꾸려는 마음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실제로 옳은 말일 수도 있고, 상황을 바로잡고 싶은 진심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옳음에 집착할 때 생깁니다. 옳음에 집착하면 마음은 굳어지고, 굳어진 마음에서는 자비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옳음에 집착하여 사람을 재단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수행자의 기준은 ‘내가 옳은가’가 아니라 ‘내 마음이 지금 자비로운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 속에서 마음이 상했을 때, 우리는 종종 그 이유를 상대의 말과 행동에서만 찾습니다. 그러나 수행의 눈으로 보면, 그 말과 행동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고, 어떤 날은 깊이 상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는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내 마음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살핀다는 것은 상황을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반응을 살피는 일입니다. 말이 나오기 직전의 마음, 표정이 굳어지기 직전의 감정, 불편함이 올라오는 바로 그 지점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 알아차림이 없으면 우리는 늘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그 반응은 다시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그 다음에 말과 행동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마음의 방향만 바꾸어도 말과 행동은 자연스럽게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상대를 바꾸려는 말 대신, 나를 살피는 침묵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순간 관계의 흐름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가족 관계에서는 남을 바꾸려는 마음이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잘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내 뜻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기대가 실망을 만들고, 실망이 쌓여 분노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수행자는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는가”라는 질문 대신 “왜 나는 이 행동에 이렇게 흔들리는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나를 살피는 질문이기에 마음을 수행의 자리로 되돌려 줍니다.

나를 살피는 수행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남을 바라보는 데 익숙해진 눈을 나에게로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을 지나야 비로소 자유가 시작됩니다. 남을 바꾸려는 부담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책임지는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이란 고통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바꾸려는 태도는 고통을 키우는 길이고, 나를 살피는 태도는 고통을 지혜로 바꾸는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누군가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 그 마음을 나쁘다고 억누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에너지를 나를 살피는 데로 돌려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 마음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이 말은 꼭 지금 해야 하는가” 하고 한 번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한 번의 물음이 수행입니다. 이 물음이 쌓일수록 우리는 점점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이 생길 때, 역설적으로 관계는 더 부드러워지고, 말은 더 적절해지며, 상대는 오히려 스스로 변화할 여지를 얻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오늘 법문의 마지막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 보고자 합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남을 고치려는 일보다 나를 살피는 일을 먼저 하라고 가르치셨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 질문은 수행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더욱 분명해집니다.

남을 바꾸려는 마음은 결국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처음에는 옳은 의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을 지치게 만들고, 관계를 무겁게 하며, 삶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사람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나를 살피는 수행은 세상을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책임지는 자리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따지기보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보게 됩니다. 이 전환이 바로 수행자의 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자기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만 바로 볼 수 있다면, 세상은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살피는 수행이 갖는 힘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바꾸려는 마음은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살아온 경험이 많아질수록 ‘이게 맞다’는 기준이 생기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과 상황을 보면 답답함이 커집니다. 이때 수행이 없으면 마음은 쉽게 굳어지고, 세상과 거리를 두게 됩니다.

그러나 수행의 눈으로 보면, 이 시기는 오히려 나를 깊이 살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젊을 때처럼 바쁘게 앞만 보며 달리지 않아도 되고, 잠시 멈추어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를 살피는 수행은 늦은 수행이 아니라, 무르익은 수행입니다.

나를 살핀다는 것은 지나온 삶을 후회하며 되짚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살피는 일입니다. 후회가 올라오면 ‘아, 지금 후회의 마음이 있구나’ 하고 보고, 서운함이 올라오면 ‘아, 아직 이 마음이 남아 있구나’ 하고 보는 것입니다. 이 바라봄에는 평가도 변명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살피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남을 덜 판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도 이렇게 흔들리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도 그럴 수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이해가 깊어질수록 말은 부드러워지고, 침묵은 더 지혜로워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겸손을 말씀하셨습니다. 겸손은 나를 낮추는 말이 아니라, 나 또한 완전하지 않음을 아는 지혜입니다. 나를 살피는 수행은 이 겸손을 길러 줍니다.

신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신행을 평가하고 비교하기보다, 오늘 내 마음이 부처님 가르침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 많이 다니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자비로운가를 묻는 것이 수행입니다.

불심사 아침방송은 바로 이 나를 살피는 수행을 매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작은 도량입니다. 법문을 들으며 마음이 한 번 멈추고, 하루 중 문득 법문 한 구절이 떠올라 말을 삼키게 된다면, 그 순간 이미 수행은 삶 속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마칠 때 이렇게 한 번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는 누구를 바꾸려 애썼는가, 아니면 나를 살피는 시간을 가졌는가.” 하고 말입니다. 이 질문에 정답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를 살피라는 가르침은, 세상과 등을 지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길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나를 살필 수 있을 때 우리는 남과 더 건강하게 관계 맺을 수 있고, 세상과도 더 부드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법문의 공덕을 오늘 아침방송을 함께한 법우 여러분과 그 가정, 불심사와 인연 맺은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며, 각자의 삶 속에서 나를 살피는 수행이 지혜와 평안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남을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살피는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새 삶 전체가 수행이 되어 있기를 서원하며, 이로써 오늘 아침방송 법문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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