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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5일(목) 아침방송법문 : “나누는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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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5 07:56:13, 조회 : 47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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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1월 15일(목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나누는 삶”
법우 여러분, 오늘 법문의 주제는 “나누는 삶”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의 길을 여섯 가지 바라밀, 곧 육바라밀로 설하셨습니다.
그 첫 자리에 놓인 것이 바로 보시바라밀, 나누는 수행입니다.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나눔은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 수행의 출발점이며, 마음공부의 가장 현실적인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는 복을 낳고, 복은 다시 지혜를 낳는다.”고 하셨습니다.
나눔은 단순히 착한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구조를 바꾸는 수행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쌓습니다.
재물도 쌓고, 경험도 쌓고, 상처와 서운함마저 마음속에 쌓아 둡니다.
그러나 쌓인 마음은 어느 순간 우리를 짓누르기 시작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쌓임의 고통을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래서 쥐는 손이 아니라, 펴는 손을 가르치셨습니다.
법구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시는 마음의 때를 씻는 맑은 물과 같아, 어리석음의 먼지를 씻어낸다.”
이는 나눔이 곧 마음의 정화임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눔을 여유 있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가진 것이 적을수록 나눔의 공덕이 더욱 빛난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안에 집착을 내려놓는 마음의 힘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법우 여러분, 나눔은 물질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입니다.
천 원을 나누든, 한 시간을 나누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든, 그 마음이 수행입니다. 특히 중장년 이후의 삶에서 나눔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젊은 시절에는 성취와 경쟁이 삶의 중심이 되지만, 나이가 들수록 관계와 의미가 삶의 중심이 됩니다. 이때 나눔이 없는 삶은 점점 고립되고, 마음은 외로워집니다.
반대로 나눔이 있는 삶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재물 보시보다 더 큰 공덕으로 법 보시와 무외 보시를 설하셨습니다.
법 보시는 지혜를 나누는 것이고, 무외 보시는 두려움을 덜어주는 나눔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나눔은 이 무외 보시입니다.
불안과 외로움 속에 있는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는 마음, 그 자체가 큰 수행입니다.
나누는 삶은 남을 위한 희생이 아닙니다.
나누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집착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자유를 맛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나눔을 수행의 첫 자리에 두신 깊은 이유입니다.
법우 여러분,
나누는 삶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수행이 그러하듯, 나눔 또한 작고 소박한 실천이 쌓여 어느 순간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 정도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말 한마디, 미소 하나, 작은 배려 하나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스스로를 낮춰 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 ‘작음’을 수행의 핵심으로 보셨습니다.
큰 결심보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작은 실천이고, 큰 보시보다 깊은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눔을 씨앗에 비유하셨습니다.
씨앗은 심는 즉시 열매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땅속에서 때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나눔도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 반응이 없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눔은 결코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공덕은 가장 먼저 내 마음에 스며듭니다.
조급함은 조금씩 가라앉고, 분노는 누그러지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부드러워집니다. 이 변화가 바로 나눔이 맺는 첫 번째 열매입니다.
법우 여러분,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는 분명히 다릅니다.
젊은 시절에는 무엇을 이루었는지가 중요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마음을 채웁니다.
이때 나눔이 없는 삶은 점점 과거에 머무르게 됩니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 놓친 기회에 대한 아쉬움, 풀리지 않은 관계가 마음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늙음은 더 외롭고, 시간은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나누는 삶을 살아온 사람은 다릅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말 한마디, 조금 더 참아준 마음 하나,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려 했던 그 노력이 오늘의 나를 살아 있게 만들고, 내일의 나를 따뜻하게 준비시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는 늙음을 두렵지 않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재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눔으로 이어진 인연이 마음의 외로움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약해집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마음도 쉽게 지치며,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해지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이때 나눔의 삶을 살아온 사람은 혼자가 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게 쌓아온 인연과 공덕이, 말없이 그 사람의 곁에 머물러 주기 때문입니다.
법우 여러분,
나눔은 남을 돕는 행위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눔은 결국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임종을 앞둔 제자들에게도 항상 보시를 권하셨습니다.
집착을 내려놓은 마음으로 삶을 마무리할 때, 두려움은 줄고 평안은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 시간, 경험, 감정은 모두 언젠가 내려놓아야 할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을 때, 기꺼이 나누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나누는 순간, 우리는 ‘잃는 사람’이 아니라 ‘자유로워지는 사람’이 됩니다.
이 자유가 바로 수행의 결실입니다.
법우 여러분,
불자로서 산다는 것은 절에 오는 시간만 수행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 전체가 수행이 되도록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염불하고, 법문을 듣는 이유도 결국은 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이롭게 살기 위함입니다.
오늘 이 아침,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나눌 수 있는가.”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인사하는 일, 끝까지 들어주는 일, 한 번 더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그 작은 나눔이 가정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립니다.
그리고 그 모든 나눔은 다시 나에게 돌아와, 마음의 평안과 삶의 존엄으로 자리 잡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시는 베푼 만큼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연 만큼 자유로워진다.”
이 말씀이야말로 나눔의 본질입니다.
나누는 삶은 베푸는 자와 받는 자를 가르지 않습니다.
그 순간, 모두가 함께 따뜻해지기 때문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 그리고 남은 생의 길 위에서 나눔의 수행자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발원드립니다.
그 길 위에서 부처님의 가피가 늘 함께하시기를, 불심사 도량에서 한 마음으로 기원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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