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1월 17일(토) 아침방송법문 :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眞虛性宗 2026-01-17 07:56:11, 조회 : 479, 추천 : 0
불기 2570년 1월 17일(토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법우 여러분,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 가운데 가장 분명하고도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르침이 바로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건강은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바라고, 관계는 늘 지금처럼 이어지기를 바라며, 형편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도 적어도 나빠지지는 않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이 말씀은 세상이 허무하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가르침입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꽃은 지고, 가을이 오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이 쉬어갑니다. 이 흐름 속에서 꽃이 진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고, 열매가 없다고 조급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자연스러운 변화를 거부하려 할 때 생깁니다.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살다가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허무해지고 분노합니다.
관계가 늘 그대로일 것이라 믿다가 상대의 마음이 변했음을 느낄 때, 우리는 상처받고 집착합니다. 그러나 법우 여러분, 변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기를 요구하는 마음이 우리 스스로를 괴롭게 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고 내 마음의 집착에서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이 말씀이 차갑게 들린다면, 그것은 아직 우리가 무언가를 꼭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놓아도 되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무상(無常)의 진리는 단순히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마음의 방향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바라보게 하는 지혜의 눈을 열어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변화를 경험하면서도 그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마음속으로는 변하지 않기를 은근히 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몸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계절마다 컨디션이 달라지는데도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당황하고 서운해 하며 마음을 다치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괴로움이 몸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집착 때문임을 분명히 밝혀주셨습니다.  
법구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지고 모인 것은 반드시 흩어진다.”고 말씀하시며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냉혹한 현실을 들이밀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쓸데없는 기대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자비로운 선언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붙잡고 놓지 못하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언젠가는 변할 수밖에 없는 것들임을 알게 됩니다.  
재물은 쌓아두면 든든할 것 같지만 세월과 상황 앞에서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지위와 명예 또한 환경이 바뀌면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깊고 단단해 보이지만 서로의 마음 상태와 삶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서서히 모습이 바뀌어 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관계가 늘 지금처럼 유지되기를 바라며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요구를 쌓아두고 그 기대가 어긋날 때 마음속에서 원망과 실망을 키우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가리켜 집착이라 하셨고 집착은 결국 괴로움으로 이어진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무상함을 이해한다는 것은 관계를 가볍게 여기거나 책임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이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제대로 아는 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말 한마디를 더 조심하게 되고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가꾸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만약 모든 것이 영원하다면 우리는 굳이 감사할 이유도 없고 지금 이 순간을 귀하게 여길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무상은 허무가 아니라 각성의 문이며 무상은 절망이 아니라 깨어 있음의 시작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환경도 지금 내 몸과 마음의 상태도 다시 오지 않을 한 순간임을 안다면 우리는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을 바르게 이해했을 때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자비의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뒤에도 제자들에게 세상의 이치를 설명할 때 언제나 무상과 고(苦)와 무아(無我)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변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변함을 거부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기며 고통을 내 것이라고 움켜쥘 때 괴로움은 더욱 깊어진다는 가르침입니다.  

법우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이 가르침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예전에는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지고 밤잠이 줄어들며 몸의 여기저기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종종 마음으로 먼저 늙어버립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으로 보면 이러한 변화는 실패나 상실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인연의 변화일 뿐입니다.  

몸이 변하면 그에 맞는 삶의 속도와 마음의 깊이를 갖추면 되고 예전과 같지 않음을 인정할수록 오히려 마음은 더 단단해집니다.  
무상을 받아들인 사람은 과거의 자신과 비교하며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지금의 자신에게 맞는 수행과 삶을 선택할 줄 알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수행이란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외면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 하고 더 많이 움켜쥘수록 놓을 때의 고통은 커집니다.  
반대로 무상을 이해하는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서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 앞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마음은 체념이 아니라 지혜이며 포기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기도 또한 이러한 무상에 대한 바른 이해 위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깊이를 갖게 됩니다.  
무언가를 영원히 붙들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바른 마음을 잃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될 때 기도는 우리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관찰하는 자는 생사의 흐름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무상함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결국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살피는 수행이며 지금의 마음을 바로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얻게 됩니다.  
이 중심은 외부 조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삶 속에서 반복하여 확인할 때 서서히 길러집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이 귀하고 영원한 것은 없기에 지금의 인연이 소중하며 영원한 것은 없기에 우리는 오늘 더 따뜻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무상의 진리를 두려움이 아닌 지혜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가벼워지고 조금 더 깊어지며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삶의 이치로만 이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가르침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 서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무상(無常)을 설하신 이유는 세상을 부정하거나 삶을 허무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마음의 기준을 세워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안정되었다고 느낄 때 방심하고 흔들릴 때 비로소 수행을 찾지만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안정과 불안 모두가 잠시 머무는 인연임을 알아차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기쁠 때는 이 기쁨이 오래가기를 바라며 집착하고 힘들 때는 이 고통이 영원할 것처럼 느끼며 절망하는 마음이 바로 무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마음입니다.  
무상을 깊이 이해한 사람은 기쁨 앞에서 교만해지지 않고 고통 앞에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언제나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지혜를 지니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무상을 삶 속에서 실천한다는 것은 특별한 수행을 따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태도를 조금씩 바꾸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말 한마디를 할 때에도 이 말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함부로 상처 주는 말을 내뱉지 않게 됩니다.  
오늘의 만남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지고 원망보다는 이해가 먼저 앞서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원망은 원망으로 사라지지 않고 자비로서만 사라진다.”고 하셨는데 이 자비의 바탕에는 바로 무상에 대한 깊은 통찰이 깔려 있습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도 영원한 성격이 아니라 그 순간의 마음 상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무상을 이해하는 사람은 타인의 변화에도 덜 상처받고 자신의 변화에도 덜 불안해하며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을 선택합니다.  

법우 여러분, 수행이 깊어질수록 삶은 단순해지고 마음은 가벼워진다고들 말합니다.  
이 단순함과 가벼움은 무상을 받아들인 데서 비롯되며 더 가지려는 마음을 내려놓을수록 이미 충분히 주어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 만족 또한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지금 가진 것이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그것을 붙잡는 대신 감사할 수 있고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감사는 무상에서 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며 무상을 외면할수록 감사는 줄어들고 무상을 받아들일수록 감사는 깊어집니다.  

법우 여러분, 기도 또한 무상 위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영원히 붙들기 위한 기도는 결국 실망으로 끝나기 쉽지만 변화 속에서도 바른 마음을 잃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는 우리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부처님께 기도드린다는 것은 세상을 멈춰 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힘을 달라고 발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결과보다 마음을 먼저 바꾸고 환경보다 태도를 먼저 바꾸는 수행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무상은 더 이상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는 진리가 됩니다.  
기억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때 관계가 조금씩 달라짐을 체감할 때 삶의 속도가 느려졌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 변화를 원망의 이유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삶의 깊이를 더하는 인연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열어 주고 있습니다.  
무상을 받아들인 사람은 과거의 자신과 싸우지 않고 지금의 자신을 존중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조급함이 아닌 차분한 정진으로 채워 갑니다.  

정진이란 무언가를 더 이루기 위한 분투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마음의 태도이며 그 태도의 바탕에는 무상에 대한 이해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오늘의 몸과 마음에 맞게 해내고 내일은 내일의 인연에 맡기는 삶이 바로 무상을 사는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법우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제자들에게 “게으르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깨어 있음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살피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오늘 더 깨어 있어야 하고 영원하지 않기에 오늘의 선택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곧 우리의 삶이며 지금의 태도가 곧 내일의 인연을 만들어 갑니다.  

법우 여러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두려움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붙잡지 않아도 되기에 마음은 가벼워지고 잃을 것을 미리 받아들이기에 삶은 오히려 더 단단해집니다.  
이 가르침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법우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쉼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조급할 때에는 잠시 멈추어 무상을 떠올리고 집착이 올라올 때에는 다시 한 번 내려놓음을 연습하며 감사가 흐려질 때에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무상은 두려움이 아닌 벗이 되고 변화는 적이 아닌 스승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아침의 법문이 법우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기를 발원하며 “영원한 것은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귀하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올립니다.  
부처님 가피가 법우 여러분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든 변화의 순간마다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이전글 주말 특별법문(1월 18일, 일요일) 眞虛性宗 2026-01-18
  다음글 1월 16일(금) 아침방송법문 : “받는 자 보... 眞虛性宗 2026-01-16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