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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5일(목) 아침방송법문 : “수희(隨喜)하는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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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5 08:17:35, 조회 : 47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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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2월 5일(목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수희(隨喜)하는 마음”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의 법문 주제는 “수희(隨喜)하는 마음”입니다.
수희란 다른 이의 선행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여러 경전에서 반복하여 칭찬하신 가장 고귀한 마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증일아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이로움을 보고 시기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곧 보리심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질투하지 말라는 수준이 아니라 다른 이의 행복과 공덕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이미 깨달음의 마음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남이 잘될 때, 남이 칭찬받을 때, 남이 복을 짓는 모습을 볼 때 그것을 기뻐하기보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나는 제자리인데 저 사람만 나아가는 것 아닐까?”
“나는 애쓰는데 왜 저 사람은 쉽게 잘되는 것 같을까?”
이런 마음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오래 머물면 괴로움이 되고, 인연을 막고, 복을 스스로 소멸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공덕을 기뻐하는 이가 복을 얻는다.”
복을 얻는 길은 단순합니다.
남의 복을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내가 못한 선행을 누군가가 해냈다면 그 사람의 공덕은 그 사람의 것이지만 그 공덕을 기뻐하는 마음을 내는 순간 그 기쁨은 온전히 나의 복이 됩니다.
수희하는 마음이 왜 이렇게 큰 복이 될까요?
그것은 수희가 곧 마음의 크기를 확장하는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우리의 마음은 좁아지기 쉽습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마음이 움츠러들고 조금만 비교해도 마음이 닫혀버립니다. 하지만 수희는 이 닫힌 마음을 즉시 열어 주고 내 마음의 그릇을 키워 주는 수행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보시에 힘쓰고, 어떤 법우님이 기도정진을 꾸준히 이어가고, 또 다른 법우님이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베풂을 볼 때 그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참 잘하셨다” “참 고맙다”라고 느끼면 그 순간 나의 마음은 남의 공덕만큼 넓어집니다. 남의 공덕이 내 마음의 밝음이 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님이 중생을 보실 때 지장보살님은 중생이 복을 짓는 모습을 보면 마치 자신의 일처럼 크게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그대들이 선을 지었으니 그 공덕이 반드시 그대들의 고통을 덜어 주리라.”
이 기쁨이 바로 대자대비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아 가면 삶이 훨씬 가벼워지고 인연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행복이 훨씬 크게 흐르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계속해서 ‘수희하는 마음’이 왜 수행에서 그렇게 중요한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일상의 삶을 돌아보면 남의 기쁨을 보며 함께 기뻐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금방 알게 됩니다, 마음은 늘 비교하려 하고 작은 차이에도 민감하게 흔들리고 나보다 더 잘되는 사람을 보면 나의 부족함이 먼저 떠올라 기쁨보다 답답함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 지점을 수행의 출발점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남의 선행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질 때 그 마음을 돌려 남의 선(善)을 축원하고 남의 밝음을 기쁘게 여기는 순간 수행의 문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보적경에는 “수희는 복덕을 낳는 근원이니라, 남의 복을 기뻐하는 이는 큰 복을 얻게 된다.”고 반복하여 설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상대를 칭찬하라는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내 마음의 흐름을 바꾸는 가장 직접적인 수행법’이라는 뜻이며, 수희는 업장을 녹이고 복덕을 짓고 마음을 밝히는 지름길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마음의 어려움과 번뇌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비교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남보다 조금 못하다고 느껴지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기쁨이 사라지며 내가 가진 것이 축복임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누군가가 잘되는 것을 보며 그 기쁨을 함께 누리려는 마음을 내는 순간 비교심은 힘을 잃고 마음은 갑자기 넓어지고 자유로워집니다, 이것이 수희의 기적이며 수행에서 반드시 닦아야 할 바입니다.
특히 오늘은 지장재일이므로 지장보살님의 큰 원력과 자비심을 생각하면 더욱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중생이 작은 선을 지어도 그것을 크게 기뻐하시고 중생이 악을 멀리하면 그것 또한 기뻐하시며 그 기쁨을 통해 중생들을 더욱 선으로 이끄십니다, 지장보살님의 마음이 바로 ‘수희의 마음’이며 중생에게서 발견되는 작은 밝음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주는 위대한 자비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아가려면 일상에서 작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법우님이 성실히 기도정진을 이어가고 있을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참 잘하셨습니다, 그 정진이 마음 밝힘으로 이어지기를 서원합니다.”라고 축원해 보십시오, 또 어떤 법우님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면 그 모습을 떠올리며 “그 선행이 널리 퍼져 더 많은 이에게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뻐해 보십시오, 이처럼 마음속에서 조용히 올리는 수희의 축원은 실제로 그 법우님에게도 복이 되고 동시에 나의 마음에도 밝은 기운을 심는 씨앗이 됩니다.
수희의 마음을 닦다 보면 인연도 달라집니다, 수희를 잘하는 사람은 주변에 이상하게 선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마음이 부드러워지니 말도 따뜻해지고 표정도 환해지며 자연스럽게 인연이 밝아집니다, 반대로 수희를 하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많아지면 인연이 점점 고단해지고 마음이 늘 가라앉으며 스스로도 이유를 모른 채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수희는 단지 심리적 태도가 아니라 인연을 움직이고 업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수행력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또한 법구경에서 “다른 이는 남을 해치며 살아가나 수행자는 다른 이의 복을 보며 기뻐한다.”고 설하셨습니다, 즉 세속의 삶에서는 서로 경쟁하고 다투지만 수행자의 길은 경쟁이 아닌 기쁨과 축원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남에게 이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밝히기 위해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수희는 저절로 삶의 중심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삶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고통과 기쁨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애쓰고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누군가는 신행을 위해 조용히 정진하고 있습니다, 이 다양한 삶의 자리를 보며 서로를 시기하거나 비교하는 대신 ‘아, 저 법우님도 참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구나, 그 정진 위에 복이 깃들기를’ 하고 마음속으로 축원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놀라울 만큼 부드러워지고 넓어집니다.
또한 수희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힘도 있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지고 기쁨이 사라질 때에는 누군가의 밝은 마음을 함께 바라보며 그 밝음을 나에게도 비춰주면 어둠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합니다, 나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도를 놓지 않는 법우님, 힘든 형편에서도 보시를 이어가는 법우님, 바쁜 와중에도 법회 참석을 소중히 여기는 법우님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기뻐하면 나의 마음이 넓어지고 고통이 약해지며 삶을 다시 밝게 볼 힘이 생깁니다.
이처럼 수희는 수행을 성장시키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며 인연을 밝히는 가장 편안하고도 강한 수행이며, 오늘 지장재일의 기운 속에서 우리가 이 마음을 새롭게 회복한다면 올 한 해의 기도와 정진도 훨씬 더 밝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이어서 수희하는 마음이 지닌 더 깊은 수행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마음의 굳어짐이며 이 굳어진 마음은 변화를 싫어하고 고집을 놓지 않으며 스스로 만든 벽 안에서 머무르려 합니다, 그런데 수희의 마음은 이 굳어짐을 녹여주는 부드러운 물과 같아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밝음을 발견하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많은 수행법 가운데에서도 수희를 마음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남의 선행을 보고 기뻐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를 칭찬하는 것을 넘어 나의 마음을 넓히는 행위이며 동시에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수행입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세상은 답답해지고 사람들은 모두 경쟁자가 되며 내가 가진 복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넓어지면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도반들이 되고 다른 사람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며 내가 가진 복도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수희는 복덕을 짓는 가장 부드럽고도 강한 방법임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지장보살님의 가르침을 떠올려 보십시오, 지장보살님은 고통 받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 있으신 것이 아니라 중생이 조금이라도 선한 마음을 일으키면 그것을 크게 기뻐하시고 기뻐함을 통해 그 마음을 계속 자라게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남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들을 때 마음이 살아나듯 지장보살님의 수희의 마음은 중생이 선을 놓치지 않도록 등불처럼 비춰주는 자비의 작용입니다, 오늘 이 지장재일에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닮아가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커다란 공덕을 쌓는 것이 됩니다.
수희의 수행을 일상에서 닦으려면 먼저 비교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의 선행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질 때 “나는 왜 저만큼 하지 못할까” 하고 자신을 낮추거나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 환경이라서 그렇겠지” 하고 변명하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이 마음을 탓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되 그 순간에 즉시 마음을 전환하여 “저 법우님이 복을 잘 짓고 계시는구나, 참 고맙고 기쁜 일이다”라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이 한 번의 전환이 업(業)을 바꾸고 인연을 바꾸고 내 마음의 습관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또한 수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야 진정한 공덕이 됩니다, 억지로 기뻐하는 척하면 마음은 금방 알아채고 괴로움이 생기지만 진심으로 기뻐하려는 작은 의지가 생기면 그 의지부터가 이미 밝은 씨앗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생각의 선이 백겁의 업장을 녹인다.”고 하셨으니 한 생각의 수희는 수많은 시기심과 비교심을 녹이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은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기뻐하려 애쓸 필요 없이 ‘기뻐해보고자 하는 의지’만 먼저 세우면 그것이 곧 수행의 첫걸음이 됩니다.
수희의 힘은 관계를 바꾸는 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선행을 하면 다른 가족이 그것을 시기하여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 직장에서 누군가가 인정받으면 그 주변에서 보이지 않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희는 이런 갈등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자비의 지혜입니다, 누군가가 복을 짓는 것을 보고 “좋은 일이 생겨서 참 잘되었다”고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다면 그 인연은 더욱 단단해지고 그 기쁨이 서로에게 흘러가며 결국 그 가정과 공동체 전체가 밝아집니다, 그래서 수희는 단지 내 개인의 수행이 아니라 공동체를 밝히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또한 수희는 마음의 그릇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조금만 기쁨이 와도 금세 넘쳐버리지만 그릇이 큰 사람은 많은 기쁨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으며 더 많은 사람을 품습니다, 수희는 바로 이 그릇을 키우는 수행입니다, 남의 선행을 기뻐하면 그만큼 그릇이 넓어지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도 부드러워지며 나중에는 큰일도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수행자가 큰 인연을 만나고 큰 복을 받으려면 그릇이 먼저 커져야 하니 그 그릇을 키우는 가장 빠른 길이 바로 수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지장재일 아침을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커다란 인연이며 그 인연 위에 수희의 마음을 심는다면 우리들의 삶은 분명히 한층 더 넓어지고 밝아질 것입니다, 누군가가 선행을 하면 그 마음을 기뻐하고 누군가가 복을 지었다면 그 복이 오래가기를 축원하며 누군가가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선행이 세상을 더 밝히기를 서원하십시오, 그러면 그 모든 기쁨과 밝음과 복이 결국 나의 마음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견고한 공덕이 되어 돌아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남의 선을 보고 기뻐하는 이는 스스로 복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복전이란 복을 짓는 밭이라는 뜻이니 내가 복의 씨앗을 심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남의 기쁨을 기뻐하는 마음이 결국 내 마음을 복의 밭으로 만들어서 끊임없이 복을 만들어내는 삶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는 남의 밝음을 볼 기회가 끊임없이 찾아오며 누군가의 선행, 누군가의 정진,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눈앞에 나타날 때마다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의 하루가 바뀌고 나의 인연이 달라지고 나의 공덕이 달라집니다, 수희의 마음을 내는 순간 마음은 즉시 부드러워지고 마음의 문이 조금 더 열리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훨씬 더 넓어지고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복의 자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또한 수희는 단지 사람을 향한 기쁨만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향해 기뻐하고 법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작은 깨달음의 순간에도 기뻐하는 마음으로 확장됩니다, 오늘처럼 지장재일 아침에 함께 모여 불법을 듣고 마음을 밝히는 이 시간이 바로 수희의 시간이니 서로의 인연을 기뻐하고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법우님들의 정진을 진심으로 축원한다면 이 순간 자체가 커다란 공덕이 됩니다, 지장보살님의 원력도 결국 중생의 작은 밝음을 기뻐하시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하면 우리의 수희는 지장보살님의 자비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는 특별히 마음속에 한 가지 발원을 세워 보시기를 권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이 지은 선을 기뻐하겠습니다, 어떤 소식을 듣든 그 안에 담긴 밝음을 축원하겠습니다, 다른 이의 행복을 나의 기쁨으로 삼겠습니다.”라고 다짐해 보십시오, 이러한 한 생각, 한 발원이 오늘 하루를 바꾸고 이번 한 달을 바꾸고 결국 올해 전체의 마음의 흐름을 바꾸는 씨앗이 됩니다, 수희의 마음은 그 자체로 밝은 등불이 되어 내 마음을 비추고 주변을 비추며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듭니다.
오늘 지장재일을 맞아 우리가 닦은 수희의 마음이 가정의 평안으로 이어지고 기도의 힘으로 이어지고 복덕의 씨앗으로 이어져 법우님들의 삶 속에서 밝은 결실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남의 복을 기뻐하는 마음은 곧 나의 복을 여는 문이며 나의 인연을 넓히는 바람이며 나의 수행을 성장시키는 자비의 실천이니 오늘 하루뿐 아니라 매일매일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신다면 수희의 공덕이 반드시 법우님들께 크게 머물 것입니다.
이상으로 “수희하는 마음”에 대한 법문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해 주신 법우 여러분 모두에게 지장보살님의 지극한 자비와 밝은 기운이 가정마다 충만하기를 서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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