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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3일(월) 아침방송법문 : “집착을 줄이면 평안이 커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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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3 07:55:53, 조회 : 41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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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4월 13일(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집착을 줄이면 평안이 커집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준비한 법문의 주제는 “집착을 줄이면 평안이 커집니다.”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사람을 붙잡고, 물건을 붙잡고, 기억을 붙잡고, 감정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 붙잡음 속에서 때로는 행복을 느끼고, 또 때로는 깊은 괴로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붙잡는다는 것은 곧 집착입니다. 집착은 처음에는 사랑과 소중함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그 집착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자유를 잃고 마음의 짐을 짊어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착에서 슬픔이 생기고 집착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집착을 버린 자에게는 슬픔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이 말씀은 매우 단순하지만, 우리 삶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왜 괴로울까요. 많은 분들은 환경이 힘들어서, 사람이 힘들어서,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 원인을 밖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찾으라고 하십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평안하고 어떤 사람은 괴로워합니다. 같은 말을 듣고도 어떤 사람은 웃고 넘기지만,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괴로워합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집착입니다.
마음이 붙잡으면 괴로움이 되고, 마음이 놓으면 자유가 됩니다. 상황은 같지만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일을 떠올릴 때 마음이 아픈 이유는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계속 괴로운 것은, 그 일을 내 마음이 아직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어떤 사건 하나, 오래전의 기억 하나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힌다면 그것은 그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착은 시간을 넘어섭니다. 과거의 일을 현재로 끌어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를 괴롭히게 만드는 힘이 바로 집착입니다.
우리는 흔히 “잊어버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억지로 잊으려고 할수록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착의 성질입니다.
놓지 못하면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각인됩니다. 반대로 자연스럽게 놓아버리면, 애써 잊으려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기억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은 잊는 연습이 아니라 놓는 연습입니다.
법우 여러분, 놓는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놓는다는 것은 무책임하게 외면하는 것도 아닙니다. 놓는다는 것은 그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었구나.”
“그 사람도 그런 사정이 있었겠지.”
“이미 지나간 일이구나.” 이렇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동안 꽉 쥐고 있던 손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관계 속에 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직장과의 관계, 그리고 수많은 인연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괴로워지는 이유는 관계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관계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결국 나 자신도 괴롭게 만듭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왜 알아주지 않을까.”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이런 생각이 들 때 이미 사랑은 집착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사랑은 흐르는 것이고 집착은 붙잡는 것입니다. 흐르면 맑아지고, 붙잡으면 썩게 됩니다.
강물은 흐르기 때문에 맑습니다. 그러나 고여 있으면 결국 썩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흘려보내야 맑아집니다. 놓아야 편안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머무르지 않으며, 결국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떠나는 것을 붙잡으려 하고, 사라지는 것을 붙들어 두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집착입니다.
봄에 피는 꽃을 생각해 보십시오. 꽃은 피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꽃이 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꽃이 질 때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꽃이 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 이치를 받아들이면 슬픔 대신 감사가 생깁니다.
“이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 마음이 바로 집착을 줄이는 지혜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이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집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이치를 깊이 이해하게 되면 집착은 조금씩 줄어들고, 그 자리에 평안이 자리 잡게 됩니다.
집착은 “이것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이고, 평안은 “이것이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이 두 마음의 차이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법우 여러분,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마음이기 때문에 조금씩 알아차리고 조금씩 놓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속에서 하나를 내려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에 대한 서운함 하나, 오래된 기억 하나, 또는 나를 괴롭히는 생각 하나를 내려놓아 보십시오.
그 하나가 놓여질 때, 마음은 분명히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벼움이 쌓여갈 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평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집착이 줄어든 만큼 평안은 커집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삶의 이치입니다.
오늘 이 아침, 집착을 조금 내려놓고 평안을 조금 더 키우는 하루가 되시기를 발원드립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생각을 만들어 내고, 그 생각 속에서 스스로를 묶으며 살아갑니다. 집착이라는 것은 단지 어떤 대상에 대한 애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낸 생각과 판단, 그리고 나의 기준을 놓지 못하는 마음까지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착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마음 안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아함경에서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이 외부의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가르침입니다.
법우 여러분,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은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그 차이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을 쓰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집착이 강한 사람은 모든 일을 자기 기준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쉽게 흔들리고, 쉽게 상처받으며, 쉽게 분노하게 됩니다.
반대로 집착이 적은 사람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일이 잘 되지 않아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누군가의 말에 쉽게 상처받지 않으며, 마음의 중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의 차이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 말 속에는 이미 집착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한 만큼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 내가 준만큼 받아야 한다는 마음, 이것이 바로 집착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늘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괴로워진다면, 그것은 결과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행한 것에는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결과를 내려놓을 때 마음은 가벼워집니다.
법우 여러분, 또 하나의 집착은 바로 ‘나’에 대한 집착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나’에 대한 생각이 강할수록 우리는 쉽게 상처받고 쉽게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나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아(無我)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각도 변하고 감정도 변하고 몸도 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변하는 것을 붙잡고 “이것이 나다.”라고 고집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에 대한 집착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크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말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나’에 대한 집착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에 대한 집착이 줄어든다면, 그 어떤 말도 나를 크게 흔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과정입니다.
법우 여러분, 또 우리가 놓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옳고 그름에 대한 집착입니다.
우리는 늘 내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틀렸다고 판단합니다.
그 순간 갈등이 시작됩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마음은 점점 거칠어집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겨난다고 하셨습니다.
각자의 입장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틀렸다”는 판단 대신 “다르구나”라는 이해가 생깁니다.
이 한 생각의 전환이 집착을 줄이고, 갈등을 줄이며, 마음을 평안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이 반복될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현재를 괴롭게 하고, 미래까지 어둡게 만듭니다.
그래서 수행은 과거를 내려놓는 연습입니다.
과거를 놓을 때 현재가 살아나고, 현재가 살아날 때 미래가 밝아집니다.
법우 여러분, 집착은 항상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잃을까 봐 두렵고, 변할까 봐 두렵고, 사라질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놓으면 두려움도 함께 사라집니다.
붙잡고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지, 놓아버리면 더 이상 두려울 이유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집착이 없는 곳에는 슬픔도 없고 두려움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탈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내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릴 수는 있습니다.
“아, 내가 지금 붙잡고 있구나.”이 알아차림이 시작입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이미 집착은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 속에서 지혜가 자라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순간이 오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붙잡고 있는 것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그 가벼움 속에서 참된 평안이 피어나게 됩니다.
집착을 줄이는 만큼 평안은 커집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서 하나를 내려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작은 내려놓음이 오늘 하루를 평안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엇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붙잡고 그것이 곧 나인 것처럼 살아왔지만, 실은 그것들이 나를 무겁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붙잡고 있을 때는 그것이 나를 지켜주는 것 같고, 그것이 있어야 내가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그 붙잡음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하고 더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놓는 순간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묶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숨이 트이듯 편안해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평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오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가 주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그 자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음을 조용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붙잡으려고 하지만, 삶은 오히려 덜어낼수록 맑아지고 비울수록 넓어집니다, 그래서 수행은 더 채우는 일이 아니라 비워내는 연습이며, 더 얻는 길이 아니라 내려놓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오거든 잠시 멈추어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그리고 그 붙잡음을 조금만 내려놓아도 괜찮겠는가 하고 조용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물음 하나가 마음의 방향을 바꾸고, 그 작은 내려놓음 하나가 하루의 결을 바꾸며, 그 변화가 쌓여 삶 전체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바꾸어 갈 것입니다.
집착을 줄이면 평안은 저절로 커집니다, 억지로 평안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특별한 방법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하나씩 놓아갈 때 평안은 자연스럽게 우리 삶 속에 스며들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도 너무 많이 내려놓으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 하나만이라도 내려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한 가지의 내려놓음이 마음을 밝히고 삶을 가볍게 하며, 결국에는 더 큰 자유와 평안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이 단순하지만 깊은 이치를 오늘 하루 온전히 살아가시기를 발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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