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방송게시판
|
|
|
|
![]()
| 5월 26일(화) 아침방송법문 :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자비의 시작입니다.” |
|
|
2026-05-26 07:55:55, 조회 : 289, 추천 : 0 |
|
|
|
불기 2570년 5월 26일(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자비의 시작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친구와 동료들과도 인연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 “이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은 가까운데 마음은 멀어질 때가 있고, 같은 집에서 살아도 서로의 마음을 몰라 외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인데도 작은 말 한마디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힘든 것은 크게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아픔은 잘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 상처는 오래 기억하면서도 상대의 상처는 쉽게 지나쳐 버립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이야기하시기 전에 먼저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법문의 주제를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자비의 시작입니다.”라고 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비라고 하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큰일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큰돈을 보시하거나 특별한 선행을 해야만 자비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는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시작됩니다.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상대의 사정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쉽게 화내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비의 첫걸음입니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움은 미움으로써 사라지지 않고 자비로써 사라진다.”
참으로 깊은 말씀입니다.
사람은 미움을 미움으로 갚으려 할 때 더 큰 괴로움 속으로 들어갑니다.
화를 화로 갚으면 관계는 더욱 멀어지고 마음의 상처도 깊어집니다.
그러나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조금씩 달라집니다.
상대도 나처럼 힘든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고, 상대도 자기 나름의 사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미움은 줄어들고 자비의 마음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법우 여러분,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나 부족함이 있고 실수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실수에는 엄격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실수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남이 실수하면 쉽게 비난하고 판단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상대를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유마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자기 허물을 먼저 살펴라.”
이 말씀은 수행의 핵심이 남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바꾸는 데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이 거칠면 세상도 거칠게 보이고, 내 마음이 부드러우면 사람도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결국 수행은 상대를 억지로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로운 사람은 남을 쉽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헤아리려 노력합니다.
법우 여러분. 가정 안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이해하려 해야 하고,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자기 말만 하려고 하면 마음은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해 보면 갈등은 훨씬 줄어듭니다.
사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엽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의 아픔을 들을 줄 알고, 상대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다투고, 자기 생각과 다르면 이해하려 하기보다 틀렸다고 단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늘 중도의 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상대의 입장도 살펴보며, 미워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연약합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웃고 있어도 외로운 사람이 있고, 말없이 지내도 마음속 눈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아픔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힘들어하는 가족을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이런 작은 마음들이 모여 큰 자비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공덕을 매우 크게 여기셨습니다.
잡아함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남에게 평안을 주는 사람은 자신도 평안을 얻는다.”
참으로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화를 내면 결국 자기 마음도 괴로워집니다.
남을 미워하면 자기 마음도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남을 이해하려 하면 자기 마음도 부드러워지고 평안해집니다.
결국 자비는 남을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수행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도 가까운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네 보시기 바랍니다.
“수고했어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짧은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살리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큰 공덕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도 결국은 중생들의 아픔을 이해하시고 괴로움을 덜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처님의 제자라면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자비의 시작이고, 자비의 마음이 평화를 만들며, 그 평화가 결국 우리 삶을 밝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도 법우 여러분 모두가 따뜻한 이해의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가족과 이웃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자비로운 불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인연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애쓴다고 하지만 자녀의 마음을 모를 때가 있고, 자녀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할 때가 있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집에서 오래 살아도 서로의 외로움과 아픔을 몰라 서운함이 깊어질 때가 있습니다.
결국 사람의 관계를 오래 이어주는 것은 말솜씨도 아니고 조건도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자비의 시작을 “상대의 괴로움을 헤아리는 마음”에서 찾으셨습니다.
화엄경에서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중생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참으로 깊은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높은 곳에서 중생을 내려다보신 분이 아니라, 중생의 아픔 속으로 직접 들어가 그 괴로움을 함께 느끼신 분이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셨고, 병든 사람의 두려움을 이해하셨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까지도 깊이 헤아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 속에서 위로를 얻고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할 때 비로소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살다 보면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참 많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고, 가까운 사람의 말 한마디 때문에 오래 마음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왜 나에게 저럴까.”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행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저 사람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바로 그 마음이 이해의 마음이고 자비의 시작입니다.
물론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마음도 힘든데 남의 마음까지 헤아린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도 결국은 자기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이고, 절을 하는 이유도 자기 교만을 내려놓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비로소 남의 아픔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져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강한 사람이 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강한 사람보다 부드러운 사람이 더 큰 사람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억지로 상대를 이기려 하지 않고, 화를 참고 이해하려 하는 사람.
자기 생각만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으로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해는 지혜에서 나오고, 자비는 이해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분노를 이기는 것은 참는 데 있고, 악을 이기는 것은 선에 있다.”
화를 화로 갚으면 괴로움은 더 커집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이해하려 하면 마음의 매듭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상대도 나처럼 부족한 존재임을 알게 되고, 실수하며 살아가는 중생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순간 미움은 줄어들고 마음에는 연민과 자비가 생겨나게 됩니다.
결국 수행은 남을 심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젊을 때는 자기주장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을 품는 마음이 중요해집니다.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까지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도 부드러워집니다.
끝까지 미워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도 괴롭지만, 이해하려는 사람은 자기 마음도 밝아집니다.
그래서 자비는 결국 자기 자신을 살리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기보다 한 번 더 이해하려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주시고, 서운했던 사람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는 마음 하나가 관계를 살리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자비의 시작이고, 그 자비가 결국 세상을 밝히는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법우 여러분 모두의 마음속에 따뜻한 자비의 연꽃이 피어나기를 두 손 모아 발원합니다. |
|
|
|
|
|
|
|
|
|
|
|
|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