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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6일(금) 아침방송법문 : “남의 허물보다 먼저 내 마음을 살펴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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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6 07:49:12, 조회 : 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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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10월 16일(금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남의 허물보다 먼저 내 마음을 살펴봅시다.”
오늘 법문의 주제는 “남의 허물보다 먼저 내 마음을 살펴봅시다.”입니다.
법우 여러분, 하루를 지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거슬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가까운 도반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하면서도, 그 일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좀처럼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저 사람은 왜 늘 자기 생각만 할까.”
“어째서 저런 말투로 이야기할까.”
이런 생각을 되풀이하다 보면 처음에는 작은 불편함이었던 것이 어느새 그 사람 전체를 싫어하는 마음으로 커지기도 합니다.
한 번 약속에 늦은 사람을 두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내 말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 사람을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그 사람의 어느 한순간이지,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간과 사정은 아닙니다.
한 가지 행동은 바로잡아야 할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됨됨이를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 제50게송에서 이러한 뜻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남의 허물이나 남이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살피기보다, 자신이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살펴보라.”
남을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남의 말이 거칠면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짧게 대답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말을 중간에 끊었던 일은 쉽게 지나칩니다.
남의 행동에는 엄격한 잣대를 대면서 내 행동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전화가 오지 않으면 “부모 생각은 하지도 않는구나.”하고 서운해집니다.
그런데 막상 자녀가 전화했을 때, 안부를 듣기보다 걱정과 잔소리부터 길게 늘어놓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자녀의 무심함만 생각하던 마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면, 다음 통화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내 몫이 보입니다.
“요즘 많이 바쁘지, 밥은 잘 챙겨 먹니.”
이렇게 안부부터 묻고 이야기를 들어준 뒤에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구나, 가끔 짧게라도 연락해 주면 좋겠다.”라고 전해볼 수 있습니다.
서운함을 참기만 하는 대신,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상대가 받아들이기 좋은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법우가 인사를 건성으로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곧바로 “나를 무시하는구나.”라고 결론을 내리면, 다음에 만날 때에는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집니다.
상대는 그 표정을 보고 또 다른 오해를 할 수 있으니, 확인하지 않은 생각 하나가 인연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때 “내가 지금 서운하구나.” 하고 먼저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리고 상대가 내 인사를 제대로 들었는지, 급한 일이 있었는지, 몸이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아직 모른다는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내 느낌은 소중하게 살피되, 그 느낌만으로 상대의 속마음까지 단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내 마음을 먼저 살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 모두 내 책임으로 돌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가 분명히 잘못한 일이 있다면 필요한 말을 하고, 반복되는 무례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다만 화가 시키는 대로 반응하기 전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차분히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마음을 살피지 못하면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말이 나오기 쉽습니다.
마음을 살피고 나면 “아까 그 말씀은 제게 상처가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같은 불편함을 전하더라도 사람 전체를 공격하는 말과 행동의 변화를 요청하는 말은 서로 다릅니다.
자신을 돌아볼 때에는 잘못한 일뿐 아니라 하지 못한 일도 함께 살펴보십시오.
고맙다는 말을 미루지는 않았는지, 내 이야기를 하느라 상대의 어려움을 듣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먼저 풀 수 있었던 오해를 자존심 때문에 오래 두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피다 보면 상대가 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누군가의 허물이 눈에 들어오거든, 말을 꺼내기 전에 숨을 한 번 편안히 쉬어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에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은 없는가” 하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짧은 멈춤이 성급한 판단을 줄이고, 나와 상대를 조금 더 바르게 이해하는 수행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다른 사람의 허물이 자꾸 눈에 들어올 때에는 내 마음에 어떤 기준이 놓여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도 당연하게 여길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상대가 내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서로의 차이를 알아보기 전에 잘못부터 지적하게 됩니다.
가족끼리 함께 집안일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나는 사용한 물건을 곧바로 제자리에 놓아야 마음이 편하지만, 상대는 다른 일을 마친 뒤 한꺼번에 정리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왜 당신은 늘 정리를 안 해요”라고 말하면, 상대는 자신이 하려던 수고마저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함께 쓰는 공간이니 서로 지켜야 할 약속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약속을 정하기에 앞서, 상대가 일을 하는 방식과 형편을 들어보는 과정도 있어야 합니다.
내 방식만 옳다고 생각하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면, 서로 덜 불편하게 지낼 방법을 함께 찾을 수 있습니다.
사찰에서 여러 법우님이 함께 봉사할 때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일에 익숙한 분의 눈에는 처음 오신 분의 손길이 답답하게 보일 수 있고, 조용히 일하는 분에게는 말이 많은 분이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다고 정성이 없는 것은 아니며, 표현하는 모습이 다르다고 신심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잘하는 일에서는 다른 사람의 서툰 점이 쉽게 보입니다.
그럴수록 “이것도 못하십니까” 하는 말보다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함께 해보시지요” 하는 말이 필요합니다.
내 능숙함이 다른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데 쓰이지 않고, 함께할 힘을 북돋우는 데 쓰인다면 그것이 자비로운 실천입니다.
그리고 남의 잘못을 말하고 싶을 때에는 그 말을 꺼내려는 뜻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말 그 일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인지, 쌓인 화를 풀고 싶은 것인지, 내가 옳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것인지 물어보십시오.
겉으로는 충고하는 말이어도 속에는 서운함이나 우월감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발견했다고 해서 자신을 부끄럽게 몰아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옳다는 말을 듣고 싶었구나,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 속상했구나” 하고 솔직하게 알아차리면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볼 수 있어야 그 마음에 끌려가지 않고 필요한 말을 고를 수 있습니다.
특히 마음이 상했을 때에는 당사자보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집니다.
누군가 내 편을 들어주면 잠시 속이 시원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거듭하는 동안 상대를 향한 미움이 더 굳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직 확인하지 않은 사정까지 덧붙이면 작은 오해가 여러 사람 사이의 불편함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믿을 만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문제를 풀기 위한 의논인지,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이야기인지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말을 전하기 전에 “이 이야기가 해결에 도움이 될까, 당사자 앞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말할 수 있을까”하고 살펴보십시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지적을 듣는 내 태도입니다.
나는 좋은 뜻으로 한 말이라고 생각해도 상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때 곧바로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느냐”라고 하면 상대의 마음을 들을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제 말이 그렇게 들리셨군요. 어떤 부분이 불편하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렇게 먼저 듣고 나면 내 뜻을 설명할 때에도 서로의 마음이 덜 날카로워질 수 있습니다.
내 의도가 좋았다는 사실과 표현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함께 인정할 수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은 늘 나만 틀렸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게도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배울 것은 배우며 고칠 것은 고치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더라도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고, 자신의 허물이 드러나더라도 변명으로 덮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가까운 사람 한 분의 말을 평소보다 끝까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에서 반박할 말을 준비하기보다 “저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을 하실까” 하고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 작은 실천 속에서 남을 판단하느라 바빴던 마음이 잠시 쉬고, 서로를 이해할 자리가 조금씩 넓어질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남의 허물은 오래 바라본다고 쉽게 달라지지 않지만, 내 마음은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돌볼 수 있습니다.
서운함이 일어나면 그 마음을 살피고, 말이 거칠어지려 하면 잠시 멈추며,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먼저 인정해 보십시오.
그 작은 실천이 서로의 마음을 덜 다치게 하고, 불편해진 인연을 풀어가는 시작이 됩니다.
오늘은 누군가를 탓하는 말 한마디를 줄이고, 내 말과 행동을 한 번 더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다면 지금 전하고, 미안한 일이 떠오른다면 짧게라도 사과하십시오.
자신을 돌아본 마음이 따뜻한 행동으로 이어질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 생활 속에서 살아납니다.
남에게는 사정을 헤아리는 너그러움을, 자신에게는 허물을 인정하는 솔직함을 지녀봅시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서로 배우고 고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법우 여러분의 오늘이 내 마음을 맑히고 소중한 인연을 따뜻하게 가꾸는 하루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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