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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불가 부르는 능인 스님
眞虛性宗 2007-03-29 11:35:22, 조회 : 2,074, 추천 : 0

노인위한 종묘공연 1주년…랩으로 찬불가 부르는 능인 스님

태고종 종단에서 톡톡 튀는 스님으로 통하는 능인 스님. 랩과 디스코, 트로트로 찬불가를 부르는 독특한 포교 활동으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행복사’라는 포교원을 열면서 시작한 종묘 공연이 벌써 1주년을 맞이했다. 힘닿는 데까지 공연을 계속할 것이라는 능인 스님의 꿈은 복지 사찰 건립이다.


가난한 동네에 자리한 ‘행복사’

미아동은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각양각색의 아파트가 길게 늘어선 도시를 상징하는 아파트 단지와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길로 내려가 큰 길 하나를 건너면 숨 쉴 틈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낮은 담벼락의 궁핍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나온다. 아직도 이런 집들이 있나 싶을 정도로 초라해 순간 움찔하지만, 이곳 역시 사람들이 모여서 그네들 삶을 사는 곳이다.

‘행복사’라는 정감 어린 이름의 포교원이 지난해 3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행복사는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게(?) 6~7평 정도로 작은 사찰이다. 별다른 시설 없이 작은 부엌과 화장실, 관음지장이 있는 법당이 전부다. 눈에 띄는 것은 포교원 한켠에 있는 키보드다.

사찰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갈 정도로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았다. 4~5개의 연등과 행복사라는 문패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여느 동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 줄 알았을 거다.

행복사를 운영하는 스님은 디스코와 랩, 트로트로 찬불가를 부르는 능인 스님(53, 속명 노신배)이다. 서울 둔촌동에 있는 백운사에서 나와서 미아동에 새롭게 터를 잡은 곳이다. 노래 공연, 위문 공연 등의 바쁜 일정 탓에 법회는 한 달에 두 번밖에 하지 못한다. 능인 스님은 여전히 노래 포교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행복사라는 이름은 전국에서 유일한 이름입니다. 종파가 다르건 종교가 다르건 목표는 사람들의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행복을 주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행복사라고 이름을 지었죠. 아직은 포교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아서 교인은 별로 없어요. 60명 정도 되는데, 이곳 신도들도 가난한 사람이 많아서 서로 도와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능인스님의 포교원 행복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 마련되어 있다. 현재 신도는 약 60명으로 아직은 소규모로 운영된다.(사진 위) 종묘공원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능인스님.
능인 스님이 백운사를 나오게 된 것은 유명세 때문이었다. 능인 스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방송과 잡지기자들 때문에 눈치를 봐야 했고 사찰에서도 스님의 활동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흔여섯 살에 출가해 한국불교금강선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스님이 되어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백운사였다. 그런 곳에서 나와야 했기에 마음과 몸이 힘들었지만 그때도 노래와 찬불가가 스님을 다잡아줬다. 그때의 어려움을 노래에 담아서 3집 앨범을 발표했다.

능인 스님은 포교원을 연 뒤 노래 포교를 더욱 열심히 했다. 앰프와 모니터도 주변의 도움으로 마련했고, 본격적인 노래 수업을 위해 키보드도 장만했다. 그동안 해보고 싶던 지하철 공연도 1년에 4번 정도 참여했다. 그리고 교도소 위문 공연, 산사음악회 등 도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다.

무엇보다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노인들이 많이 찾는 종묘에서 연 문화공연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했고, 지난 10월 15일 종묘 공연 1주년 기념공연을 열기도 했다. 스님은 이 공연에서 키보드를 직접 연주하면서 찬불가와 대중가요 10여 곡을 불렀다. 그리고 이 공연에 무료로 봉사활동을 하는 가수와 국악인 등의 연주와 노래로 3시간 공연을 무사히 끝마쳤다.

“처음 시작할 때는 고생도 많았어요. 원래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 기금 마련 공연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구청에서 성복을 입고 기금 마련 공연을 하면 불법이라고 해서 공연을 못하게 해요. 구청 직원에게 공연을 통해 마련된 기금을 구청이 직접 관리하면 되지 않느냐고 해도 자신들은 기금을 관리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종묘공원에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구청이 원하는 서류를 매달 제출한 뒤 공연을 하고 있어요.”

키보드를 치고 노래를 부를 때 가장 행복하다는 능인 스님.
처음 종묘에서 공연할 때 황당한 경우도 많이 당했다. ‘불당에서 목탁이나 치지 왜 이런 곳에 와서 노래를 부르느냐?’ ‘처음 이렇게 시작한 사람들도 나중에는 요구하는 게 있다’ 등 욕도 많이 먹었다. 노래를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함께 무대에 선 자원봉사자 가수들도 그런 분위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4번 정도 공연을 하고 난 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 분도 생겼고, 여기저기서 박수도 터지기 시작했다. 능인 스님이 무대에서 내려와 노래를 부르면 함께 어울려 춤추는 어른도 생기기 시작했다. 좋은 일 한다고 해도 불신하던 사람들도 스님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공연을 한 날 가슴 뭉클한 경험을 했어요. 공연이 끝났는데, 한 할아버지가 저를 안고 펑펑 우는 거예요.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집을 나온 지 10년이 넘었다고 하시더군요. 제 공연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이제는 집에 간다면서 고맙다고 우시는 겁니다. 정말 기뻤어요. 종묘 공연은 제가 힘이 닿는 한 평생 할 예정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 사찰 건립이 마지막 꿈

종묘 공연이 어른들을 위한 것이라면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계획하고 있는 것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연이다. 10월 29일 처음 공연을 올렸다.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의 모습을 알려주고 싶어서 계획했다. 대학로 공연을 마친 뒤에도 스님의 공연 스케줄은 빡빡하게 채워져 있다. 11월 3일 충주교도소 공연, 11월 13일 천안개방교도소 공연, 12월 1일 천안 소년교도소 공연, 12월 15일 홍성교도소 공연 등이 잡혀 있다.

“포교원 운영도 중요하죠. 사찰이 크지 않아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지 못하니 아쉬운 것도 많아요. 노래 공연 때문에 법회도 자주 열지 못하고. 하지만 제 활동의 목적은 어르신들의 복지 사찰을 만드는 것입니다. 양로원과 요양원이 있는 사찰을 만들고 싶어요. 뜻을 함께하는 독지가도 몇 명 있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네요. 그래도 꿈은 이뤄지지 않겠습니까(웃음).”

전문적으로 작곡 교육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입에서 흥얼거리는 음악을 악보에 옮겨놓으면 그것이 노래가 된다.
1953년 경북 김천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시의원이던 아버지는 5.16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모아놓은 재산은 빚보증으로 모두 날려버렸고, 화병으로 아버지는 능인 스님이 열두 살 때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밥을 굶는 것이 일상이 됐고, 능인 스님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뒀다. 정규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중퇴가 전부다.

그 후부터 식당 웨이터, 막노동, 자동차 정비공 등 먹고살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능인 스님을 지탱해준 것은 불교 경전이었고, 언젠가는 불교에 귀의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스물여섯 살에 결혼해 스물일곱에 첫딸을 낳았다.

음악 교육이라고는 전혀 받아보지 않았지만 노래와 인연이 닿은 계기가 있었다. 20대 후반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을 때 꿈을 꿨는데, 자신이 노래를 만들고 있던 것.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난 뒤 꿈에서 부를 노래를 적어 놓았다. 작곡 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 그때부터 입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을 오선지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의 반대 없이 마흔여섯 살에 불교에 귀의했다. 태고종 승단이었기에 결혼의 유무는 큰 결점이 되지 않았다. 그 후 능인 스님은 입으로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에 경전 구절을 얹어 찬불가를 만들기 시작했고, 랩과 디스코로 찬불가를 부르는 스님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

노래로 포교 활동을 하는 이유는 복지 사찰 건립을 위해서다. 돈도 되지 않고 몸과 마음도 피곤하지만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면 노래 포교는 멈출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언젠가는 복지 사찰 건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 글 / 최영진 기자 ■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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