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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의 불교계소식

 은처승은 비구종단 조계종을 떠나라.
眞虛性宗 2007-02-23 09:36:15, 조회 : 2,210, 추천 : 0
조계종의 은처승(사실혼 관계의 아내를 둔 스님) 문제를 전격적으로 거론한 칼럼이 교계 언론에 게재돼 불교계 안팎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구종단을 격률로 삼고있는 조계종에 대해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높다.

불교계 인터넷 매체인 <불교포커스> 논설주간인 향산거사는 12일 홈페이지에 '『홍길동전』·『가시나무새』 그리고 조계종'이라는 칼럼을 통해 은처승 문제를 들먹이며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못하니 어찌 사람이랴?"라고 주장했다.

향산 거사는 칼럼을 통해 소설 홍길동전에서 길동이 부형은 있으되 호부호형을 못하니 심장이 터질 지라 어찌 통한치 아니하리요라는 대목을 열거했다. 거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여류 작가 콜린 맥클로우의 소설 가시나무새의 랄프신부와 매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빈의 이야기도 인용했다.

거사는 '아들을 아들이라 부를 수 없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기막힌 현실'을 담은 두 소설을 예로 들며 "한국불교 근대사에서 비구와 대처간의 피나는 싸움의 한쪽에서는 청정 비구·비구니 교단인 조계종을 확립하였다고 공언하지만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향산 거사는 조계종 중진 스님의 말을 빌어 "중진 이상 조계종 스님의 상당수에게 숨겨놓은 아내와 자식이 있을 것"이라면서 "'누구누구'라고 하면 잘 알 정도로 알려진 분들의 숨겨놓은 가족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시나무새의 천주교 신부 랄프와 매기 사이의 사랑처럼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갖게되고 그래서 있어서는 안 될 사랑을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며 "이런 경우까지 모두 한 묶음으로 해서 나쁜 놈들이라고 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향산 거사는 "하지만 오늘날 처럼 밝은 세상에 아들을 아들이라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드러내놓을 수 없는 이 관계가 최소한 청정 비구교단을 표방하는 조계종단에 적을 둔 스님들에게 있어서 안 될 일"이라며 "떳떳하게 결혼을 하고 재가신자로 살아가든가 그도 아니면 계율과 종법으로 결혼을 허용하는 종단으로 적을 옮겨 대처승으로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불교계 관계자는 "일부 스님들이 은처승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타종단 타종교에 뭐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 불도를 닦기위해 절을 찾고 스님을 찾는 불자들에게는 과연 면목이 설 지 의심스럽다. 호법부가 정말 해야 할 일이 이런 것을 단속해 불조혜명의 가르침을 호지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불교포커스에 글을 올린 '조계종도'라는 필명의 네티즌은 "언제까지 쉬쉬하며 덮어두고 혹 불교의 위상이 떨어질까봐 감추어주는 것이 가능할까요"라고 의문을 표한 뒤 "조계종단내 가족을 숨겨놓은 비청정 승려를 가려내는 일을 해야하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재정문제를 포함한 일체의 비승가적 행위가 끝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향산거사가 불교포커스에 올린 칼럼 전문을 전재한다.  

『홍길동전』·『가시나무새』 그리고 조계종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못하니 어찌 사람이랴?  
맨 처음 이야기 - 『홍길동전』

『홍길동전』은 재미있다. 책으로 읽어도 좋지만, 명창 박동진의 구수한 판소리로 들으면 더욱 좋다.

‘가슴을 가장 많이 울리는 장면’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홍길동이 혁명가가 되어 율도(栗島) 왕이 되는 대목에서 속이 후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두 번째 장 「천대받는 설움」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 『홍길동전』 전체를 드러내주는 하이라이트로 다가온다.

길동이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문득 서안(書案- 책상)을 밀치고 탄(歎) 왈,

“대장부 세상에 나매 공맹(孔孟 - 공자와 맹자)을 본받지 못하면 차라리 병법(兵法)을 외워 대장인(大將印)을 허리에 빗겨 차고 동정서벌(東征西伐)하여 국가의 대공(大功)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萬代)에 빛냄이 장부의 쾌사라. 나는 어찌하여 일신(一身)이 적막하고 부형이 있으되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 하니, 심장이 터질 지라, 어찌 통한(痛恨)치 아니하리요.”

하고 말을 마치며 뜰에 내려 검술을 공부하더니,
…

길동이 공(公; 아버지)에게 재배(再拜)하고 고하여 말씀드리되,

“소인이 평생 설운 바는 대감(大監) 정기로 당당한 남자 되었사오매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 -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이 깊거늘, 그 부친을 부친이라 못하옵고 그 형을 형이라 못 하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리까?”
…

하루는 길동이 어미 침소에 가 울며 고하여 말씀드리되,

“소자(小子) 모친과 더불어 전생연분(前生緣分)이 중하여, 금세(今世)에 모자(母子) 되었사오니, 은혜 망극하온지라. 그러나 소자의 팔자 기박(奇薄)하여 천한 몸이 되오니 품은 한(恨)이 깊사온지라. 장부가 세상에 처하며 남의 천대받음이 불가하온지라. 소자 자연 기운을 억제치 못하여 모친 슬하를 떠나려 하오니 복망(伏望) 모친은 소자를 염려 마시고 귀체(貴體)를 보중(保重)하소서.”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아버지에게 드러내놓고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이런 일이 『홍길동전』에만 나오는 가상현실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런 기막힌 현실에 놓인 인물이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홍길동처럼 강한 의지를 타고 난 사람은 혁명가의 길을 걸어 영웅이 되거나 반역자의 수괴로 몰려 비참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냥 현실 조건을 인정하고 그 조건을 활용해 세상에서 자기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고, 아들 딸 낳고 평범한 중인(中人)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도 저도 아닌 사람은 투전판에 뛰어들어 다른 사람들의 등을 치거나, 사기꾼 · 난봉꾼이나 조직 폭력배가 되어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몹쓸 놈’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보아도,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고통을 겪던 사람이 영웅호걸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세상에 해악(害惡)만 끼치는 문제아(問題兒)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니 신분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홍길동전』에나 나올법한 이런 일들이 오늘처럼 환한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 『가시나무 새』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여류 작가 콜린 맥클로우(Colleen McCullough)의 소설 『가시나무새(The Thornbirds)』는 ‘천주교 신부 랄프와 목장주의 조카딸 매기 사이의 금지된 사랑’이 주된 내용이다.

우리에게는 소설보다 ‘TV 미니 시리즈’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라는 평을 받는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배경은 1910년대의 오스트레일리아. 드로레닥 목장에 새로 부임해 온 젊은 신부 랄프는 남자들만 득실대는 집안에서 외롭게 자란 매기를 딸처럼 자상하게 보살피게 된다. 세월이 흘러 이윽고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매기는 랄프에게 숨길 수 없는 사랑을 고백하게 되고, 랄프는 그녀와 신(神)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번민하다 결국 그곳을 떠나버린다. 매기는 그렇게 자신을 떠난 랄프에 대한 오기와 반발로, 거친 사나이 루크와 결혼하게 된다.

매기는 결혼 후 아이까지 갖게 되지만, 결국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르고 오직 랄프에 대한 사랑만으로 힘든 역경을 이겨낸다.

랄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갈등을 겪던 매기는 마침 찾아온 랄프와 사랑을 나누게 되고, 그 결과로 임신한 후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낳는다. 이 출생의 비밀은 어머니 피오나만이 안다.

19년이 지난 크리스마스, 랄프가 추기경이 되어 드로레닥 목장을 찾아와 두 사람이 재회하고 훤칠한 청년이 된 아들 빈이 “사제가 되고 싶다”고 간청하자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매기는 랄프와 신(神)을 원망하면서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절규한다.

국내에 방영된 TV 미니시리즈 <가시나무새>에서, ‘아들을 아들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에서 랄프 신부가 아들 빈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모습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아들을 아들이라 부를 수 없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기가 막히는 현실’…

그래도 이 경우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될 정도로 아들 빈이 반듯하게 자라 주었으니 괜찮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결혼이 금지된 수행자나 성직자와 사랑의 결과는 대체로 이 정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다.

세 번째 이야기 - 청정 승단에서 ‘숨겨진 가족’은?

한국 불교 근대사는 이른바 ‘비구와 대처’간의 피나는 싸움과 그 파장으로 이어져 왔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아 아닐 것이다.

한쪽에서는 그래서 “청정 비구 · 비구니 교단인 조계종을 확립하였다”고 공언하지만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계종의 어느 중진스님이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중진 이상 조계종 스님의 60% 이상에게 숨겨놓은 아내와 자식이 있을 것이다”라고 토로(吐露)할 정도이고, 이미 중진을 넘어서 “누구누구”라고 하면 잘 알 정도로 알려진 분들의 ‘숨겨놓은 가족’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실정이다.

위에서 예로 든, 『가시나무새』의 천주교 신부 랄프와 매기 사이의 사랑처럼,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고 그래서 ‘있어서는 안 될 사랑’을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다. 이런 경우까지 모두 한 묶음으로 해서 “나쁜 놈들!”이라고 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밝은 세상에 ‘아들을 아들이라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드러내놓을 수 없는 이 관계가 최소한 ‘청정 비구 교단’을 표방하는 조계종단에 적을 둔 스님들에게는 있어서 안 될 일이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해서, 그래서 아이까지 갖게 되었다면 떳떳하게 결혼을 하고 재가신자로 열심히 살아가든가 그도 아니면 계율과 종법으로 결혼을 허용하는 종단으로 적(籍)을 옮겨 대처승으로 살아가는 것이 옳다.

“그 부친을 부친이라 못하고 그 형을 형이라 못하니 어찌 사람이랴?”는 절규는 홍길동 하나로 족하다.

청정(淸淨)한 조계종단의 후손들 사이에서 이런 절규가 나오는 일만은 제발 없어야 한다. 부처님을 속이고, 사부대중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러내놓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자식’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심어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중죄(重罪)가 있을까?

자료출처 : 불교닷컴(www.bulkyo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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