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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눈물
무영탑 2008-02-01 10:28:59, 조회 : 2,053, 추천 : 3
1964년 12월 7일 대통령 전용기가 없어 서독에서 보내준 Lufthansa 여객기에 60여명 일반승객들과 함께 일곱 군데를 경유 28시간 만에야 도착, 그래도 국빈인데 숙소도 10평 남짓한 작은 방, 이 어려움을 마다않고 차관을 받아 수출산업을 육성하려했다. 그 때 미국조차 무상원조를 받는 나라에는 차관을 줄 수 없다고 했고, 일본은 국교수립도 안된 상태, 외자도입이 賣國으로 비판받던 시절,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준 대가로 서독만 4,000만 달러의 차관 약속했고, 경부고속도로의 구상은 이때 박 대통령의 서독이 자랑하던 Autobahn을 직접 주행해본 뒤 필요성을 실감하셨다.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단상에 오르시는 순간 함보른탄광 광부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 차츰 커지던 애국가 소리는 끝내 울음소리로 가사를 대신 대통령 부부, 300여명의 우리 광부와 50여명의 우리 간호사 모두가 고개를 박고 어깨를 들먹였다.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박정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더니 연단으로 걸어나갔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대통령의 준비된 연설은 여기서 몇 구절 더 나가지 못했다. 이 구석 저 구석의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해갔기 때문. 박대통령은 연설원고를 옆으로 밀쳐버렸다.

박대통령은 원고를 보지 않고 즉흥 연설로 광원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은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 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연설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함부론 광산회사측에서 박대통령에게 한국인 광부가 지하 3.000m에서 캐 낸 석탄으로 만든 재떨이를 기념으로 선물했다. 박대통령과 육영수는 울어서 눈이 부어 시선을 바로 두지 못했다. 광부들의 기숙사를 둘러보고 차로 향하자 어느새 수백명의 우리 광부들이 운집해 있었다. 몇몇은 작업복차림에 갓 막장에서 나와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박대통령 가까이 있던 광부들이 검은 손을 내밀었다. "각하 손 한번 쥐게 해 주세요. 우리를 두고 어떻게 그냥 떠나시렵니까"?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차에 오르자 광부들은 일제히 만세! 만세! 대한민국만세! 대통령 각하 안녕히 가십시오. 박대통령의 차량이 뒤스부르크의 데마크 철강회사를 향해 아우토반에 올랐다. 박대통령은 차 중에서 눈물을 멈추려 하셨고 나란히 앉은 뤼브케 대통령이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자기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칠순 노인인 뤼브케 대통령이 사십대 후반의 젊은 대통령의 눈물을 직접 닦아주었다. 그리고 우정어린 격려를 했다.

울지 마십시오, 잘사는 나라를 만드십시오, 우리 돕겠습니다. 분단된 두 나라가 합심해서 경제부흥을 이룩합시다.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경제 건설뿐입니다. 서독실정을 잘 알아 우리광부와 간호원들이 초과 근무를 자청, 몸이 부서 저라 일해서 고향에 송금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함께 탓 던 백영훈 통역관 들었었고, 통역관도 울먹이며 겨우 통역을 마친 뒤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어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야 했다고 한다.

“광원 여러분, 간호사 여러분, 가족이나 고향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하여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결국 대통령은 연설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본인도 울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생을 하시는줄 알았다면 여러분들을 이곳까지 보내지 않았을 것을... 박대통령은 광부들에게 파고다담배 500갑을 선물로 나눠주고, 돌아갈 차에 올랐다. 차 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애쓰는 박대통령 1964년 12월 10일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있었던 일.

그 때 광부는 100대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63년 파독(派獨) 광부 500명 모집에 4만6000명이 몰려들었고, 상당수가 대학졸업자와 중퇴자들 당시 남한 인구 2400만명에 실업자만도 250만명이 넘었다. 이런 시절이니 매월 600마르크(160달러)의 직장에 지원자가 밀려드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탄광중에도 가장 힘든 루르탄광 지하 1000m와 3000m 사이 막장에서 1m 파들어갈 때마다 4~5마르크를 받았다. 66년 12월, 3년의 고용기간을 채우고 142명의 파독광부 제1진이 귀국했을 때 거의 전원이 1회 이상의 골절상 병력을 안고 있었다. 기계작동 독어를 읽지 못해 사망자도 있었고, 실명한 사람도 있었다.

간호사의 사정도 비슷 66년 1월 128명이 독일로 떠날 때의 고용조건은 월 보수 440마르크(110달러), 독일 땅에 도착한 한국 간호사들이 처음 맡았던 일은 가장 악조건인 알콜 묻힌 거즈로 사망한 사람의 몸을 닦는 작업, 또는 정신병원등에서 일했다. 70년대 중반에는 서베를린에만 한국 간호사가 2000명이 넘었고 66~76년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가 1만30명, 광부들은 63~78년까지 7800여명이 건너갔다. 이들의 송금액은 연간 5000만달러로 한때 GNP의 2%대에 달했다. 우리 광부가 서독으로 떠날 무렵 필리핀의 1인당 GNP는 257달러, 한국은 79달러였다.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이때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 말을 듣고 나도 주체할 수 없어 눈물을 흘렸다.

※ 나는 이번 10일간의 유럽여행에서 위의 이야기를 독일의 현지 가이드에게 들었다. 이 가이드는 독일 온지 10년째로 박사학위도 받았으나 국내에 자리가 없어 귀국이 늦어 진다고, 한국에서 대학시절 본인도 대모도 시위도 불만도 많이 했으나 이제는 반성을 많이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여래화 [2008-12-08] : 너무도 소중한 글이네요 어느젇도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아픈 저도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눈물을 멈출수가 없네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잘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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