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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벼슬이 용벼슬’ 된 불교계
眞虛性宗 2009-03-09 06:07:26, 조회 : 2,151, 추천 : 0
불가에는 오래 전부터 ‘중 벼슬은 닭 벼슬’이란 이야기가 격언처럼 내려왔다. 부모와 형제, 사랑하는 사람들, 세속적 욕망과 명예, 지위 등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출가를 한 분들이 스님들이시니, 그 분들에게 절집의 벼슬이란 한낱 수행의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큰절의 주지를 맡으라고 하면 온갖 이유를 붙여서 피해 다녔고, 주지를 맡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으면 야반도주하듯 절에서 나와 새로운 수행처를 찾았다. 아니면 누군가는 해야 할 자리이니 잠시나마 다른 도반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소임을 맡아 그동안 진 빚을 갚겠다는 지극한 마음으로 주지를 맡았다.

주지 자리뿐만이 아니다. 종단의 주요 요직도 다르지 않았다. 조계종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총무원장의 평균임기가 1년 남짓하다. 수행만 하던 스님들이라 행정에 어두웠던 것도 이유이고, 종단이 안정되지 않았던 것도 한 이유이기는 했지만, 가장 큰 배경은 자리를 탐내지 않거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스님들의 수행풍토였다.

총무원장을 맡았다가도 기회만 오면 걸망을 둘러메고 홀연히 떠나는 스님, 주지를 맡지 않기 위해서 주석해온 절을 떠나는 스님의 모습은, 공부를 위해 모든 것에서 초연해진 수행자상이었다.

주지 자리처럼 행정직은 아니지만, 큰절의 조실 방장 자리도 스스로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믿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맡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선사가 아닌 율사나 강사가, 또 힘 있는 상좌를 둔 노스님이 조실방장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아직 공부가 덜 된 이가 짐짓 선원장을 맡는 일도 없었다. 하심과 수행자의 양심, 공부를 위해 방해가 되는 것은 무조건 피하는 살아 있는 풍토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모습이 때때로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거의 다 사라진 오늘날, 그런 관행들은 모두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미덕이 되었다.

종정 취임을 달갑게 여기지 않아 취임식에도 나오지 않은 성철 스님, 주지자리보다는 산감자리를 더 좋아했던 지월 스님, 지금도 조실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 오직 하심으로 후학을 제접하는 송담 스님, 무소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대원각의 시주를 10년 이상 거절해오다가 끝내 당신의 이름이 아닌 출가본사 이름으로 시주를 허락한 법정 스님 등 생각만해도 신심이 솟고 감동과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스님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런 흐름들은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중앙승가대학의 총장을 한 번 더 맡아달라는 후학들의 간곡한 요청을 끝내 뿌리치고 더 좋은 분을 모시라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수행자로 돌아간 종범 스님, 중앙승가대학 총장에 취임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총장을 맡기엔 나이가 많다’며 물리치고 자취를 감춘 호진 스님 같은 분들은 모든 불자들에게 진한 감동과 함께 뿌듯함을 주는 선지식들이시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중 벼슬을 닭 벼슬’로 보았다는 데 있다. 출가의 본분이 벼슬에 있지 않고 공부에 있음을 일생을 통해 일관해온 분들이기에 어떤 세속적 명예나 지위에도 추호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분들에게 모든 불자의 존경과 신망이 몰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불교계에는 이런 선지식들을 더욱 그립게 만드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중 벼슬을 닭 벼슬이 아니라 용 벼슬로 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적 지탄을 받으면서도 자리에서 물러날 줄 모르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들에게서는 염치를 찾아보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오직 이해관계와 편 가르기만이 횡행할 뿐이다.

어떤 유력한 절의 주지는 승가대학 총장 선출과정에서 자신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 중앙종무기관장 자리에 대한 귄리를 요구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또 어떤 교계 중요기관의 장은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 자리보전과 이해다툼을 위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자리를 지키며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정부에서조차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공문이 날라 왔으니 말문이 막힌다. 교계의 한 대학원대학에서는 스승과 상좌가 학교운영권을 놓고 이전투구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결국 교수들도 갈라지고 물리적 충돌사태로까지 악화됐다. 총무원장 선거나 종회의원 선거, 본사주지 선거 등을 빼놓고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서글픈 일이다.

‘중 벼슬을 닭 벼슬로’ 보는 풍토가 회복되어야 불교가 산다. 닭 벼슬을 용 벼슬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득세하고, 대접 받는 한 한국불교에서 희망을 찾기는 요원하다.


자료출처 : 미디어붓다(www.mediabuddha.net) 이학종 칼럼
자성명 [2009-05-30] :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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