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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불교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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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6 19:16:26, 조회 : 2,11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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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sungsan-1.gif (237kb) 다운 :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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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弔辭
숭산 대종사님!
落葉은 歸根하고 山色은 寂寥하니 삼라만상은 그대로 眞如의 本體를 드러내는 계절입니다. 이 도리를 바로 알면 理事에 구애되지 않고 生死에서 自在를 얻는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문득 대종사의 涅槃 消息을 접하니 그 寂滅의 境地는 너무 깊고 고요해서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마음으로도 商量할 길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제부터는 慈悲의 목소리로 깨우쳐주고 顯正의 손으로 이끌어주시던 眞容을 뵈올 수 없으니 日月은 失色하고 天地는 驚動하고 蒼生은 悲嘆의 강물에 빠졌습니다.
숭산 대종사님!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덕숭산에서 고봉 대화상을 스승으로 축발한 이래 일생 동안 理事無碍한 機用으로 縱橫無盡하며 破邪顯正과 正法宣揚의 깃발을 揭揚한 종문의 大善知識이었습니다.
종단의 風規가 문란하던 때에는 百尺竿頭에서 한발 더 내딛는 용맹으로 淨化의 맑은 샘물이 흐르게 했으니 그 功德은 法界를 덮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達磨大師가 동쪽으로 佛祖心印을 안고 오셨듯이 世界一華의 正法眼藏을 들고 서쪽으로 가셔서 風餐露宿을 마다 않으며 四海衆生에게 지혜광명을 밝혀주셨으니 金毛獅子와 같은 분이 바로 大宗師였습니다.
숭산 대종사님!
지금 저희들은 큰스님 앞에 追慕의 法香을 사르며 숙연한 마음으로 무엇이 참다운 佛子의 길인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행과 교화에 獻身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지금 그것을 無言之敎로 일러주고 계십니다. 저희들은 그 莫重泰山한 가르침을 胸中에 새기며 큰스님께서 踏破한 발자국을 따라갈 것을 誓願하고자 합니다.
숭산 대종사님!
時會大衆은 마지막으로 큰스님 모신 喪輿 위에 꽃 한 송이 올립니다. 하오니 부디 큰스님께서는 大寂三昧 속에서 槨示雙趺하사 천둥 벼락 같은 진실한 聲前一句를 한 마디만 더 들려주소서. 合掌으로 청하나이다.
佛紀 二五四八年 十二月 四日
大韓佛敎曹溪宗 中央宗會 議長 法燈 焚香
▶ 弔辭
저녁 노을은 푸르른 산 정상에 걸리고 겨울 까마귀 하얀 구름 사이로 날아가며 신선하고 아름다운 찬 기운이 만발한 산천에 비 지나간 나무 끝에 새 소리만 들리더니, 덕숭(德崇)의 한 노옹(老翁) 어젯밤 적막(寂寞) 속으로 홀연히 빛을 감추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님! 오늘 이것이 석가(釋迦)가 가섭에게 전(傳)한 염화미소의 도리입니까?
근·현대 불교의 대종장(大宗匠)이며, 수행과 포교의 귀감(龜鑑)이신 숭산 행원 큰스님!
스님께서는 일찍이 우리 종문(宗門)에 귀의(歸依)하여 원적(圓寂)에 드실 때까지 조계가풍(曹溪家風)을 저버리지 않았고, 고불고조(古佛古祖)의 혜명(慧命)을 전승(傳承)하여 이 땅에 선풍(禪風)을 드날린 대선장(大禪匠)이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비록 산에 들어가지 않아도 성불(成佛)의 문을 열고 생사(生死)를 떠난 도리를 보였고, 곳곳에 이 조사가풍(祖師家風)의 세계화를 위해서 저 벽안(碧眼)의 외국인에게 남다른 관심(關心)과 원력(願力)을 가지고, 때로는 사막에서 또 추운 빙산 위에서 선(禪) 포교에 심혈(心血)을 기울였습니다.
숭산 행원 대종사님!
오늘 스님께서 적멸(寂滅)을 보이심은 본래면목(本來面目)에서는 원래 없는 일이지만, 흐르는 물은 오열하고 종소리는 온종일 애도합니다. 누구보다도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도인(道人)이셨고 꾸밈없이 소탈하시어 큰 선지식(善知識)이면서도 티를 내지 않으셨으니 스님 앞에서는 빈부귀천 남녀노소가 모두 평등하였습니다. 스님의 지혜와 자비가 지금도 구족(具足)하시며 언제나 맑고 부드러운 법향(法香)이 인천(人天)에 가득합니다. 그러니 뉘 아니 스님을 애도하지 않겠습니까?
덕숭산인 행원 큰스님!
눈앞에 있는 시방세계(十方世界)가 스님의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자성(自性)을 벗어나지 않았고,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본분(本分)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구족한 천진스런 자성은 본래부터 이루어져, 오고 감이 없고 생몰(生沒)이 없습니다. 그리고 법신(法身)은 증감(增減)이 없고,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뚜렷이 밝고 자유스러웠던 스님의 본분 진면목(眞面目)을 한번 보이십시오. 덕숭의 계곡과 산은 화장연화이며 쉴 줄 모르는 냇물은 비로의 법문입니다. 숭산 큰스님! 산하대지일목일초(山河大地一木一草)가 스님의 일구(一句)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自從泥牛鬪入海
直至如今無消息
진흙소가 싸우며 바다로 간 뒤로는, 아직까지 소식이 없구나!
숭산 행원 대종사시여!
이제 예토(穢土)의 수고로운 연(緣)을 거두시고 대적삼매(大寂三昧) 속에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의 법락(法樂)을 여유로이 누리소서.
불기 2548년 12월 4일
대한불교조계종 전국 선원 대표 인각 분향
▶ 대통령 조의 메시지
숭산당 행원 대종사의 원적을 애도합니다.
숭산 큰스님께서는 치열한 자기 수행으로 선불교의 법맥을 잇고, 불교계의 화합과 개혁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또한 세계 32개국에 120여 개 선방을 열어 한국 불교를 알리는 데 앞장서 오셨습니다. 벽안의 제자들이 한국 불교를 배우며 수행에 정진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된 것도 큰스님의 공적입니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가르침과 ‘세계는 한송이 꽃’이라는 말씀은 인류의 화합과 세계 평화를 이뤄가는 소중한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숭산 큰스님의 원적을 거듭 애도하며, 세계 지성을 일깨우신 높은 공덕을 기립니다.
2004년 12월 4일
대통령
▶ 弔辭
은하수 따라 밝게 비치던 숭산 큰스님께서 영원의 열반에 드시니, 지구촌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도들과 더불어 전세계의 불자들이 숨을 고이 접어 향(香)을 사르고 있습니다.
숭산 큰스님이시여!
80억 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우리 중생을 남겨두고, 영원의 열반에 드시니 그리 평안하신지요.
그 유창하게 열어주신 영어 법문은 전세계에 한국 선불교의 수행 전통을 여법하게 전하였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선지식으로 추앙되셨어도, 저희들은 제대로 한번 모시지도 못하였는데, 어찌 저희들 곁을 자꾸 떠나시려 하옵니까?
달마대사께서 동쪽으로 오셨듯이, 숭산 큰스님은 지구 동쪽으로 전법의 길을 떠나 매일같이 전세계를 돌며, 세계일화(世界一花)를 피웠습니다. 그 꽃길은 하버드에서 화계사로 이어졌습니다.
그 꽃길을 큰스님께서 즈려밟고 가시어야 하옵는데, 어찌하시겠습니까?
숭산 큰스님.
스님께서 걸어오신 길가에 다섯 송이 푸른 연꽃을 마련해 바치옵기를 청하옵는데, 어디를 그렇게 가시는지요.
이제는 지구촌 집집마다 스님을 그리워하며 전단향을 피워놓았습니다. 저희들의 슬픔은 하늘에 닿지만, 그 원적의 행장을 순순히 따르겠습니다.
상두머리 정히 숙여 극락왕생하심을 발원합니다.
불기 2548년 12월 4일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 백창기 분향
▶ 弔辭
존경하는 숭산당 행원 대종사님!
대종사님께서 갑작스럽게 원적에 드셨다는 부음에 황망하고 슬픈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출가하신 이래 만공스님의 ‘온 세상은 한송이 꽃’이라는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 불교를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며, 세계 32개국에 120여 개의 홍법원을 개설하신 큰 스승이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일제의 압제가 극심한 시대에 이 땅에 오셔서 지하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습니다.
이후 한결같이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헌신해 오시면서 지구촌의 존경받는 영적 스승으로 숭앙받으시면서도 큰스님께서는 “서양인들의 과장된 표현에 불과하다”는 겸양의 말씀을 늘 해오셨습니다.
가없는 큰스님의 법덕과 거룩한 행장을 어찌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큰스님께서 남기신 “다 걱정하지 말아라”는 말씀은 우리 사부대중들이 희망과 자신감을 갖고 화합하여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라는 가르침으로 알고 있습니다.
숭산 큰스님, 부디 대해탈, 대자유를 누리시고 우리 중생에게 광명으로 다시 오소서!
불기 2548년 12월 4일
문화관광부장관 정동채 분향
▶ 숭산 큰스님을 추모하며(1)
친애하는 여러분께,
숭산 행원 대선사님과 뜻을 함께해 온 모든 분들께 애도와 기원을 전합니다.
젊은 시절 숭산 행원 대선사님께서는 전세계에 정치적·문화적 혁신을 일으켰고, 이후 미국의 케임브리지 선원을 비롯, 100개국 이상에 선원을 설립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대선사님께서는 수많은 이들의 삶과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들의 마음에 평안과 평정을 심어주셨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제 아들 존(John)도 대선사님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대선사님의 가르침은 존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고, 저희 가족 모두는 그의 삶의 질을 끊임없이 향상시켜 준 대선사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존은 자신의 가족에게 아낌없고 헌신적인 사랑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일을 하면서도 숭산 대선사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존의 삶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와 제 아내 테레사(Teresa)는 숭산 대선사님께서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숭산 대선사님께서 떠나신 이 어려운 시기에도 여러분들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시길 기원합니다. 비록 대선사님께서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무수히 많은 분들이 대선사님께서 남기신 가르침과 정신적 유산을 통해 고무받아 더 나은 삶을 꾸려 나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선사님의 스승님이신 고봉 선사님께서 대선사님께 법을 전하며 “우리는 500년 후에 다시 만날 것이다”고 말씀하셨듯,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하며 이 말을 빌어 다시 한번 저의 애도를 표합니다.
마음을 모아, 2004년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 상원의원 존 케리
▶ 弔辭
숭산 대종사님!
落葉은 歸根하고 山色은 寂寥하니 삼라만상은 그대로 眞如의 本體를 드러내는 계절입니다. 이 도리를 바로 알면 理事에 구애되지 않고 生死에서 自在를 얻는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문득 대종사의 涅槃 消息을 접하니 그 寂滅의 境地는 너무 깊고 고요해서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마음으로도 商量할 길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제부터는 慈悲의 목소리로 깨우쳐주고 顯正의 손으로 이끌어주시던 眞容을 뵈올 수 없으니 日月은 失色하고 天地는 驚動하고 蒼生은 悲嘆의 강물에 빠졌습니다.
숭산 대종사님!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덕숭산에서 고봉 대화상을 스승으로 축발한 이래 일생 동안 理事無碍한 機用으로 縱橫無盡하며 破邪顯正과 正法宣揚의 깃발을 揭揚한 종문의 大善知識이었습니다.
종단의 風規가 문란하던 때에는 百尺竿頭에서 한발 더 내딛는 용맹으로 淨化의 맑은 샘물이 흐르게 했으니 그 功德은 法界를 덮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達磨大師가 동쪽으로 佛祖心印을 안고 오셨듯이 世界一華의 正法眼藏을 들고 서쪽으로 가셔서 風餐露宿을 마다 않으며 四海衆生에게 지혜광명을 밝혀주셨으니 金毛獅子와 같은 분이 바로 大宗師였습니다.
숭산 대종사님!
지금 저희들은 큰스님 앞에 追慕의 法香을 사르며 숙연한 마음으로 무엇이 참다운 佛子의 길인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행과 교화에 獻身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지금 그것을 無言之敎로 일러주고 계십니다. 저희들은 그 莫重泰山한 가르침을 胸中에 새기며 큰스님께서 踏破한 발자국을 따라갈 것을 誓願하고자 합니다.
숭산 대종사님!
時會大衆은 마지막으로 큰스님 모신 喪輿 위에 꽃 한 송이 올립니다. 하오니 부디 큰스님께서는 大寂三昧 속에서 槨示雙趺하사 천둥 벼락 같은 진실한 聲前一句를 한 마디만 더 들려주소서. 合掌으로 청하나이다.
佛紀 二五四八年 十二月 四日
大韓佛敎曹溪宗 中央宗會 議長 法燈 焚香
▶ 弔辭
저녁 노을은 푸르른 산 정상에 걸리고 겨울 까마귀 하얀 구름 사이로 날아가며 신선하고 아름다운 찬 기운이 만발한 산천에 비 지나간 나무 끝에 새 소리만 들리더니, 덕숭(德崇)의 한 노옹(老翁) 어젯밤 적막(寂寞) 속으로 홀연히 빛을 감추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님! 오늘 이것이 석가(釋迦)가 가섭에게 전(傳)한 염화미소의 도리입니까?
근·현대 불교의 대종장(大宗匠)이며, 수행과 포교의 귀감(龜鑑)이신 숭산 행원 큰스님!
스님께서는 일찍이 우리 종문(宗門)에 귀의(歸依)하여 원적(圓寂)에 드실 때까지 조계가풍(曹溪家風)을 저버리지 않았고, 고불고조(古佛古祖)의 혜명(慧命)을 전승(傳承)하여 이 땅에 선풍(禪風)을 드날린 대선장(大禪匠)이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비록 산에 들어가지 않아도 성불(成佛)의 문을 열고 생사(生死)를 떠난 도리를 보였고, 곳곳에 이 조사가풍(祖師家風)의 세계화를 위해서 저 벽안(碧眼)의 외국인에게 남다른 관심(關心)과 원력(願力)을 가지고, 때로는 사막에서 또 추운 빙산 위에서 선(禪) 포교에 심혈(心血)을 기울였습니다.
숭산 행원 대종사님!
오늘 스님께서 적멸(寂滅)을 보이심은 본래면목(本來面目)에서는 원래 없는 일이지만, 흐르는 물은 오열하고 종소리는 온종일 애도합니다. 누구보다도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도인(道人)이셨고 꾸밈없이 소탈하시어 큰 선지식(善知識)이면서도 티를 내지 않으셨으니 스님 앞에서는 빈부귀천 남녀노소가 모두 평등하였습니다. 스님의 지혜와 자비가 지금도 구족(具足)하시며 언제나 맑고 부드러운 법향(法香)이 인천(人天)에 가득합니다. 그러니 뉘 아니 스님을 애도하지 않겠습니까?
덕숭산인 행원 큰스님!
눈앞에 있는 시방세계(十方世界)가 스님의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자성(自性)을 벗어나지 않았고,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본분(本分)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구족한 천진스런 자성은 본래부터 이루어져, 오고 감이 없고 생몰(生沒)이 없습니다. 그리고 법신(法身)은 증감(增減)이 없고,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뚜렷이 밝고 자유스러웠던 스님의 본분 진면목(眞面目)을 한번 보이십시오. 덕숭의 계곡과 산은 화장연화이며 쉴 줄 모르는 냇물은 비로의 법문입니다. 숭산 큰스님! 산하대지일목일초(山河大地一木一草)가 스님의 일구(一句)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自從泥牛鬪入海
直至如今無消息
진흙소가 싸우며 바다로 간 뒤로는, 아직까지 소식이 없구나!
숭산 행원 대종사시여!
이제 예토(穢土)의 수고로운 연(緣)을 거두시고 대적삼매(大寂三昧) 속에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의 법락(法樂)을 여유로이 누리소서.
불기 2548년 12월 4일
대한불교조계종 전국 선원 대표 인각 분향
▶ 대통령 조의 메시지
숭산당 행원 대종사의 원적을 애도합니다.
숭산 큰스님께서는 치열한 자기 수행으로 선불교의 법맥을 잇고, 불교계의 화합과 개혁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또한 세계 32개국에 120여 개 선방을 열어 한국 불교를 알리는 데 앞장서 오셨습니다. 벽안의 제자들이 한국 불교를 배우며 수행에 정진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된 것도 큰스님의 공적입니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가르침과 ‘세계는 한송이 꽃’이라는 말씀은 인류의 화합과 세계 평화를 이뤄가는 소중한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숭산 큰스님의 원적을 거듭 애도하며, 세계 지성을 일깨우신 높은 공덕을 기립니다.
2004년 12월 4일
대통령
▶ 弔辭
은하수 따라 밝게 비치던 숭산 큰스님께서 영원의 열반에 드시니, 지구촌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도들과 더불어 전세계의 불자들이 숨을 고이 접어 향(香)을 사르고 있습니다.
숭산 큰스님이시여!
80억 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우리 중생을 남겨두고, 영원의 열반에 드시니 그리 평안하신지요.
그 유창하게 열어주신 영어 법문은 전세계에 한국 선불교의 수행 전통을 여법하게 전하였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선지식으로 추앙되셨어도, 저희들은 제대로 한번 모시지도 못하였는데, 어찌 저희들 곁을 자꾸 떠나시려 하옵니까?
달마대사께서 동쪽으로 오셨듯이, 숭산 큰스님은 지구 동쪽으로 전법의 길을 떠나 매일같이 전세계를 돌며, 세계일화(世界一花)를 피웠습니다. 그 꽃길은 하버드에서 화계사로 이어졌습니다.
그 꽃길을 큰스님께서 즈려밟고 가시어야 하옵는데, 어찌하시겠습니까?
숭산 큰스님.
스님께서 걸어오신 길가에 다섯 송이 푸른 연꽃을 마련해 바치옵기를 청하옵는데, 어디를 그렇게 가시는지요.
이제는 지구촌 집집마다 스님을 그리워하며 전단향을 피워놓았습니다. 저희들의 슬픔은 하늘에 닿지만, 그 원적의 행장을 순순히 따르겠습니다.
상두머리 정히 숙여 극락왕생하심을 발원합니다.
불기 2548년 12월 4일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 백창기 분향
▶ 弔辭
존경하는 숭산당 행원 대종사님!
대종사님께서 갑작스럽게 원적에 드셨다는 부음에 황망하고 슬픈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출가하신 이래 만공스님의 ‘온 세상은 한송이 꽃’이라는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 불교를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며, 세계 32개국에 120여 개의 홍법원을 개설하신 큰 스승이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일제의 압제가 극심한 시대에 이 땅에 오셔서 지하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습니다.
이후 한결같이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헌신해 오시면서 지구촌의 존경받는 영적 스승으로 숭앙받으시면서도 큰스님께서는 “서양인들의 과장된 표현에 불과하다”는 겸양의 말씀을 늘 해오셨습니다.
가없는 큰스님의 법덕과 거룩한 행장을 어찌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큰스님께서 남기신 “다 걱정하지 말아라”는 말씀은 우리 사부대중들이 희망과 자신감을 갖고 화합하여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라는 가르침으로 알고 있습니다.
숭산 큰스님, 부디 대해탈, 대자유를 누리시고 우리 중생에게 광명으로 다시 오소서!
불기 2548년 12월 4일
문화관광부장관 정동채 분향
▶ 숭산 큰스님을 추모하며(1)
친애하는 여러분께,
숭산 행원 대선사님과 뜻을 함께해 온 모든 분들께 애도와 기원을 전합니다.
젊은 시절 숭산 행원 대선사님께서는 전세계에 정치적·문화적 혁신을 일으켰고, 이후 미국의 케임브리지 선원을 비롯, 100개국 이상에 선원을 설립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대선사님께서는 수많은 이들의 삶과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들의 마음에 평안과 평정을 심어주셨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제 아들 존(John)도 대선사님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대선사님의 가르침은 존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고, 저희 가족 모두는 그의 삶의 질을 끊임없이 향상시켜 준 대선사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존은 자신의 가족에게 아낌없고 헌신적인 사랑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일을 하면서도 숭산 대선사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존의 삶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와 제 아내 테레사(Teresa)는 숭산 대선사님께서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숭산 대선사님께서 떠나신 이 어려운 시기에도 여러분들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시길 기원합니다. 비록 대선사님께서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무수히 많은 분들이 대선사님께서 남기신 가르침과 정신적 유산을 통해 고무받아 더 나은 삶을 꾸려 나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선사님의 스승님이신 고봉 선사님께서 대선사님께 법을 전하며 “우리는 500년 후에 다시 만날 것이다”고 말씀하셨듯,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하며 이 말을 빌어 다시 한번 저의 애도를 표합니다.
마음을 모아, 2004년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 상원의원 존 케리
▶ 숭산 큰스님을 추모하며(2)
한국 불교와 정신에 눈뜨게 해준,
나의 또 다른 아버지나 다름없는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숭산 큰스님을 처음 뵌 것은 15년 전인 1989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 시어터(Sanders Theater, 하버드대에서 가장 큰 강의실)에서였습니다.
강의실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강사의 얼굴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통통하고 키 작은 동양인이 삭발한 머리에 낡은 회색 옷을 걸치고 문법도 잘 맞지 않는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무슨 생불(生佛)이라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거야.’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강의에 빨려들었습니다.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해 스님은 내가 그동안 어떤 책에서도, 어떤 교수님으로부터도 접하지 못했던 간단명료하고 생생한 지혜들을 쏟아내셨습니다.
나는 당시 불교에서 진리를 구하고 있었는데 숭산스님의 강의는 내 운명을 180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설고 낯선 땅에서 승려가 되어 한국 불교를 포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큰스님은 1, 2년 전부터 편찮으셨습니다. 입적하시기 며칠 전에도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의사들 말에 부랴부랴 병원에서 화계사로 모셨습니다. 큰스님의 미국인 첫 제자 대봉스님(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조실)과 내가 앰뷸런스에 함께 탔습니다.
큰스님의 얼굴은 너무 평온했습니다. 피부는 아기처럼 고와 주변에 빛을 뿌릴 정도였습니다. 고른 숨을 내쉬는 스님의 이마에 정중하게 키스했습니다. 내 입술에 닿는 스님의 피부가 마치 이 세상에는 없는 천사의 것 같았습니다. 맘속 깊이 스승께 보내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에 한 줄기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날 오후 4시 화계사. 주지 스님을 비롯해 가까운 제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대광(미국 프로비던스 선원장), 오광(유고슬라비아 스님), 현문(폴란드 스님)과 한국 스님들까지 모두 여덟 명이 무릎 꿇고 둘러앉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큰스님의 편안하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나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몸에 의지하지 말라. 우리 모두 모르는 곳에서 왔다가 모르는 곳으로 간다. 오직 모를 뿐이다.”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긴 잠을 주무시듯 돌아가셨습니다.
큰스님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희생으로 푸른 눈의 우리들을 가르치시느라 건강도 챙기시지 못하셨습니다.
이제 한국의 정신문화는 숭산 큰스님이라는 용광로에 녹아 미국에서, 세계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위대한 가르침을 한국인들에게 다시 알리는 일만이 큰스님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불교와 정신에 눈뜨게 해준, 나의 또 다른 아버지나 다름없는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_ 현각(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장)
▶ 숭산 큰스님을 추모하며(3)
근세 조선 선종(禪宗)의 종맥(宗脈)을 따지자면 경허·만공의 거맥(巨脈)을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에 우리 귀에 익숙한 고승 대부분이 이 경허·만공맥의 문하에서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만공 문하 고봉의 수제자로 숭산 행원이라는 인물이 있다.
내가 다녔던 한국신학대학 뒤켠 물 건너 수유리 우이 기슭에 있는 화계사의 큰스님으로서 참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런데 나는 이 숭산스님을 하버드 다닐 때 케임브리지 어느 허름한 미국집 안방에서 만났다.
내가 숭산스님을 만나뵈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분은 그리 널리 알려진 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분의 명성은 뉴잉글랜드 지역, 특히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권 내에서는 좀 시끌시끌할 정도였다. 내가 숭산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들 대강(代講)을 하고 있을 때 학생 중에 한국 불교 전공을 지망하는 참하고 예쁘장한 미국 여학생으로부터였다.
그 학생 이름은 베키였는데, 하버드대학 학부를 졸업할 때 하버드대학 전체 수석을 했으니까 무지하게 머리가 좋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베키는 당시 한국 불교사를 가르치고 있던 나를 만날 때마다 ‘쑹싼쓰님’ 운운하는 것이었다. 베키의 ‘쑹싼쓰님’에 대한 존경은 절대적이었다. 나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존경하는 학자인 당신이야말로 꼭 한 번 ‘쑹싼쓰님’을 만나보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 ‘쑹싼쓰님’이란 분이 주기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는데 딱 정해진 날만 케임브리지 젠센터(하버드대와 MIT 사이에 숭산스님이 세운 절)에 오셔서 달마토크(Dharma talk, 법문을 이렇게 영역)를 하시니까 그때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베키 말에 따르면 ‘쑹싼쓰님’ 달마토크 때는 하버드 주변 학생 수백 명이 줄줄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실상 속마음을 고백하자면 나는 ‘쑹싼쓰님’을 순 사기꾼 땡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 베키를 쳐다보건대 저 계집아이를 저토록 미치게 만든 놈, 즉 저 계집아이가 숭산이라는 개인에게 저토록 절대적 신앙심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무슨 사교적(邪敎的) 권위의식을 좋아하는 절대론자일 것이고 따라서 해탈한 인간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타인에게 절대적 복속과 부자유를 안겨주는 놈은 분명 사기꾼일 것이다. 또 숭산이 다 늙어서 미국에 건너온 사람인데 무슨 영어를 할 것이냐, 기껏 지껄여봐야 콩글리시 몇 마디일 텐데 영어로 말할 것 같으면 천하무적 김용옥도 이 하버드에 와선 벌벌 기고 있는데 지가 무슨 달마토크냐 달마토크는. 하버드 양코배기 학·박사들을 놓고 달마토크를 한다니 아마도 그놈은 분명 뭔가 언어 외적 사술(邪術)을 부리는 어떤 사기성이 농후한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베키의 간청에 못이겨 캠브리지 젠센터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숭산의 달마토크를 듣는 순간, 나는 언어를 잃어버렸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동안 나의 식(識)의 작용 속에서 집적해 왔던 객기(客氣)가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를 깨달았던 것이다. 한 인간이 수도를 통해 쌓아올린 경지는 말과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몸과 몸으로 전달될 뿐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그가 해탈인임을 직감했다.
그의 얼굴에는 위압적인 석굴암의 부처님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골목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땅꼬마’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해탈의 최상의 경지는 바로 어린애 마음이요, 어린애 얼굴이다. 동안(童顔)의 밝은 미소, 그 이상의 해탈, 그 이상의 하느님은 없는 것이다.
숭산은 거구는 아니라 해도 결코 작은 덩치도 아니었다. 당시 오순 중반에 접어든 그의 얼굴은 어린아이 얼굴 그대로였다. 그의 달마토크는 정말 가관이었다. 방망이를 하나 들고 앉아서 가끔 톡톡 치며 내뱉는 꼬부랑 혀 끝에 매달리는 말들은 주어·동사·주부·술부가 마구 도치되는가 하면 형용사·명사 구분이 없고 전치사란 전치사는 다 빼먹는 정말 희한한 콩글리시였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영어의 도사인 이 도올이 앉아 들으면서 그 콩글리시가 너무 재미있어 딴전 피울 새 없이 빨려들어 갔던 것이다. 그의 콩글리시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언어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었다. 주부·술부가 제대로 틀어박힌 유려한 접속사로 연결되는 어떠한 언어 형태도 모방할 수 없는 원초적인 마력을 발하고 있었다.
- 도올 김용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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